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소문은 예상보다 빠르게 퍼졌다. 이서윤이 강태오한테 들이댔다더라. 강태오는 안 받아주는데 자꾸 쫓아다닌다더라. 나는 교실 문을 열자마자 그 시선들을 온몸으로 느꼈다. 여러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향했다가, 내가 눈을 마주치려 하면 재빨리 흩어졌다. 이번엔 방향이 달라진 소문이었다. 예전처럼 나를 헤픈 애로 몰던 것에서, 이제는 나를 강태오에게 매달리는 애로 몰고 있었다.
책상에 앉는 순간부터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낮게 낮게, 그러나 내 귀에는 또렷하게. 야, 걔 진짜 웃기지 않냐. 자기가 먼저 들이대놓고 왜 저래. 나는 필통을 여는 손끝이 떨리는 걸 느꼈다.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더 이상해 보일 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노트를 펼치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첫 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억울했다. 나는 강태오에게 특별히 들이댄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도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자꾸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아침마다 그의 신발장을 살짝 확인했고, 저녁이면 302호에 불이 켜졌는지 올려다봤다. 심지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고를 때도, 그가 좋아할까 안 좋아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그 마음이 소문처럼 들이대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남들 눈엔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다은이 급식실에서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야, 신경 쓰지 마. 원래 걔들 심심해서 그런 거야. 나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근데 진짜예요, 제가 좀... 표시 낸 건가요. 다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표시는 무슨. 넌 그냥 그 앤 근처만 가도 얼굴 빨개지는 게 문제지.
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다은은 장난스럽게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걔한테 관심 있는 거 맞잖아. 아니라고 하지 마, 딱 보여. 나는 부정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밥을 뒤적이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다은은 그런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걔 좀 그런 스타일이야. 누가 다가오면 오히려 더 뒤로 빼는 애. 부모님이 하도 이사를 다녀서 뭘 정 붙이는 거 자체를 싫어해. 다은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 나는 그냥 처음부터 안 되는 거였나. 밥알이 목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다은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그거 알아? 걔가 저번에 옆 반 애가 준 초콜릿도 안 받고 그대로 돌려줬대. 정말 누구한테도 마음 안 여는 애야. 그러니까 너무 상처받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이상한 기대를 품었다. 초콜릿은 돌려줬는데 내가 준 반찬은 왜 돌려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날 저녁, 나는 결심을 했다. 그냥 마음을 접는 게 낫겠다고. 이런 소문 속에서 계속 마음을 키워봐야 나만 다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멸치를 넣고, 된장을 풀었다. 도마 위에 대파를 썰면서 나는 몇 번이나 그만두려 했다. 이러지 말자, 이서윤. 그런데 손은 이미 두부를 깍둑썰기하고 있었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에 자주 끓여주던 된장국이었다. 국물이 끓어오르며 구수한 냄새가 좁은 원룸을 가득 채웠고,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다시 서글퍼졌다.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 건지, 강태오 생각이 나서 그런 건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나는 그걸 작은 통에 담아 302호 문 앞에 놓았다. 쪽지도 하나 붙였다. 어제 감사했어요. 별거 아니지만 드세요. 손글씨가 삐뚤빼뚤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두 번이나 다시 썼다.
다음 날 아침, 통은 깨끗이 비워져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답장도 없이. 나는 그 텅 빈 통을 보며 알 수 없는 서운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적어도 거절당한 건 아니었으니까. 통을 씻으며 나는 몇 번이나 302호 쪽을 흘긋거렸다. 문은 그저 조용히 닫혀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강태오가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쪽지 한 장이 사물함에 꽂혀 있었다. 옥상, 종례 후. 짧은 여섯 글자였는데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는 평소보다 더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흔드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오래 눈에 남았다. 나는 긴장하며 그의 앞에 섰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거, 자꾸 안 해도 돼.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반찬 얘기하는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긴 한데, 이런 거 계속하면 오해만 더 생겨. 학교에서도, 빌라에서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해라니, 그게 나쁜 거예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대답했다. 나쁜 건 아니고. 그냥, 너한테 좋을 게 없다는 거야.
나는 그 말에 화가 나기보다 서글퍼졌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절당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 안쪽이 뜨거워졌지만 눈물은 참았다. 여기서 울면 진짜 매달리는 애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반찬은 안 갖다 줄게요. 대신 나 계속 이웃이니까, 인사는 해도 되죠.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끝까지 웃음을 유지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뭐. 그 짧은 대답 하나에 나는 안도했다. 완전한 거절은 아니라는 걸, 나는 그 틈을 붙잡고 매달리듯 붙들었다. 인사 정도는 괜찮다는 거지. 그럼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거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몇 번이나 되새겼다.
옥상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가 뒤에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국은 맛있었어.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표정이 다 들킬 것 같아서 그냥 계단으로 향했다.
그런데 옥상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는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아래층 여자애들 몇 명이 나에 대해 떠드는 소리였다. 계단 난간에 몸을 붙이고 서서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번엔 진짜 웃긴 얘기까지 섞여 있었다. 강태오가 이서윤 임신시켰다는 말까지 나온다더라. 한 애가 킥킥거리며 말했고, 다른 애가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웃었다. 나는 계단 중간에 멈춰 서서 그 말을 들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문이라는 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나는 그제야 다시 깨달았다.
내려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래에서는 계속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등을 벽에 붙이고 숨을 죽였다. 조금 전까지 옥상에서 느꼈던 작은 안도감이, 순식간에 다시 불안으로 뒤덮이는 걸 느꼈다. 이 소문이 강태오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는 또 나를 부를까, 이번엔 무슨 말을 할까. 나는 계단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아래에서 웃고 있는 애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