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공기가 달라져 있는 걸 느꼈다. 애들의 시선이 나와 강태오 사이를 번갈아 오갔다. 눈이 마주치면 슬쩍 피하고, 옆자리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고, 다시 나를 힐끔거렸다. 옥상에서 둘이 뭘 했냐는 눈빛들. 소리는 없었지만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지퍼를 여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니다, 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강태오는 늦게 등교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이어폰을 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어제 옥상에서의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게만 특별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목소리가 귓가를 지나갔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칠판을 보고, 또 강태오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그런 식으로 두 시간을 흘려보냈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복도 끝에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여자애가 나를 불러 세웠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기, 이서윤 맞지. 나는 경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지레 짐작했다. 소문에 대한 확인이거나, 비아냥거림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 애는 예상과 다른 말을 꺼냈다. 나 박다은. 태오 친구야. 어릴 때부터. 나는 눈을 깜빡였다. 다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훑어보더니 씩 웃었다. 걔가 어제 옥상 얘기 좀 하더라고. 별로 말 안 하는 앤데, 너 얘기는 몇 마디 했어.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뭐, 뭐라고 했는데요. 다은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소문이랑 다른 애 같더라고. 그게 다야. 그 애 원래 그런 말 잘 안 해. 그러니까 신기해서 물어보러 온 거고.
다은은 나와 나이가 같았지만 말투가 편했다. 그리고 소문 같은 거 신경 안 쓰는 게 딱 보였다. 야, 근데 그 소문 진짜 개소리인 거 알지. 나도 알아. 너 매일 새벽에 삼각김밥 사가는 거 태오가 말해줬거든. 그런 애가 밤마다 놀러 다닐 시간이 있겠냐고.
나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태오가 다은에게 나에 대해 말했다는 사실도, 그 말이 나를 변호하는 내용이었다는 사실도, 낯설고 뜨거웠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목이 메어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선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던가. 대부분은 힐끔거리다가 눈을 피하는 정도였고, 어떤 애들은 대놓고 수군거렸다. 나를 위해 뭔가를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다은은 내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감동해. 별거 아니라니까. 그러고는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이따 점심 같이 먹자. 나 혼자 먹기 싫어서 그래. 태오는 매점에서 대충 때우거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은은 손을 흔들며 반대편 복도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생긴 친구, 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점심, 나는 처음으로 급식실에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습관이, 오늘은 필요 없었다. 다은이 손을 흔들며 자리를 맡아놓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혼자 먹는 밥이 아니라는 것.
다은은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남자친구 얘기, 학교 뒷담화, 최근에 본 영화 얘기까지. 반찬을 집으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야, 그 영화 봤어? 결말이 진짜 뭐냐. 그리고 우리 반 담임 있잖아, 어제 교무실에서 딴 선생님이랑 싸우는 거 봤다니까. 나는 대부분 듣기만 했지만, 오랜만에 웃었다. 웃는다는 감각이 낯설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소리가 새어 나오는 그 흐름이, 마치 오래 써서 삐걱거리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밥을 먹으며 다은이 물었다. 근데 너 진짜 태오랑 아무 일도 없었지.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날 옥상에서 우연히 만났을 뿐이에요. 다은은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근데 너 걔 얘기할 때 표정이 다르던데. 나는 놀라서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릇에 부딪는 소리가 나서 옆자리 애들이 잠깐 쳐다볼 정도였다. 다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마치 내가 당황했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봐주는 것 같았다.
급식실을 나오면서 다은이 말했다. 다음에 또 같이 먹자. 혼자 먹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아닌 말이었는데도 그날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행나무빌라 입구에서 강태오와 마주쳤다. 그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 안에 든 게 뭔지 얼핏 보였다. 삼각김밥 두 개, 컵라면 하나.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저기, 어제 옥상에서... 그리고 다은한테도, 감사해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골목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나를 보더니 짧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그러고는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울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302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무심한 태도 뒤에 숨은 그 배려가 이상하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별거 아니라는 말을, 그는 참 쉽게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별거였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자꾸 가슴 어딘가를 눌렀다.
집에 들어와서도 그 말이 떠나지 않았다. 별거 아니야. 그 짧은 네 글자가 왜 이렇게 오래 머무는 걸까.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태오가 다은에게 내 얘기를 했다는 것. 삼각김밥을 매일 사 간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그건 그냥 지나가는 관심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음 날 등굣길, 나는 이상한 시선들을 다시 느껴야 했다. 이번엔 조금 다른 종류의 소문이었다. 교문을 지나 신발장 앞에 서자, 몇몇 애들이 나를 보며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어제와는 결이 달랐다. 조롱이 아니라 뭔가를 안다는 듯한, 은근한 웃음.
이서윤이 강태오랑 사귄다더라. 게다가 그 옥상 일이 다르게 부풀려져 학교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옥상에서 손을 잡았다더라, 아니 그날 밤에 같이 있었다더라, 별의별 말들이 덧붙어 있었다. 나는 신발을 갈아신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어제까지의 소문은 최소한 나를 나쁘게 몰아가는 방향이었는데, 오늘의 소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이 더 무서웠다. 강태오는, 이 소문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