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여름방학을 앞둔 7월의 교실은 후텁지근했다. 낡은 선풍기가 천장에서 힘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날개가 돌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섞여 들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매미 울음소리가 교실 안 정적을 메웠다. 칠판 위에 걸린 시계는 오후 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고, 점심을 먹은 아이들의 나른한 웅성거림이 교실 곳곳에서 낮게 퍼졌다.
강민준은 창가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노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반에서 눈에 띄는 편이 아니었다. 성적은 중상위권, 말수는 적었고, 누구와도 특별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그저 존재감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굳이 고개를 든 이유는 뒤쪽에서 들려온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 야, 서은채. 그 도시락 좀 그만 먹어라. 옆에서 보는 사람이 숨 막힌다.
한도영이었다.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 축구부 주장, 늘 여러 명을 몰고 다니는 아이. 그가 씩 웃으며 서은채의 도시락통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도시락 안에는 특별할 것 없는 반찬들이 담겨 있었다. 계란말이, 김치, 소시지볶음. 흔한 것들이었다.
서은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도시락 뚜껑을 조용히 닫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젓가락을 쥔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 아니 왜, 살 뺄 생각 없어? 그러다 나중에 시집도 못 가겠다.
주변에서 몇몇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은 크지 않았지만, 교실 전체에 스며들 만큼은 되었다. 누군가는 대놓고 웃었고, 누군가는 애매하게 시선을 피하며 웃음을 삼켰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늘 그런 식이었다.
강민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이어폰을 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계획한 행동은 아니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을 뿐이었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 한도영.
낮고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교실 안 소음이 순간 잦아들었다. 몇몇 아이들의 시선이 강민준에게 쏠렸다. 평소라면 있는지도 몰랐을 존재감이 갑자기 교실 전체를 채운 느낌이었다.
한도영이 고개를 돌렸다. — 뭐야, 강민준. 갑자기 왜 끼어들어.
— 재미없는 소리 그만해. 도시락 먹는 것도 니가 참견할 일이야?
한도영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 오, 너 서은채 편이야? 뭐 있냐?
주변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다시 번졌다. 누군가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은채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도시락통을 다시 열어주었다. 아무 말 없이. 뚜껑이 열리는 작은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 먹어.
한마디를 덧붙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서은채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알 수 없었다. 도시락통을 감싸고 있는 손등에 힘이 들어갔다.
한도영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섰다. — 됐다, 재미없네.
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친구들에게 뭔가 낮게 말했다. 웃음이 다시 터져 나왔지만, 아까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어색함을 지우려는 웃음이었다.
웃음소리가 흩어지고, 교실은 원래의 소음으로 되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선풍기는 여전히 힘없이 돌아갔고, 매미 울음소리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서은채는 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라는 걸.
방과 후, 서은채는 옥상 계단 아래 구석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계단 벽에는 오래된 낙서 몇 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방은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한 자세였다.
— 여기 있었네.
강민준이었다. 그는 계단 두 칸 아래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자신의 가방이 들려 있었다.
서은채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 왜, 왜 여기까지 왔어?
— 그냥. 신경 쓰여서.
짧은 대답이었다. 서은채는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강민준은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녀와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 사이로 여름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 매번 저런 식이야?
서은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 익숙해졌어. 상관없어.
— 상관없다는 사람 눈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서은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참아왔던 것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듯한 떨림이었다.
‘또 이런 얼굴이야.’
강민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딱히 서은채와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반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접점이 없었다. 일 년 가까이 같은 교실에서 지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저 어깨의 떨림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 서은채.
그녀가 젖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이번 여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와서 저 녀석 코를 눌러주자.
서은채의 눈이 커졌다. — 뭐?
— 방학 두 달이면 충분해. 내가 도와줄게.
— 갑자기 왜 그런 말을... 놀리는 거야?
강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 놀리는 거 아니야. 그냥... 저런 식으로 웃음거리 되는 거, 보기 싫어서.
서은채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렇게 정면으로 자신을 위해 나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장난기도, 동정도 섞이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참고 있던 것이 무너진 것처럼. 한 번 터지자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지만 소용없었다.
— 진짜... 해도 돼?
— 하는 거야. 오늘부터.
강민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미 결정된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서은채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지만 분명한 끄덕임이었다. 그 끄덕임 속에는 지금까지 삼켜왔던 수많은 순간들이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두고 봐, 한도영.’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처음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견디는 것밖에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감정이, 낯설지만 분명한 어떤 의지가 그녀 안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계단 아래로 부는 여름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매미 울음소리가 다시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바람 속에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두 달 뒤의 변화가 숨어 있었다.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 내일부터 시작하자.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서은채는 여전히 붉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달 후, 이 여름의 끝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