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고아원의 아이들 중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문 것은 수아였다. 겨울이 유난히 길게 이어지는 이 지방에서는 아이 하나가 다섯 해를 넘겨 한곳에 머물면 그것을 두고 ‘뿌리를 내렸다’고 말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수아는 그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이미 일곱 해 전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여섯 살에 부모를 잃고 이곳에 맡겨진 그녀는 다른 아이들이 새로 들어오고 또 다른 집으로 흩어져 나가는 것을 몇 번이나 지켜보았으며, 그 반복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도윤이 이 세계로 떨어져 마물의 발톱에 왼쪽 눈을 잃던 그 밤, 방 한구석에서 그 모든 소란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했다.
그날 밤의 기억은 수아의 머릿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예은이 피투성이 소년을 안고 들어오던 모습,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 길게 늘어지던 그림자, 그리고 소년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의 냄새까지도. 다른 아이들은 그 광경에 겁을 먹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수아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 순간부터 도윤이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 같은 감정을 품게 되었는데, 왜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지는 종류의 감정이었으며, 마치 겨울마다 나무의 뿌리가 땅속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것처럼 해가 갈수록 그녀 안에 굳게 자리를 잡아갔다.
게시문이 붙은 다음 날 저녁, 도윤이 어깨 통증을 호소하자 수아는 늘 하던 대로 그의 어깨를 주물러 주겠다고 나섰다. 이것은 그녀만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도윤이 사냥에서 돌아와 몸이 뻐근하다고 말할 때마다 수아는 누구보다 먼저 손을 뻗었고, 다른 아이들도 어느새 그것을 당연한 광경으로 여기게 되었다. 마루에 앉은 도윤의 뒤에서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뭉친 근육을 눌렀는데, 손끝이 그의 목덜미 가까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숨이 미묘하게 흐트러졌다. 마루 저편에서 어린아이 둘이 실뜨기를 하며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수아의 귀에는 그 소리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오빠, 요즘 시스터가 좀 이상하지 않아."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지만, 그 말투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자의 날카로움이 섞여 있었다. "이상하다니, 뭐가." 도윤이 되묻자 수아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며 답했다. "밤마다 오빠만 늦게까지 붙잡아 두잖아. 다른 애들은 그런 적 없는데." 그 말에 도윤의 어깨가 순간 굳었고, 수아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손바닥 아래로 전해지는 미세한 긴장,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자 수아는 손끝으로 도윤의 목덜미에 남은 옅은 자국을 슬쩍 눌러 보았는데, 그것은 며칠 전 예배당에서 남은 성유의 흔적이었다. 향유 냄새가 아직도 살갗에서 옅게 풍기고 있었다. "이건 뭐야." 그녀가 낮게 물었으나 도윤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었고, 그 어색한 침묵이 수아에게는 오히려 확신을 안겨 주었다. "그, 그냥 시스터가 상처 소독한다고." "상처는 왼쪽 눈이잖아. 목에 왜 발라." 수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도윤의 몸에 그런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 안에서 낯선 뜨거움으로 번져 갔다. 그것이 질투인지 소유욕인지 그녀 자신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이 감정이 오래전 그 밤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수아는 손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그 자국 위에 오래 손끝을 얹어 두었다. 마치 그것을 지우려는 듯한, 혹은 그 위에 자신의 표식을 다시 새기려는 듯한 손짓이었다. 도윤은 그 손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굳이 캐묻지 않고 어깨를 슬쩍 돌려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수아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오빠는 나랑 시스터, 둘 중에 누가 더 좋아." 수아가 갑자기 던진 질문에 도윤은 당황한 얼굴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걸 왜 물어." "그냥. 그냥 물어본 거야." 그녀가 대답하며 시선을 피했는데, 마루 저편에서 실뜨기를 하던 아이 하나가 그 말을 듣고 끼어들었다. "오빠는 당연히 시스터지! 시스터가 밥도 해 주고 옷도 빨아 주잖아." 다른 아이가 맞장구를 치며 웃었지만, 수아는 그 웃음소리에 함께 섞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도윤의 옆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도윤은 수아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으나 그 이유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의 예민한 귀는 마물의 발소리나 안개 속 나무의 흔들림은 정확히 구분해 냈지만,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라는 소유욕의 소리까지는 읽어내지 못했다.
그날 밤 수아는 홀로 예배당 앞을 지나며,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촛불 불빛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불빛이 흔들려 문틈 아래로 그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짧아지곤 했는데, 그 반복이 마치 무언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서 예은과 도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문 너머로 낮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수아는 발끝으로 살짝 다가가 문에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이내 그 행동이 부끄러워 물러섰고,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촛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자신이 앞으로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처음으로 굳혔다. 여섯 살 때부터 지켜온 이 집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던 자신이 이번만큼은 결코 밀려나지 않겠다고. 그것이 앞으로 이 고아원 안에 얼마나 깊은 균열을 만들어 낼지, 그날의 그녀는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촛불이 마지막으로 흔들리다 꺼지는 순간, 수아의 입가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한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