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너 없인 잠들 수 없어

4화

[강태은 시점] 하늘이 사라진 걸 확인한 다음에야, 나는 그 신입생을 제대로 뜯어봤다. 라운지 형광등이 깜빡거리며 켜졌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낡은 등이었다. 청솔원은 지어진 지 오래된 기숙사라 이런 잡음들이 익숙했지만, 그날 밤엔 그 깜빡임조차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고, 교복도 아직 벗지 않은 채였다. 캐리어도 안 풀었는지, 옷에서 새 섬유 냄새가 났다. 마트에서 방금 뽑아온 옷 같은, 아직 사람 냄새가 배지 않은 그런 냄새.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는데, 그게 운 흔적인지 아니면 그냥 피곤함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재밌다. 첫인상은 그거였다. 재미있는 게 굴러들어왔다. 하늘이랑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건 나한테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하늘은 좋은 애였다. 순진하고, 다정하고, 나를 좋아해 줬다. 나도 그 애가 싫지 않았다. 다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애매한 관계였다. 하늘도 알고 있었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냥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한 밤에, 서로를 찾는 사이였을 뿐. 이름 붙이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종류의 관계. 그런데 그 위로의 순간을 이 낯선 신입생이 봐버렸다. 하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자기 방으로 도망치듯 올라갔겠지. 나는 그 애의 뒷모습을 딱히 붙잡지 않았다. 애초에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낯선 애가 훨씬 더 흥미로웠으니까. "놀랬냐." 나는 팔짱을 풀며 물었다. "…네." 이서아라는 애가 겨우 대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첫마디를 뱉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소문낼 거야?" "아, 아니요." 그 애의 목소리가 즉시 커졌다. 지나치게 다급하게. "저 그런 애 아니에요." 나는 그 반응을 지켜보며 속으로 웃었다. 겁먹은 게 티가 났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서아는 교복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가 놓았다가 했다. 이 정도로 순진하면 사람 다루기 쉽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계산이라면 계산이었다. 나는 원래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위협이 될지, 도구가 될지, 아니면 그냥 흥밋거리가 될지. 그 세 가지 서랍 중 어디에 넣을지, 나는 늘 첫 몇 마디 안에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이서아를 계속 보고 있으니, 뭔가 다른 게 눈에 걸렸다. 손끝의 떨림이 단순한 긴장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벌겋게 충혈되고 초점이 흔들리는 그 눈─은 나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뭔가 더 근본적인 두려움에 시달리는 눈이었다.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지나쳐서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눈. 그게 뭔지 나는 아직 몰랐다. "너 오늘 처음 왔다고 했지." 내가 물었다. "네." "몇 시에 왔어." "저녁쯤요." "룸메는?" "없어요. 저 혼자예요." 나는 그 말에서 뭔가 알아챘다. 302호. 청솔원에서 302호는 이번 학기 룸메이트가 개인 사정으로 늦게 들어오는 방이었다. 사감이 나눠준 명단에 별표가 붙어 있던 그 방. 그러니까 저 애는 지금 완전히 혼자 그 방에 있다는 뜻이었다. 텅 빈 침대 하나, 옷이 걸리지 않은 옷장, 그리고 이 애 혼자. "그래서 밤중에 방 나와서 여기까지 온 거야?" "물 마시려고요." 서아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 말투에 뭔가 숨기는 게 있었다.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눈동자가 나를 봤다가, 바닥을 봤다가, 다시 나를 봤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특유의 눈동자 궤적이었다. 나는 한 발짝 다가섰다. 서아가 순간 몸을 움츠렸다. 어깨가 안으로 말리고, 팔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감싸듯 올라갔다. 그 반응이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짐작이 갔다. "거짓말이지." "…네?" "물 마시려고 나온 거면 왜 정수기가 있는 1층으로 안 가고 여기까지 내려왔어. 302호에서 라운지까지, 아무리 봐도 물 마시러 가는 길은 아니잖아." 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나에게는 충분한 답이었다. 나는 침묵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침묵할 때가, 말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말해줬다. "잠이 안 와서 나온 거지." 서아의 얼굴이 굳었다. 정확히 맞췄다는 뜻이었다. "그거 아니에요." 서아가 겨우 반박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반박하는 말과 반박하는 태도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나는 그 애를 좀 더 몰아붙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사람의 약점을 발견하면 나는 늘 그걸 찔러보는 버릇이 있었다. 재미로. 상대가 무너지는 순간의 표정을 보는 게, 나에게는 일종의 놀이였다. 그런데 이번엔 이유가 조금 달랐다. 뭔가 알고 싶다는 충동이 먼저였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는, 조금 더 집요한 궁금증. "솔직히 말해봐."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혼자 못 자?" 그 순간 서아의 눈에 뭔가 무너지는 게 보였다. 자존심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아주 짧은 균열이 퍼지는 소리. "…네." 