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다음 목표는 이도훈입니다.]
화면에 뜬 그 열 글자가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라고?'
손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
휴대폰을 쥔 손가락 사이로 땀이 배어 나왔다.
"도망쳐야 해요."
한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 조용하던 애가 이렇게 다급해질 수 있다니.
'재밌네.'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한별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손이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이상하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장난치지 말고요. 지금 진짜예요."
"알아. 아니까 웃는 거야."
"안 웃겨요."
"나도 알아."
저 멀리서 무전기가 지지직 울렸다.
노란 통제선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사이로 검은 구두가 걸어왔다.
또각.
또각.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발밑엔 진흙과 부서진 나뭇가지가 널려 있었는데도, 그 구두는 소리를 흡수하는 것처럼 조용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조사관이었다.
표정 하나 없이 다가왔다.
등산객을 실은 들것 옆에서 잠시 멈추더니,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목표라는 걸, 알고 있습니까."
주변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
들것 위 등산객의 팔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팔목에 감긴 붕대가 이미 붉게 젖어 있었다.
나는 시선을 억지로 조사관에게 돌렸다.
"어."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들키면 안 돼.'
허세를 부렸다.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당신들이 만든 괴물이잖아."
조사관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말줄임표가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바람이 그의 코트 자락을 스쳤는데도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규정상, 우리는 목표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럼 뭐 하러 온 거야."
"경고입니다."
"경고만 하고 끝이야? 그럼 나 죽으면 어떡할 건데."
"...죽으면, 사후 처리를 합니다."
그 대답이 너무 무미건조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한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진짜구나.'
장난이 아니었다.
한별이 조사관을 향해 뭔가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 조심스러운 몸짓이, 평소의 한별답지 않았다.
"저 뒤로 가."
나는 한별의 팔을 잡아끌었다.
한별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조사관의 구두는 흙탕물 위에서도 여전히 깨끗했다.
그게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저 사람은 대체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멀어지는 등 뒤로 조사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도훈 씨."
"뭐."
"몸조심하십시오."
그 말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억양 없는 그 한마디가, 오히려 가장 진심처럼 들렸다.
---
일주일 후.
"전학 간다고요?"
한별이 되물었다.
교실 뒤, 창가 자리였다.
햇빛이 책상 위 먼지를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천청제국."
나는 짐 정리를 하며 대답했다.
공책이며 필기구를 상자에 쑤셔 넣는데, 손이 자꾸 헛돌았다.
"거기가 어딘데요."
"독보도. 대한민국에서 독립한 나라. 몰라?"
"알아요. 그냥... 왜 갑자기."
사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버지 회사가 결승그룹과 계약을 맺었고, 그 조건으로 가족 전체가 이주하게 됐다.
원래는 신경도 안 쓸 일이었다.
서류 한 장, 도장 하나로 인생이 통째로 옮겨지는 그런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너 만들어 놓은 목표 명단, 봤지."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교실엔 아직 다른 애들이 몇 명 남아 있어서, 목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조심했다.
"내가 그쪽으로 가면, 넌 여기 있을 거야?"
한별의 눈빛이 흔들렸다.
'걸렸다.'
한별은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라면 곧바로 반박했을 텐데, 이번엔 대답이 늦었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따라가야겠죠."
한별이 낮게 말했다.
"제 일이니까요."
"아니, 그거 말고."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갤러리 앱이 켜졌다.
그 사진이 아직 있었다.
한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거 있는 한, 넌 어디든 따라와야 해."
"...알아요."
한별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절박함과 짜증이 섞인 떨림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게 조금 미안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미안해할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전학 절차는 이상할 정도로 빨리 진행됐다.
서류를 낸 지 사흘 만에 승인이 났다.
보통은 한 달도 넘게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별의 편입도 놀랍게 순조로웠다.
결승그룹 쪽에서 손을 쓴 게 분명했다.
혹은 여명광복단이.
"이상하지 않아?"
나는 물었다.
"뭐가요."
"너 편입 서류, 하루 만에 통과됐잖아."
"..."
한별은 대답 없이 창밖을 봤다.
창밖엔 이미 바다가 보였다.
독보도로 가는 배 위였다.
뱃머리에 부딪힌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다.
촤악.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갑판 위엔 우리뿐이었다.
바닷바람이 짜고 습했다.
한별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는데, 그 애는 손으로 대충 눌러 넘기며 여전히 앞만 바라봤다.
"불안해?"
내가 물었다.
"당연하죠."
"나도 그래."
"안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런 척하는 거야. 나도 무서워."
한별이 나를 잠깐 쳐다봤다.
그 눈빛에 뭔가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가 곧 사라졌다.
바다 냄새와 함께, 짠 침묵이 우리 사이에 잠시 내려앉았다.
"저기."
한별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흰 건물들이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초고도 기술로 지었다는 그 건물들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마치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배가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의 규모가 실감났다.
높이도, 넓이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유리로 된 외벽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항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정장을 입은 안내원들.
깃발.
그리고 그 뒤에.
깃발은 낯선 문양이었다.
독보도의 국기라고 했다.
흰 바탕에 짙은 남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어딘가 익숙한 모양이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등줄기가 굳었다.
'설마.'
먼저 도착해 있던 조사관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환영합니다."
그의 목소리엔 억양이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익숙한 듬직한 통제선 색깔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한별이 내 옆에서 숨을 삼켰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조사관도 알아챘을 것 같았다.
'왜 여기 있는 거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산속에서, 그 노란 통제선 너머에서 마주쳤던 그 얼굴.
같은 억양 없는 목소리, 같은 흠 잡을 데 없이 깨끗한 구두.
'설마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아니면...'
그 뒷말을 채 생각하기도 전에, 조사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이 똑바로 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