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년 반 만의 미소

5화

그 떨림을 보는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보다 손발이 빨랐다.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면서 무릎이 침대 다리에 부딪혔는데, 그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도망쳐야 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중에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유를 찾을 겨를도 없었다. 그냥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명령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뛰쳐나왔다. 복도로 나서자마자 등 뒤에서 뭔가 스르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그러나 그보다 훨씬 낮고 무거운 소리였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 같았다. 지지직— 방문이 열린 틈으로 검은 것이 스며 나오는 게 얼핏 보였다. '저게 뭐야.' '저게, 대체.' 생각은 완성되지 못하고 부서졌다. 발이 먼저 결정을 내렸으니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복도의 카펫이 발밑에서 미끄러졌고, 벽에 걸린 초상화들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숨을 쉬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른 채, 그저 앞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했다. 복도 끝에서 한지훈과 부딪히듯 마주쳤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 손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한지훈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의 눈이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으려 애쓰고 있었다. "쇠사슬…… 쇠사슬이 나왔어요!" 숨이 차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 담담하던 눈빛이 얼음처럼 굳어지는 걸, 나는 똑똑히 봤다. 그는 나를 지나쳐 별채 쪽으로 뛰어갔다. 발소리가 복도를 요란하게 울렸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다리가 아직 후들거렸지만 멈춰 설 수는 없었다.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 광경을 보았다. 예린의 손끝에서 검은 쇠사슬이 스르르 풀려나오고 있었다. 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허공에서 천천히 꿈틀거렸다. 그 움직임은 느렸지만 어딘가 의지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더 소름 끼쳤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빛에 닿을 때마다 사슬 표면이 기름처럼 검게 번들거렸다. 그르륵, 그르륵. 사슬 마디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예린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흐렸다. 하지만 그 눈꼬리가, 처음으로 아주 살짝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였어. 방금.' '저게, 반응이라는 거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그녀가 반응한 순간이었다. 한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그는 사슬을 향해 반쯤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너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목소리에 원망도, 놀라움도, 두려움도 뒤섞여 있었다. "귀신잡기 하자고…… 저를 잡아보라고 했어요."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그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이런 걸 불러냈다는 게. 한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방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사슬과 예린의 얼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곧 저택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하녀들이 뛰어오는 발소리, 문이 벌컥벌컥 열리는 소리, 누군가 낮게 지르는 비명 같은 것들이 연달아 들려왔다. 근위 기사들이 검을 채 뽑지도 못한 채 복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공작이 뛰어오는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 울렸다. 그 발소리는 다른 누구의 것보다 급했다. 선우태경 공작은 방 안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그 얼굴에는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스쳤다. 표정이 그렇게 짧은 순간에 두 가지로 갈라지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예린아……." 낮게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온 무언가가 그 두 음절 안에서 한꺼번에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검은 쇠사슬은 잠시 더 허공에서 흔들리다가, 서서히 예린의 손끝으로 다시 스며들어갔다. 지지직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고, 마지막 사슬 마디가 사라지는 순간엔 아무 소리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조용해졌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침묵이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공작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저울 위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방금 무슨 짓을 한 건가."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입술을 몇 번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한지훈이 대신 나섰다. "공작님, 이건……." 공작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 손짓 하나에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는 다시 예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오가는 동안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벽시계 초침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죽은 듯 잠들어 있던 마법 천재가 처음으로 힘을 썼다. 그 사실은 기쁨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포였다. 만약 그 힘이 다시—예전처럼 폭주한다면, 그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이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공작의 다음 말이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네는 내일부터 매일 이 시간에 이곳으로 오게." 그 말이 명령인지, 벌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운 침묵이 마치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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