서아가 겨우 인정했다. "언니 없이는, 6년 동안 한 번도 혼자 잔 적이 없어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순순히 인정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줄도 몰랐다. 6년. 초등학생 때부터였다는 뜻인가.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혼자 잠들지 못했다는 게, 나에게는 잘 상상이 안 되는 종류의 결핍이었다. "언니는 어디 있는데." "오늘 갔어요. 저 여기 두고." 그 대답에서, 나는 이 애의 하루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갑작스러운 분리, 낯선 기숙사, 그리고 방금 목격한 나와 하늘의 장면까지. 하루 만에 겪을 충격의 총량이 넘쳐버린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 애는 오늘 하루 동안, 지난 6년 치의 불안을 한꺼번에 다 겪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솔직히, 이런 애를 상대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나는 남의 사정에 깊이 관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감정을 나누는 것도, 위로를 건네는 것도, 나에게는 어색하고 소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애를 그냥 302호로 돌려보내고 잊어버리기엔 뭔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건 순수한 흥미였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무너진 얼굴을 하고도, 소문내지 않겠다고 먼저 말하는 애. 겁먹으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내 앞에서 버티는 애. 그런 유형은 흔치 않았다. 대부분은 겁을 먹으면 도망치거나, 아니면 반대로 화를 내며 덤벼들었다. 이서아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겁을 먹은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다시 한번 훑었다. 눈, 코, 입, 그리고 다시 눈. 벌겋게 충혈된 눈 속에서, 나는 뭔가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은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따라와." 나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디를요?" "방까지 데려다줄게. 이 시간에 혼자 복도 돌아다니면 사감한테 걸려." 서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내 뒤를 따라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서아의 발소리를 들었다. 아까보다 조금 안정된,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걸음.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살짝 멈칫하는 그 리듬이, 나에게는 이상하게 선명하게 들렸다. 계단 창문으로 밖을 보니 캠퍼스 가로등이 하나둘 켜져 있었다. 다들 잠든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은 나와, 방금 도망친 하늘, 그리고 이 신입생뿐이었다. 셋 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잠들지 못한 사람들. 302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고리를 잡은 서아의 손을 흘긋 봤다. 손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마치 그 문을 여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듯이.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는데, 정작 문고리는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서아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뭐." "아까 그거…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진짜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렸다가 금세 사라졌다. "안 믿어." "진짜예요!"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억울함과 다급함이 뒤섞인, 진심으로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 반응조차 나에게는 재미있었다. "장난이야." 나는 계단 쪽으로 돌아서며 손을 흔들었다. "믿어. 대신." "…대신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서아는 여전히 문고리를 잡은 채,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 눈이 유난히 더 붉게 보였다. 그 눈을 보며, 나는 뭔가 흥미로운 계산을 하나 떠올렸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바랄게. 근데 다음에 또 이 시간에 복도에서 만나면, 그때는 뭔가 하나 받아야겠어." 서아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고, 입술이 반쯤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 나는 그 얼굴이 재미있어서, 대답을 주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게 애쓴 듯한 조용한 딸깍 소리. 그 소리마저 나에게는 뭔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저 애가 오늘 밤도, 내일 밤도, 그 방에서 제대로 잠들지 못할 거라는 걸. 불 꺼진 방 안에서 뒤척이며, 언니가 없다는 사실과 낯선 침대의 냄새와 오늘 목격한 장면 사이에서 헤맬 거라는 걸. 그리고 며칠 뒤엔, 결국 다시 이 복도로 나올 거라는 것도.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것도. 계단을 다 내려와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복도와, 그 끝에 닫힌 문 하나. 나는 그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재밌는 장난감을 하나 주웠다는 기분이었다. 부서지기 쉬운, 그러면서도 쉽게 손에서 놓기는 아까운 그런 종류의 장난감. 나는 그날 밤, 오랜만에 다음 날이 조금 기대된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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