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게시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이런 글을 올려도 되는 걸까.
나는 이웃챗 앱을 켜놓고 삼십 분째 같은 문장을 고쳐 쓰고 있었다.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웠다.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거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장은 이거였다.
[동네에 사시는 분 중에 혹시 감기나 몸살로 혼자 계신 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죽 끓여드리고 약도 챙겨드릴게요. 저도 자취 중이라 혼자 아플 때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서요.]
밑에는 손 글씨처럼 어설픈 이모티콘 하나를 붙였다. 지운다 만다 하다가 결국 그대로 뒀다.
엄마와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받아 내려간 지 여덟 달째였다. 나는 서울에 남아 혼자 자취를 했다. 밥은 대충 챙겨 먹었고, 청소는 미루다 몰아서 했다. 냉장고 안에는 삼각김밥이랑 편의점 반찬 몇 개가 굴러다니는 게 전부였다. 지난달엔 독감에 걸려 사흘을 앓았는데, 그때 아무도 없는 방 천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누가 죽 한 그릇만 끓여줬으면.
열이 39도까지 올랐던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떨었다. 물을 마시러 부엌까지 가는 것조차 힘들어서 그냥 참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뒀다. 괜히 걱정만 시킬 게 뻔했으니까. 아빠는 요즘 새 부서에서 정신없다고 했고, 엄마는 매일 밤늦게 퇴근한다고 했다. 두 분 다 나 하나 걸음 걷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그냥 참는 게 익숙했다.
그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결국 이런 글을 올려버린 거였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날 밤 그토록 바랐던 그 손길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올리자마자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이거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면 어쩌지.
변태로 신고당하면 어쩌지.
동네 커뮤니티에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혀서 이 앱조차 못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면서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뒤집었다. 알림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서운했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이상했다. 걱정을 하면서도 반응을 기다리는 그 모순이 스스로도 어이없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방 안을 서너 바퀴 돌았다. 침대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책상 위에 놓인 다 마신 감기약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사둔 게 아직 몇 알 남아 있었다.
삼십 분쯤 지나서 알림이 울렸다.
딩.
짧은 소리였는데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질 뻔했다.
[서윤_09] 정말 오실 수 있나요.
짧은 메시지였다.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글자 수가 몇 개나 되나 세어볼 정도로 짧았는데도, 그 안에 담긴 무게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장난인가.
아니면 진짜인가.
닉네임을 눌러 프로필을 확인해봤다.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가입일도 얼마 안 됐고, 프로필 사진도 없었다. 그냥 텅 빈 회색 원 하나뿐이었다.
답장을 보내는 손가락이 떨렸다.
[가능합니다. 지금 위치 알려주시면 바로 갈게요.]
보내고 나서야 아, 너무 성급했나 싶었다. 최소한 무슨 증상인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물어봐야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미 전송 버튼은 눌린 뒤였다.
답은 곧바로 왔다.
[서윤_09] ○○아파트 3동 1204호요. 문 앞에 서면 벨 눌러주세요.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혹시 함정은 아닐까.
낯선 사람 집에 무작정 찾아간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뒤늦게 실감이 났다. 인터넷에서 본 온갖 사건 기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혼자 사는 사람을 노린 범죄, 배달원을 가장한 사기, 뉴스에서 스치듯 봤던 헤드라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잠깐 휴대폰을 내려놓고 방 안을 서성였다.
가지 말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친구한테 전화해서 같이 가달라고 할까. 하지만 이 시간에 누구를 부를 수 있을까. 다들 야근이거나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답장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짧은 메시지 속에 담긴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정말 오실 수 있나요, 라는 문장에는 이상하게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혼자 아파본 사람만 아는 그런 절박함이었다. 나는 그 절박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겉옷을 걸쳐 입었다.
혹시 몰라서 위치 공유 앱을 켜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주소를 보내놨다. 만약 한 시간 안에 연락이 없으면 신고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편의점에서 죽 대신 쓸 재료들을 사고, 약국에서 해열제와 감기약을 샀다. 죽 봉투 두 개, 이온음료, 물티슈까지 꼼꼼히 챙겼다.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여는 손이 살짝 떨렸다.
봉투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아파트 단지 앞에 섰을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가을이었는데도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단지 안 가로등은 몇 개가 꺼져 있어서 골목이 유독 어둡게 보였다.
3동 앞에 서서 나는 심호흡을 세 번 했다.
1204호.
숫자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잊어버릴 것도 아닌데 계속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창백했다. 입술까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러다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숫자판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심장도 같이 뛰어올랐다.
3.
5.
8.
11.
숫자가 바뀔 때마다 나는 손에 쥔 죽 봉투를 꽉 움켜쥐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12층에 도착해서 복도를 걸어가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복도는 조용했다. 어느 집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거리며 이상한 리듬으로 점멸했다.
1204호 앞에 섰다.
문에는 아무 표식도 없었다. 평범한 현관문이었다. 도어록도, 화분도, 우편물도 없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벨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한 번 휴대폰을 확인했다. 서윤_09의 마지막 메시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문 앞에 서면 벨 눌러주세요.
손끝이 벨 위에서 멈췄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엘리베이터까지는 몇 걸음이면 된다. 그냥 뒤돌아서 걸어가면 그만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벨을 눌렀다.
딩동.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십 초.
이십 초.
심장이 점점 빨리 뛰었다.
혹시 없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뭔가 잘못된 걸까.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일까. 아니면 정말 아파서 문을 열어줄 힘조차 없는 걸까.
그 순간, 안에서 느릿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발소리는 이상하게 느렸다. 아픈 사람의 걸음처럼, 힘겹게 끌리는 소리였다.
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문이 천천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