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목요일의 간식 침입자

2화

옥상 문은 원래 잠겨 있어야 했다. 관리 아저씨가 자물쇠를 새로 안 산 지 벌써 두 달째였다. 겨울방학 직전에 옛날 자물쇠가 얼어서 깨진 뒤로, 학교 예산이 어디로 새는지 아무도 새 자물쇠를 사다 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정확히는, 나뿐이었어야 했다. 나는 매주 목요일 7교시가 끝나면 슬쩍 가방을 챙겨서 이 계단을 올라왔다. 아무도 관심 없는 시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장소. 여기서 딸기맛 초코바를 까먹으며 하늘을 보는 게 내 일주일 중 유일하게 숨을 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공기가 완전히 깨졌다. 강나윤은 그 고장난 문을 태연하게 열고 들어갔다. 삐걱, 하는 소리마저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 없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원래부터 여기 드나들던 사람처럼. "어, 어떻게 알았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정확히는 내 손끝부터 떨리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초코바 껍질이 구겨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몰랐는데."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밀어봤더니 열리던데." 허무했다. 몇 달 동안 나만 알고 있다고 믿었던 비밀 아지트가, 순전히 그녀의 즉흥적인 손짓 하나로 뚫려버렸다. 세상에서 나만 아는 장소라는 게 얼마나 하찮은 착각이었는지, 그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옥상은 조용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날렸고, 멀리서 축구부의 호루라기 소리가 짧게 두 번 울렸다. 운동장 쪽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지만, 여기까지 닿기엔 너무 멀었다. 그녀는 난간 쪽으로 걸어가더니 팔짱을 끼고 나를 돌아봤다. 교실에서 보던 강나윤과는 조금 달랐다. 교실에서는 항상 웃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의 편도 들어주고, 남자애들이 시비를 걸어도 웃으면서 받아치는 그런 얼굴. 그런데 지금 이 옥상에서 나를 보는 눈빛은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좀 더 날카롭고, 좀 더... 지쳐 보였다. "이준서." 이름을 불렸다는 사실에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반년 넘게 같은 반이었는데도 그녀가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는 걸 들은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네." "아까 그 메시지, 누구한테도 말 안 할 거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너무 세게 흔들어서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당연하죠. 저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해요. 저 원래 존재감도 없어서 애들이 제 말도 잘 안 믿어요." 말하고 나니까 스스로 좀 처량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3년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내 이름을 제대로 아는 애들이 반도 안 됐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조용히 살면 조용히 넘어갔으니까.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훨씬 편안하고 큰 웃음이었다. 입을 가리지도 않고, 눈을 찡그리지도 않고, 그냥 통쾌하게 터지는 웃음. "너 웃기다." "칭찬인가요." "몰라." 그녀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교복 치마가 바람에 살짝 들썩였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 위에 손을 얹어 눌렀다. 그리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초코바였다. 정확히는, 내가 먹으려던 그 딸기맛 초코바와 같은 브랜드, 같은 맛. "너도 이거 좋아해?" "저, 그게 제 목요일 루틴이에요." "헐, 나도. 매점 아줌마가 나 온다고 하면 미리 빼놓는다니까." 순간 뭔가 이상한 동질감이 생겼다. 학년 최고의 미소녀와 학년 최고의 무존재감 남학생이 같은 초코바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세상의 균형이 살짝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정확히는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다. 콘크리트 바닥이 차가웠다. 초코바 껍질을 벗기는 손이 미묘하게 어색했다. 이런 상황, 살면서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근데 아까 그 메시지는 뭐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주 앞에서 착한 척이라니."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바람이 한 번 훅 불었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걸 봤다. 아까까지의 편안한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뭔가 무거운 게 그 자리를 채웠다. "그거..." 그녀가 초코바 껍질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으로 은박지 모서리를 몇 번이나 눌렀다가 폈다가 했다. "학교에서 나 이미지가 좀 있잖아. 밝고, 착하고, 누구랑도 잘 지내고. 근데 그게 진짜 나는 아니야." "그럼 진짜는요?" "그냥, 존나 피곤해." 그녀가 픽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매일 웃는 거, 매일 다 받아주는 거. 사실 집에 가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눕고 싶어." 나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학년 최고의 인싸도 나름의 무게가 있다는 게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늘 그녀 같은 애들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인기 있고, 친구 많고, 선생님들한테도 예쁨받고.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어깨가 살짝 처진 걸 보니까 그게 얼마나 단순한 착각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매점 아줌마 앞에서는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어색하게 말을 던졌다. "여기서도, 안 그래도 되고요."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잠깐 눈이 마주쳤고, 나는 괜히 시선을 돌려 초코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딸기맛이 입안에 퍼지는데도 이상하게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너, 생각보다 괜찮은 애네." "저요? 저 진짜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 애가 이런 데를 찾아내겠어?" 그녀가 옥상 전체를 손으로 휘저었다. "여기 좋다. 진짜." "그래서."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다. "너, 나랑 비밀 하나 지켜줄 수 있어?" "어떤 비밀이요." "이거 봤다는 거.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나누는 얘기 전부."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장난기가 빠진, 진짜로 다짐받으려는 어조였다. "네, 지킬게요." "진짜지?" 그녀가 손가락을 세워 내 눈앞에 흔들었다. "나 배신당하면 되게 무서운 사람이야." "안 배신해요. 저 그런 거 잘해요, 비밀 지키는 거. 원래 말할 사람도 없거든요." 또 그 말이 튀어나왔다. 스스로도 좀 슬프게 들렸는데, 그녀는 그걸 듣고 다시 웃었다. 이번엔 좀 더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녀가 손가락을 세웠다. "매주 목요일, 나 여기 올 거야." "네?" "여기 좋잖아. 조용하고. 너도 있고." 너도 있고, 라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다. 마치 내가 이 옥상의 부속품처럼, 여기 있어야만 하는 존재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하나의 조건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나는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이 안 움직였다. 목요일의 초코바 시간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바람이 다시 세게 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고, 그녀는 손으로 대충 넘기며 나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얼른 하늘을 봤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근데 너 이름이 이준서라고 했지." 그녀가 확인하듯 물었다. "네." "기억할게. 이제 존재감 없는 애 아니야, 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3년 동안 아무도 신경 안 쓰던 내 이름을, 학년에서 제일 유명한 애가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엔 착각인가 싶어서 숨을 죽였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더 명확해졌다. 규칙적이고, 확실하게 가까워지는 발소리. 계단을 하나씩 밟는 소리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울렸다. "어떡해." 나윤이 낮게 속삭였다. "누구야?" 나는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이 시간에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없어야 했다. 관리 아저씨도 이 시간엔 절대 안 온다는 걸 몇 달 동안 확인했었다. 그런데 지금, 확실히 누군가 오고 있었다. 만약 담임이거나, 하필이면 다른 반 애들이면 우리 둘이 여기 있는 걸 들키는 거였다. 학년 최고 인싸와 무존재감 조연이 옥상에서 단둘이. 이런 조합을 목격하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퍼질 게 분명했다. 나윤의 얼굴에서도 아까의 여유가 사라졌다. 그녀도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만큼 잘 알고 있었다. "숨어야 해." 나윤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는 순간, 서늘한 손끝의 감각이 그대로 전해졌다. 다급함이 그 손아귀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계단 끝에서 문이 열리려는 듯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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