5화
‹ ›그 뒤로 정하윤과의 문자는 매일 이어졌다.
짧은 안부, 사소한 일상, 가끔은 그날의 하늘 색깔까지.
처음엔 형식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답장이 늦으면 신경이 쓰였다.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 껐다 했는지 모른다.
읽음 표시가 뜨고도 답이 없으면 괜히 초조해졌다.
이게 뭐라고.
"너 요즘 표정이 좀 이상해."
농구부 훈련 중 부원 하나가 말을 걸었다.
"뭐가."
"자꾸 웃어. 슛 넣을 때 말고 평소에."
"안 웃었는데."
"방금도 웃었잖아."
옆에 있던 다른 부원이 끼어들었다.
"야, 쟤 요즘 폰만 보면 실실거려. 여자친구랑 사귄다더니 진짜 좋아 죽네."
"아니거든."
"아니긴 뭘 아니야, 지금도 웃고 있잖냐."
손끝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부정할 수 없었다.
농구공이 골대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그걸 잡으러 뛰어가는 와중에도 머릿속엔 하윤의 문자가 걸려 있었다.
오늘 아침에 보낸 하늘 색깔 얘기, 그거에 뭐라고 답할지 아직 못 정했다.
그 주 토요일, 학교 근처 공원에서 작은 지역 행사가 열렸다.
한강고 축제 준비팀이 홍보 부스를 세운 자리였다.
서은과 나는 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나갔다.
왜 일찍 나갔는지는 나도 몰랐다.
"오늘 여기서, 우리 처음으로 밖에서 같이 있는 거잖아."
서은이 팔을 흔들며 다가왔다.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는 게 눈에 띄어서 사람들이 몇 번 쳐다봤다.
"그런데?"
"그런데 사진 좀 찍혀야지."
"왜."
"공식 커플이니까 공식적으로 남겨야지."
말이 안 되는 논리였지만 이미 이런 식의 대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적응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웃겼다.
부스 근처, 반 애들 몇몇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둘이 진짜 사귀는 거야?"
"응."
서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 팔을 슬쩍 감으면서.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주변에서 휴대폰 카메라 소리가 몇 번 딸깍거렸다.
"와, 진짜네."
"완전 잘생기고 예쁘고, 어울린다."
옆에서 누가 한마디 더 던졌다.
"야, 근데 표정 왜 그래, 태오. 얼굴 빨간데."
"안 빨간데."
"빨갛구만."
다들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부담스러웠지만, 이상하게 싫지만은 않았다.
행사장을 벗어난 뒤, 서은이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봐, 반응 좋아. 벌써 학교 단체 채팅방에 사진 돌았어."
"…그렇게 빨리?"
"응. 하윤이한테도 보내줬어."
"…뭐?"
"자랑해야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넘겼다.
그때는 그게 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하윤에게 답장이 왔다.
사진 봤어요. 잘 어울리네요.
짧은 문장인데 뭔가 온도가 낮았다.
글자 몇 개 사이에 뭐가 끼어 있는 느낌이었다.
답장을 몇 번 고민하다가 그냥 평범하게 보냈다.
고마워요. 그쪽도 잘 지내고 있어요?
답이 조금 늦게 왔다.
네, 저는 늘 똑같아요. 태오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서은이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길래.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괜히 물었다가 이상한 대답이 돌아올까 봐 겁이 났다.
며칠 뒤, 다시 하윤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정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목발은 여전했지만, 처음보다 표정이 한결 편해 보였다.
바람이 조금 불어서 벤치 옆에 놓인 담요 끝이 살짝 들렸다.
"오늘도 와줘서 고마워요."
"뭘요."
"사실 서은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태오씨가 되게 성실하고, 뭐든 꼼꼼하게 챙긴다고."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과장한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그래요?"
하윤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
"근데 서은이 말로는, 태오씨가 매번 부원들 다치면 제일 먼저 챙기고, 시험 전엔 다른 애들 공부까지 도와준다던데요."
"…그건 좀 부풀려진 거예요."
"부풀려진 거예요?"
"네. 그렇게까지는 아니에요."
하윤이 잠깐 말이 없었다.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벤치 옆에 놓인 목발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렇구나."
짧은 대답이었는데,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하윤이 서둘러 웃음을 지었다.
너무 서둘렀다는 게 오히려 눈에 밟혔다.
정원 화단에 심어놓은 작은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사이로 정적이 몇 초쯤 이어졌다.
뭔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지금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 서은에게 물었다.
"너 하윤이한테 나에 대해서 얼마나 얘기했어?"
"많이는 아니고."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음… 그냥 좋은 점만 좀 강조했나."
"좀?"
서은이 시선을 살짝 피했다.
평소답지 않은 태도였다.
"태오야, 별거 아니야. 그냥 걔가 좋게 생각하게 하려고 조금씩 부풀린 거야."
"조금씩이면 얼마나."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또 그 말이었다.
나중에.
"넌 항상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네."
"…그런가."
"응. 지금까지도 몇 번째야."
서은이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평소처럼 능글맞게 넘기려는 것 같았는데, 이번엔 그마저도 어설펐다.
서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진짜 곤란함이 스쳤다.
장난기 뒤에 숨겨왔던 무언가가 슬쩍 드러난 순간이었다.
"뭘 얼마나 부풀렸는데."
다시 물었지만, 서은은 대답 없이 걸음을 서둘렀다.
뒷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서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사라졌다.
따라잡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쫓아가면 뭔가 더 이상한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서은이 시선을 피하던 순간, 걸음을 서두르던 뒷모습.
평소의 그 애답지 않았다.
그날 밤, 하윤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태오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중에 직접 만나면 물어봐도 될까요.
짧은 문장인데, 뭔가 각오한 듯이 느껴졌다.
답장을 쓰려는 손끝이 이상하게 굳었다.
몇 번이나 답장을 쓰다 지웠다.
네, 라고만 쓰면 될 것 같은데도 그 한 글자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짧게 보냈다.
네, 물어보세요.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쿵쿵거렸다.
이 관계, 뭔가 크게 어긋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