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Salon SOL의 홀은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조명이 낮아지고 잔잔한 재즈가 흘렀다. 낮에는 평범한 라운지 바처럼 보이던 공간이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얼굴을 했다. 벽에 걸린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빛을 뿌리고, 종업원들은 하나둘 검은 셔츠에 넥타이를 정리하며 홀로 나섰다.
이도현은 검은 셔츠 깃을 다시 한번 매만지며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하얬다.
'긴장하지 말자.'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어제 오리엔테이션에서 배운 인사법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허리를 숙이고, 이름을 부를 때는 눈을 마주치고, 절대 먼저 자리에 앉지 말 것. 사소한 것들이었는데도 막상 실전이라 생각하니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기분이었다.
거울 속 자신에게 어색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서야 도현은 홀로 나섰다.
***
유성이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오늘 지명 하나 들어왔어." 태연한 말투였다.
"지명이요?" 도현이 눈을 깜박였다. 아직 손님 얼굴도 익히지 못한 첫날인데.
"어, 특이한 케이스야." 유성이 웃었다. 뒷정리를 하다 말고 손에 든 냅킨을 접었다 펴며 말을 이었다. "신입 담당표 보고 딱 찍었나 봐. 장세라 씨라고, 매주 금요일마다 오는 단골이야."
"저를요? 처음 보는 손님인데."
"그런 사람들 있어. 신입 얼굴이 궁금해서 한 번 불러보는 거지." 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 마, 세라 씨 평판 괜찮아. 조용하고 매너 좋은 편이거든."
"그래도 좀 부담스럽네요." 도현이 솔직하게 말했다. 첫 손님이 지명이라니,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부담 가질 것 없어." 유성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덧붙였다. "솔직히 우리 가게 최고 우량고객이야. 진상 부리는 법도 없고, 팁도 후하고. 다들 세라 씨 담당 되고 싶어서 난리인데 네가 운이 좋은 거지."
"그렇게 좋은 손님이면 왜 저를…"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유성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가서 잘해봐. 첫 손님 잘 넘기면 앞으로 편해."
그야말로 안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정작 그 말이 안심이 되지 않았다는 걸 도현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
장세라는 정확히 여덟 시 십 분에 나타났다.
검은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은 포니테일, 깔끔한 정장 재킷, 손목에 걸린 시계는 값비싸 보였지만 화려하지 않았다. 화장은 진하지 않았고, 앉는 자세도 곧았다. 전형적인 능숙한 직장인의 인상이었다.
"처음 뵙네요." 세라가 자리에 앉으며 짧게 웃었다.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이도현 씨, 맞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도현이 고개를 숙였다. 배운 대로 눈을 마주치려 했는데, 세라의 시선이 워낙 담백해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세라는 메뉴판을 훑지도 않고 늘 마시던 걸 시켰다. 웨이터가 술병을 가져오는 동안 세라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도현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신입이라던데, 힘들지 않아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렇구나." 세라가 짧게 대답하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대화는 그렇게 툭툭 끊기며 이어졌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손님들보다 훨씬 편했다. 질문도 적었고, 웃음도 담백했다.
"이 일 오래 할 생각이에요?" 세라가 다시 물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도현이 잠시 말을 고르다 덧붙였다.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어요."
"솔직하네요." 세라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고 낮은 웃음이었다. "다들 그렇게 말은 안 하는데."
'생각보다 편한 손님이네.' 도현은 속으로 안도했다. 유성이 괜히 우량고객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부터 세라의 술잔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처음에는 한두 잔씩 천천히 비우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연달아 채워졌다. 도현이 술병을 따라주며 은근히 속도를 조절하려 했지만 세라는 그 손을 가볍게 밀어내고 스스로 잔을 채웠다.
두 번째 병이 비워질 즈음, 세라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의 차분함이 서서히 벗겨지고, 그 아래서 뭔가 다른 색이 비쳐 나왔다.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이 흐트러지는 게 정상인데, 세라는 반대로 날이 서고 있었다.
"이도현 씨." 세라가 갑자기 도현의 손목을 잡았다. 힘이 꽤 셌다.
"네?" 도현이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잡힌 손목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뼈를 감싸듯 정확하게 조여왔다.
"다른 손님들도 이렇게 웃어줘요?" 세라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말투는 여전히 정중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전혀 다른 무게였다.
"저... 손님 모두에게 예의는 지키려고 합니다." 도현이 조심스레 답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세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웃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그런 대답, 별로 안 좋아하는데."
순간 도현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지나갔다. 앞서 유성이 말한 '조용하고 매너 좋은 손님'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조용하고 매너 좋은 사람이 손목을 이렇게 세게 잡을 리가.
'이거… 뭔가 이상하다.'
손목을 쥔 힘이 조금씩 더 강해졌다. 세라의 눈은 도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방 안에 다른 손님이 있는 것조차 잊은 듯한 시선이었다. 홀 안에는 여전히 잔잔한 재즈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평온한 배경음이 지금 상황과 너무 어긋나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다.
"세라 씨." 도현이 애써 목소리를 가볍게 유지하며 말했다. "손목이 좀 아파서요."
세라는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담백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전환이 너무 빨라서 도현은 순간 방금 있었던 일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미안해요. 취했나 봐요." 목소리도 다시 낮고 차분해졌다. 마치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도현은 손목을 슬쩍 문지르며 세라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조금 전 그 눈빛과 지금 이 담담한 표정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도현은 알았다. 지금 눈앞에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을 본 것 같다는 걸.
그리고 그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세라는 다시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손끝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