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철창 안, 구석에 웅크린 그림자 하나.
낡은 담요 한 장, 고양이 귀가 달린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팔목에 남은 여러 개의 붉은 자국. 처음 눈에 들어온 건 그 세 가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슷한 철창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안에는 사람도 있고, 짐승 귀가 달린 아인종도 있고, 아예 인간이라 부르기 애매한 것들도 있었다. 다들 팔거나 팔릴 물건처럼 조용했다. 흥정하는 소리, 쇠사슬 끌리는 소리, 어딘가에서 나는 낮은 기침 소리. 그게 이 지하 시장의 배경음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안다. 나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여기 있다. 그게 문제였다.
박덕수가 들고 온 등불이 철창 안을 비췄다. 그림자가 움찔했다. 얼굴이 살짝 들렸다. 나이는 열여덟이나 아홉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눈빛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텅 비어 있었다.
"이게 강철의 방패였다고요?" 나는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한 톤 높아졌다. 강철의 방패라는 별명은 몇 달 전부터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오크 부대를 막아낸 탱커, 파티 전멸을 홀로 저지한 사람. 그런 종류의 무용담은 술집에서도 몇 번 들었다. 그 당사자가 지금 내 눈앞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철창 바닥에 웅크려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 근데 사실이야." 박덕수가 열쇠를 만지며 대답했다. "오크 부대 하나를 혼자 막아낸 게 반년 전이야. 그리고 지금은 저 상태고. 사람이 무너지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반년이면 짧은 것도 아니잖아요."
"짧아. 몰라서 그래, 여긴." 박덕수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사람 정신 무너지는 건 하루면 돼. 반년이나 버틴 게 오히려 대단한 거야."
나는 철창 앞에 쭈그려 앉았다. 하윤이라는 여자, 정확히는 소녀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시선은 바닥 어딘가에 고정돼 있었다. 손톱 밑이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흔적도 보였다. 전투 중에 생겼을 상처인지, 여기 갇힌 뒤 생긴 상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름이 하윤이라고요."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그녀의 눈이 나를 마주치지 않았다. 스킬이 발동하려면 시선을 마주쳐야 한다. 그 조건조차 채워지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했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살짝 흔들어 보고, 등불을 그녀 눈높이로 가져가 보기도 했다. 그녀의 시선은 늘 반보쯤 옆으로 미끄러졌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있던 자리를 보는 것 같았다.
"저래. 아무 반응 없어." 박덕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밥도 강제로 넘겨야 겨우 먹고, 안 그러면 그냥 저러고 있어. 가끔 밤에 소리를 지르는데, 그때 손목을 그어. 관리인들이 밤에 안 자고 지켜야 할 정도야."
"자해를 막을 방법은 없어요?"
"묶어놓지. 근데 그럼 상품 가치가 떨어져." 박덕수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 말투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에게는 저 소녀가 정말로 '상품'이구나. 다른 게 아니라 딱 그거였다.
나는 그녀의 팔목에 남은 흉터를 다시 보았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자국이었다. 오래된 것도 있고 최근 것도 있었다. 하루 이틀의 상처가 아니었다. 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순간 뭔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딱히 동정이라고 부르긴 애매한, 그냥 불쾌한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원래 남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곡소리보다 상주 표정을 먼저 살피는 부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철창 앞에서는 계산이 잘 안 됐다.
"다른 물건은 없어요?" 나는 일단 물어보기라도 했다. 스스로도 궁색한 질문이라는 걸 알았다.
"있지. 근데 다 저 상태보다 못해. 반쯤 미친 것들, 말 자체를 못 하는 것들. 얘는 그나마 명령엔 반응해." 박덕수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탱커 출신이라 몸도 튼튼하고. 손해 볼 물건은 아니야."
물건. 그 단어가 자꾸 귀에 걸렸다.
"살게요." 나는 말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결정이었다.
"오, 진짜?" 박덕수가 반색했다. "현명한 선택이야. 계약서 쓰자고."
그는 나를 좌판 뒤편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과 붓, 그리고 작은 은빛 목걸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방 안에는 곰팡이 냄새와 낡은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책상 다리 한쪽이 짧아서 앉을 때마다 삐걱거렸다.
끼익. 끼이익.
박덕수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그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예속의 목걸이야." 박덕수가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노예의 목에 걸면 주인에게 물리적으로 해를 끼칠 수 없게 돼. 주인이 죽으라고 명령하면 자결도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안 통해. 도망도 못 가고. 대신 주인이 이 목걸이를 벗기면 그 즉시 계약이 풀려."
