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시녀장님, 정말 잊은 걸까요?

1화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학원 늦었다'였다. 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잘 안 떠졌다. 늦잠을 잔 게 분명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차려고 했는데, 이불이 이상하게 두꺼웠다. 손끝에 닿는 감촉도 낯설었다. 우리 집 이불은 이렇게 미끄러운 재질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천장이 왜 이래'였다. 우리 집 천장에는 이런 무늬가 없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 같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위로 낡은 비단 천이 늘어져 있었다. 사극 세트장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촬영장에서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려 보았다. 그런데 나는 배우도 아니고, 사극 촬영장에 초대받을 만한 인맥도 없었다. 결론부터 틀렸다. 몸을 일으키려고 팔을 짚었는데, 팔에 힘이 이상하게 잘 들어갔다. 평소보다 가벼운 느낌이었다. 손을 들어 눈앞에 대 보았다. 내 손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더 길고 가늘었으며, 관절 마디도 나보다 도드라졌다. 손등에는 옅은 흉터 하나가 나 있었다. 오래된 상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최근에 생긴 것 같았는데, 나는 저런 흉터가 생긴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이런 손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꿈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듯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결론을 비웃었다. 꿈이라면 이렇게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생생할 리가 없었다. 손톱 밑에 낀 먼지 하나까지 보이는 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손등의 흉터를 손끝으로 문질러 보았다. 아팠다. 통증까지 재현하는 꿈은 없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은 넓었고, 가구는 전부 옛날식이었다. 옷장은 자개로 장식되어 있었고, 화장대에는 은으로 만든 것 같은 손거울이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기와지붕이 줄지어 보였다. 여긴 대체 어디일까. 몸을 일으키려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여자였다.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회색빛이 도는 시녀복을 단정하게 입은. 걸음걸이가 조용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표정은 얼음장 같았는데, 그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웃지 않는 얼굴이 이렇게 정돈되어 보일 수 있다는 게. "일어나셨습니까." 존댓말이었다. 그런데 존댓말인데도 존중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적이었다. 상사가 부하에게 형식적으로 건네는 인사 같은. 나는 순간적으로 '저 사람 나한테 화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누구세요?" 내 질문에 여자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눈치챘다면 대단한 관찰력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훑어보았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윤서인입니다. 이 저택의 시녀장이고요." 시녀장. 나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새겼다. 그러니까 여기는 저택이고, 나는 저택의 주인쯤 되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시녀장이 나를 보는 눈빛이 어째서 이렇게 차가운 걸까. 시녀장이면 주인을 잘 모시는 게 일 아닌가.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몰랐다. 어제까지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오늘은 낯선 몸에 낯선 방에서 낯선 여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게 기억상실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진짜인 기억상실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어렴풋이 뭔가 떠오르는 느낌조차 없었다. 완전한 백지였다. 윤서인이라는 여자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이 묘하게 길었다. 마치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사람처럼. "기억이... 없으십니까." 목소리에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듯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짚어낼 수가 없었다. "네. 아무것도요. 여기가 어딘지, 제가 누군지, 아무것도."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애초에 거짓말할 정보조차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에서 어떤 결심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나는 그게 무엇에 대한 결심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도련님." 도련님. 그 호칭이 낯설게 귓가에 걸렸다. 나는 도련님이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하룻밤 사이에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몸으로 옮겨진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문이 닫히기 전,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걸음걸이가 너무 정확했다. 마치 이 저택의 모든 동선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발끝이 향하는 방향, 문턱을 넘는 타이밍까지 전부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는데, 낮게 떨리고 있었다. "시녀장님, 도련님이 오늘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목소리가 다른 것 같아서."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목소리가 다르다는 걸 알아챈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조용히 해." 윤서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방금까지 나에게 보여줬던 사무적인 존댓말과는 완전히 다른 어조였다. "어제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말이 끊겼다. 문이 닫혔기 때문이다. 어제 일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내 것이 아닌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흉터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저 흉터는 언제, 어떻게 생긴 걸까. 이 몸의 진짜 주인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진짜 주인'이라는 표현이 맞기는 한 걸까. 문밖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이 몸의 주인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산 걸까. 그리고 시녀장이라는 저 여자는,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몸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부터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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