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뭘 묻고 싶은데요."
나는 되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조사관은 나를 잠시 응시했다. 눈빛이 서늘했다. 그 시선이 얼굴 표면을 스캔하듯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이 사람.'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아니, 실제로 안 깜빡인 건지 그렇게 느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얕아진다는 사실이었다.
"별지기와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입니까."
'그건 대답하기 곤란한데.'
머릿속에서 온갖 답변이 스쳐 지나갔다. 협박범이요. 사진 인질을 잡고 있는 사람이요. 그런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웃었다. 억지웃음이었다.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당겨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친구요."
"친구가 마법소녀의 변신 장면을 목격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등이 뻣뻣해졌다. 손바닥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저 사람,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나를 대신해, 한별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우연히 봤어요. 그게 문제인가요?"
한별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었다. 얼굴도 침착했다. 나만 유독 땀을 흘리고 있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
조사관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말줄임표가 그의 침묵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정적이 몇 초쯤이었는지 몰라도 나에겐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그는 등산객을 안아 들었다. 검은 코트 자락이 흙에 닿지 않았다. 여전히 신발도 깨끗했다. 이 산속에서, 이 난리를 겪고도 신발에 흙 한 톨 안 묻은 사람이라니. 정상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후송하겠습니다. 두 분은 돌아가십시오."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한별이 날카롭게 말했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처음 듣는 종류의 어조였다.
"규정입니다."
조사관이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밟아도, 낙엽을 스쳐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바스락.
작은 소리 하나조차 그가 사라진 방향에서 몇 초 늦게 들려온 느낌이었다.
"저 사람, 뭐야."
나는 한별에게 물었다.
"여명광복단이요."
"그건 아는데. 너랑은 무슨 사이인데?"
한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선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래전부터 봤던 사람이에요."
"얼마나 오래?"
"몰라요."
짧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더 캐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눈빛 어딘가에 벽이 세워진 게 보였다. 그 벽을 두드리면 뭔가 무너질 것 같았다.
산을 내려오는 길, 나는 어깨의 통증을 느꼈다. 저번에 다친 자리가 다시 눌린 모양이었다. 뻐근한 통증이 어깨뼈 안쪽부터 올라왔다.
"아, 아파."
"괴인한테 안 맞았잖아요."
한별이 무심하게 말했다.
"넘어져서 그래."
"그럼 조심하세요."
"너 나 걱정하는 거야?"
"아니요."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대답과 동시에 그녀의 발걸음이 살짝 빨라졌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킥킥 웃었다.
"거짓말 못 하네."
한별은 대꾸하지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뒷모습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는지 아닌지 궁금해졌지만, 굳이 앞질러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런 사소한 승리감이라도 챙겨야 오늘 같은 날은 버틸 수 있었다.
등산로 입구로 나오자 경찰들이 여전히 통제선을 지키고 있었다. 노란 테이프가 바람에 흔들렸다. 팔락, 팔락. 실종자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 등산객이 어떻게 처리될지도 알 수 없었다.
경찰 한 명이 무전기에 대고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코드명이었다. 저 사람들도 진짜 상황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저 사람, 괜찮아질까?"
나는 물었다.
"몰라요."
한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영혼을 뺏겼다며."
"...그런 사례는 처음 봐요."
그녀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발끝이 흙바닥 위에서 멈춰 선 채, 시선은 먼 산등성이를 향해 있었다.
"뭔가 이상해요."
"뭐가?"
"저번 괴인이랑 목적이 달라요. 저번엔 그냥 공격형이었는데, 이번 건 영혼을 흡수해요. 여명광복단이 뭘 만들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봤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협박당하는 처지에도 사건 자체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져 있고, 입술을 얇게 다물고 있었다.
'진짜로 이 일에 진심이구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협박이라는 카드로 그녀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이렇게 세상을 지키려 애쓰는 걸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굳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야, 별지기."
"...본명으로 불러요."
"한별아."
"뭔데요."
"오늘 밤에도 나와야 돼."
한별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눈빛에 짧은 원망이 스쳤다.
"왜요."
"사진 확인 좀 해야지. 백업도 해야 하고."
협박의 연장선이었다. 나는 늘 그렇게 그녀를 붙잡아 두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치사한 방법인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 곁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 그것뿐이었으니까.
한별의 표정이 굳었다.
"오늘은 안 돼요."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던 그녀였다.
"뭐?"
"임무가 있어요."
"임무? 무슨 임무."
"...말 못 해요."
나는 눈을 좁혔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늘 순순히 따라오던 그녀였다. 사진 얘기만 꺼내면 마지못해서라도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지금은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었다.
"협박이 안 통하는 거야, 지금?"
한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선이 잠깐 나를 향했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사진 얘기는 이따 해요. 지금은 급해요."
"뭐가 그렇게 급한데."
"...여명광복단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녀의 표정에 처음 보는 종류의 긴장이 있었다. 협박당하는 사람의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무게의 것이었다.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락이 왜 와."
한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후드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화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비췄다. 그 짧은 순간,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화면에 뜬 문자 하나.
[다음 목표는 이도훈입니다.]
숨이 턱 막혔다.
"이게 뭔 소리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온몸의 피가 순간적으로 얼굴로 몰리는 것 같았다.
한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그 눈빛 안에는 두려움과 함께, 처음 보는 종류의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도망쳐야 해요."
바람이 산길을 훑고 지나갔다. 노란 통제선이 팔락, 팔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저 멀리서 무전기 소리가 지지직 울렸다. 그 모든 소리가 갑자기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내 이름이, 저 조직의 목표 명단에 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