"강제로 벗기면요?"
"목걸이가 목을 조여서 노예를 죽여. 그러니 함부로 못 빼앗아. 이 시장의 기본 룰이야." 박덕수는 그렇게 설명하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 여기 서명하고. 조건은 딱 하나. 은화 한 냥."
나는 계약서를 훑어보았다. 조항은 간단했다. 소유권 이전, 하윤의 신체적 위해 금지 조항(구매자가 상품에 고의로 상해를 입힐 경우 흑시장 협회에 신고 가능이라는 형식적 문구), 그리고 재판매 시 협회 승인 필요라는 조항. 글씨는 흘림체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협회 신고 조항 옆에 작은 글씨로 "단, 신고 접수 후 처리 기간은 협회 사정에 따름"이라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별 의미 없는 조항들이었다. 이 도시에서 노예에게 인권이랄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이 여자를 데려가면, 정말로 상황이 나아질까.'
집세는 밀려 있고, 빚쟁이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올 거고, 내 통장에는 은화 한 냥을 쓰고 나면 며칠 버틸 돈밖에 안 남는다. 여기에 입 하나를 더 들이는 게 제정신인가. 스스로에게 몇 번을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수중에 남은 선택지는 이것뿐이었다. 나는 서명했다.
박덕수는 흡족한 얼굴로 은화 한 냥을 받아들고, 목걸이를 챙겨서 다시 철창 앞으로 갔다. 은화가 손바닥 위에서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그 소리마저 아까웠다.
"이거 걸면 끝이야. 자, 목 좀 들어봐." 그는 하윤의 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인형처럼 몸을 맡겼다. 관절이 뻣뻣하게 움직였다. 오랫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몸 같았다.
박덕수가 목걸이를 걸자, 그것이 파랗게 한 번 빛났다. 계약이 성립됐다는 신호인 듯했다.
빛은 짧았다. 목걸이는 다시 그냥 은빛으로 돌아왔다. 하윤의 표정은 그 사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자, 이제 자네 거야." 박덕수는 손을 털며 말했다. "관리 잘해봐. 아, 그리고 하나 더."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 애, 가끔 발작하면 진짜 위험해. 힘이 미쳤거든. 예속의 목걸이가 있어도, 발작 중에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건 못 막아. 그건 명령이 아니라 본능이니까."
"발작이 얼마나 자주 오는데요?"
"몰라. 불규칙해. 어떤 날은 조용하고, 어떤 날은 밤새 소리 지르고." 박덕수가 대충 손을 저었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 나는 팔았고, 자네는 샀고. 끝이야."
거래는 그런 식으로 끝났다. 사람 한 명이 오가는데도, 물건 한 상자 넘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하윤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텅 빈 눈이었다.
"일어나." 나는 시험 삼아 말해보았다. 목걸이의 효과인지,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명령에는 반응하는구나. 그 사실이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서글펐다. 감정이 없는 반응이었다.
"걸어." 한 번 더 해봤다. 그녀는 걸었다. 딱 내가 말한 만큼, 더도 덜도 없이.
나는 그녀를 데리고 흑시장 계단을 올라갔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하윤은 담요를 두른 채 내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넘어지거나 헛디디지 않았다. 몸에 밴 균형감각만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강철의 방패였다는 말이 그 순간만큼은 조금 믿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계속 그녀를 힐끔거렸다. 눈을 마주치려 해도 그녀의 시선은 늘 다른 곳에 있었다. 스킬을 걸 조건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골목을 두 개 지나고, 노점 문 닫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 여자를 데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생각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방에 도착해서 나는 그녀를 구석 자리에 앉히고 물었다.
"밥은 먹었어?"
대답은 없었다. 나는 남은 빵 한 조각을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 그녀는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잠시 그 빵을 다시 집어서 그녀 입 앞까지 가져다 대볼까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강제로 먹이는 건 박덕수가 하던 방식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거, 정말 잘 산 걸까.'
집세도, 빚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입 하나가 더 늘었다. 방세는 그대로고, 식비는 늘고, 게다가 저 목걸이가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이러다 정말 망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한숨을 쉬며 벽에 등을 기댔다.
그때, 하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확실히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처음으로 위를 향했다. 나를 보는 게 아니라, 허공의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손끝의 떨림은 점점 커졌다. 어깨까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숨소리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인형 같던 몸이, 지금은 뭔가에 반응하듯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발작인가.
박덕수의 말이 떠올랐다. 예속의 목걸이도 못 막는다는 그 발작. 나는 아직 그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