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5억 냥에 팔린 몰락 영애

1화

지하 별채의 공기는 습하고 차가웠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가 돌바닥에 얕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 위로 촛불 하나가 흔들리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곳곳에 낀 이끼 냄새와 오래된 쇠 비린내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는데, 그 냄새는 마치 이 방이 오랫동안 사람의 비명을 삼켜온 곳이라는 걸 증언하는 듯했다. 하씨 백작가의 기사 강혁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묶인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은 마치 벌레를 관찰하는 사람의 눈빛과 같아서 사내는 벌써 몇 번이나 숨을 헐떡였다. 의자에 묶인 사내의 손목에는 밧줄이 파고들어 벌겋게 부어오른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손끝은 쉴 새 없이 떨렸다. 강혁은 그 떨림을 잠시 응시했다. 두려움이란 이렇게 손끝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 감정보다 몸이 먼저 배신한다는 것을 십분 활용해왔다. "다시 묻겠다." 강혁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 서린 냉기는 방 안의 온도를 몇 도쯤 더 떨어뜨리는 듯했다. "어제 새벽, 노예 경매장에서 오간 오억 냥.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말해라." 중개상 사내는 이마에 맺힌 땀이 턱 끝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 저는 그저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심부름꾼일 뿐이라구요." "심부름꾼이 오억 냥을 만졌다." 강혁이 한 걸음 다가서며 사내의 턱을 손끝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은 부드러웠지만 그 부드러움 안에는 언제든 부러뜨릴 수 있다는 무언의 경고가 배어 있었다. "그 손이 누구를 위해 움직였는지, 나는 그게 궁금할 뿐이야." 사내는 눈알을 굴리며 방 안의 어둠을 훑었다. 이곳에는 강혁 말고도 벽에 붙어 선 시종 하나가 더 있을 뿐이었으나, 그 시종의 무표정한 얼굴조차 사내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촛불의 그림자가 시종의 눈두덩을 깊게 파놓아, 마치 두 개의 검은 구멍이 사내를 지켜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저는, 저는 그저 계약서에 서명만 했습니다. 의뢰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게 규칙이라서요." "규칙." 강혁이 그 단어를 되씹듯 낮게 뇌었고,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조롱에 가까운 미소였다. "규칙이라는 걸 지키다가 목이 달아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너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사내의 얼굴이 삽시간에 희게 질렸다. 핏기가 빠져나간 얼굴은 오래된 양피지처럼 거칠고 건조해 보였는데, 그 위로 촛불의 붉은 빛이 얹히자 마치 죽은 사람의 낯빛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기, 기사님. 저는 정말로 이름을 모릅니다. 대리인을 거쳤을 뿐이라고요." "대리인." 강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냄새가 좋지 않았다. 노예 경매장에서 오억 냥이라는 거금이 흘러들어 한 여자아이를 사들였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그것이 단순한 취미나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오억 냥이면 웬만한 소작지 몇 개를 통째로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그런 돈을 노예 하나에 쏟아부을 사람은, 최소한 이 저택의 규모를 아는 자 중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여자아이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강혁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그 우연의 결이 너무나 정교하게 짜여 있어 오히려 우연이 아니라는 의심을 부추겼다. 그는 그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이 지하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좋다." 강혁이 뒤로 물러서며 팔짱을 다시 꼈다. "대리인의 이름부터 말해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캐낼 테니." 사내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마치 이 결정이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오래도록 침묵을 지켰다. 방 안을 메운 정적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촛불이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갈라놓고 있었다. 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톡, 톡 떨어지는 소리마저 이 순간에는 지나치게 크게 울렸다. 강혁은 기다렸다. 그는 이런 종류의 침묵을 재촉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겁에 질려 있을 때,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입을 열게 되는 법이었으니까.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사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그 배후가... 이 저택 안의 사람이라면, 기사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강혁의 턱이 단단하게 조여지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아주 짧게 새어 나왔다.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이었다. 그는 사내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하다가, 마침내 낮게 되물었다. "이 저택 안의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저택의 안채가 있는 방향을 향해 흘러갔다가 서둘러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강혁은 놓치지 않았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사내의 앞에 다시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촛불이 두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비추었고, 그 붉은 빛 아래에서 강혁의 눈동자는 뱀의 눈처럼 미끄러지듯 사내의 얼굴 구석구석을 훑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몇몇 이름이 떠올랐다가 지워지고 있었다. 백작가의 안채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오억 냥이라는 돈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더 적었다. 강혁은 그 좁은 원 안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이름을 말해."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명령이라기보다 경고에 가까운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음에 이 방에 들어올 사람은 내가 아닐 거다." 그 말에 사내의 몸이 순간적으로 흠칫 떨렸다. 그는 강혁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눈치였다. 이 저택에는 강혁보다 더 무서운 손을 가진 자가 있었으니까. "기, 기사님. 정말로 제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이대로 이름을 말했다가는..."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네 목숨은 이미 걸려 있다." 강혁이 그 말을 자르듯 끼얹었다. "지금 이 순간, 네가 어느 쪽 손에 목숨을 맡길지 결정해야 할 뿐이야." 사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마침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고, 그 순간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 셋으로 겹쳐지며 지하 별채의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시종 하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강혁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는데, 그 내용을 듣는 강혁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을, 사내는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시종의 입술이 움직이는 몇 마디 사이, 강혁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떠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했는데, 그 변화가 마치 그의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다시 쌓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확실한가." 강혁이 되물었다. 시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끄덕임 하나에 담긴 확신이, 오히려 강혁의 얼굴에서 핏기를 앗아가는 듯했다. 강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사내를 내려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의 냉정함 대신 낯선 종류의 동요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될 것 같군." 그가 중얼거렸다. "이미 답을 들었으니." 사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강혁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 이 방을 지배했던 냉기와는 다른, 훨씬 더 위태로운 무언가가 그 얼굴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말을 남기고 강혁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평소와 다름없이 절제되어 있었지만, 사내는 그 등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사내를 몰아붙이던 뱀이, 이제는 더 큰 먹잇감을 향해 조용히 몸을 돌려 미끄러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방금 시종이 전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사내는 끝내 알지 못했다. 다만 촛불이 다 타들어가고 어둠이 방 안을 완전히 메울 때까지, 사내는 그 이름 하나가 자신의 목숨과 이 저택 전체를 뒤흔들 무게를 지녔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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