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발소리가 멈췄다.
정자 안의 공기가 단숨에 굳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재혁은 붕대가 감긴 팔을 가슴 쪽으로 붙인 채 숨을 죽였고, 박준서는 임시로 고정한 발목을 움직이지 않으려 몸을 낮췄다. 여성 탐험가는 정자 기둥에 손을 짚은 채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숲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발소리는 느리고 불규칙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간격이 달랐다. 다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뒤를 따라오던 소리는 달랐다.
축축한 무언가가 땅바닥을 긁는 소리.
낙엽과 흙을 한꺼번에 밀어내는 마찰음.
나는 정자 기둥 사이로 숲을 바라봤다.
안개 때문에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나무줄기 몇 개가 희미한 그림자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멧돼지형 몬스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놈은 휴식지의 경계를 넘지 못했고, 정자 주변을 맴돌다가 숲속으로 돌아갔다. 적어도 같은 놈이 다시 접근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덩치에 비해 발소리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멧돼지는 무언가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
오전 11시 43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발소리가 사라진 뒤 삼 분이 지났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소리가 멈췄다는 사실만으로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가 우리를 발견하고 움직임을 멈춘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정자 입구에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휴식지의 정확한 범위는 알 수 없었다.
스킬창에는 여전히 단순한 문구만 떠 있었다.
[몬스터 진입 차단]
범위도 없었다.
차단 대상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무엇을 몬스터로 판정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멧돼지형 몬스터가 들어오지 못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지금 숲에 있는 것이 다른 몬스터라면 같은 효과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사람이거나, 몬스터로 분류되지 않는 무언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까 그놈인가요?"
김재혁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닐 겁니다."
"어떻게 알아요?"
"발소리가 다릅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김재혁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붕대가 감긴 팔을 내려다봤다. 붕대 표면에는 옅은 핏자국이 번져 있었지만, 상처가 다시 터진 정도는 아니었다.
박준서는 이를 악문 채 상체를 일으켰다.
"위치가 어디쯤입니까?"
나는 숲의 왼쪽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저쪽이었습니다."
손가락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옮겼다.
"마지막 소리는 조금 더 북쪽에서 들렸고요."
"우리를 향해 곧장 온 건 아니군요."
"아직은요."
박준서의 표정이 굳었다.
'아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는 정자를 향해 일직선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숲 바깥을 크게 돌며 움직이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를 찾고 있는 것인지, 다른 무언가를 쫓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여성 탐험가가 허리춤의 단검을 꺼냈다.
날이 짧았다.
저 정도 무기로 던전의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맨손보다는 나았다.
"진입 차단이 다른 몬스터한테도 통하겠죠?"
그녀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할 거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었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말하면 세 사람의 불안만 키울 뿐이었다.
"경계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대신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정자 안에 있으십시오."
여성 탐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이 정자 바닥으로 내려갔다.
평범한 나무 바닥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던전에서 잘라온 목재를 다듬어 직접 깔았다. 기둥도, 지붕도, 난간도 모두 내가 만든 것이었다.
특별한 재료는 없었다.
마법진도 없었다.
보호 결계가 새겨진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몬스터는 들어오지 못했다.
여성 탐험가는 바닥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텅.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거 정말 던전 시설입니까?"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다.
나는 숲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등록된 휴식 구역이면 표식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녀가 기둥과 지붕을 번갈아 살폈다.
"관리국 마크도 없고, 던전 안내도에도 이런 장소는 없었어요. 그런데 몬스터는 못 들어오고."
김재혁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결계 장비 아닙니까?"
"결계 장비가 이렇게 생겼다고?"
"외장을 씌운 걸 수도 있지."
"그런 장비를 청계던전에 설치할 이유가 없잖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낮게 오갔다.
박준서는 말없이 정자 안을 살폈다.
출입구.
기둥.
천장.
바닥.
그리고 나.
마지막으로 향한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물렀다.
"시설이 아니라면."
그가 말했다.
"각성 스킬일 수도 있겠군요."
정자 안이 조용해졌다.
김재혁이 눈을 크게 떴다.
여성 탐험가는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도 있었다.
그냥 우연히 발견한 장소라고 말하면 됐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고 잡아떼도 됐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미 멧돼지형 몬스터가 경계 앞에서 멈추는 모습을 직접 봤다.
거기에 휴식지 이용자 수도 바뀌어 있었다.
[현재 이용자: 3명]
나까지 포함하면 네 명이어야 했다.
하지만 스킬은 나를 이용자로 계산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구조도, 기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거짓말로 덮으면 오히려 의심만 커진다.
"중요한 건 지금 그게 아닙니다."
나는 숲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밖에 있는 게 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박준서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더 캐묻지 않았다.
납득해서가 아니었다.
우선순위를 바꾼 것뿐이었다.
스르륵.
숲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
김재혁의 어깨가 움찔했다.
여성 탐험가는 단검을 양손으로 고쳐 잡았다.
박준서는 다친 발목을 바닥에 대지 않은 채 정자 기둥에 등을 붙였다.
나는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왼쪽이었다.
그다음은 북쪽.
지금은 오른쪽에 가까웠다.
정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이동하고 있었다.
우연일 가능성은 낮았다.
무언가가 이곳 주변을 돌고 있었다.
멧돼지형 몬스터가 침입할 틈을 찾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움직임이 훨씬 느렸다.
한 번 소리가 난 뒤 다음 소리가 들리기까지 십 초가 넘게 걸렸다.
질질 끄는 소리도 일정하지 않았다.
길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겼다.
다시 시작할 때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들렸다.
"하나가 아닌 것 아닙니까?"
박준서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었다.
발소리를 내는 것과 바닥을 끄는 것이 서로 다른 개체일 수도 있었다.
하나는 걷고.
다른 하나는 끌려오고.
나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김재혁의 안색이 이미 충분히 나빴다.
"불을 피우면 어떨까요?"
여성 탐험가가 물었다.
"연기를 보고 구조대가 올 수도 있고."
"저쪽에서도 우리 위치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정자 안에서 피우는 불이 휴식지의 효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스킬은 설명이 부족했고, 나는 아직 이곳에서 시험해본 것이 거의 없었다.
21일.
혼자 정자를 지키며 보낸 시간이었다.
그동안 휴식지는 조용했다.
사람도 오지 않았다.
몬스터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스킬의 효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할 기회조차 없었다.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나타났다.
몬스터가 나타났다.
휴식지의 차단 효과가 드러났다.
그리고 지금은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정자 주변을 돌고 있었다.
느껴야 할 감정이 너무 많았다.
두려워해야 했다.
당황해야 했다.
각성 스킬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났다는 사실에 초조해해야 했다.
하지만 감정은 희미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소리의 간격과 방향뿐이었다.
오전 11시 51분.
마지막 소리로부터 사십이 초.
나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뭇조각을 주웠다.
정자 밖으로 던졌다.
나뭇조각은 경계를 넘어 세 걸음쯤 떨어진 흙바닥에 떨어졌다.
툭.
소리가 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숲에서도 반응이 없었다.
김재혁이 나를 바라봤다.
"뭐 하신 겁니까?"
"소리에 반응하는지 보려고요."
"반응하면요?"
"그때 생각해야죠."
김재혁의 입술이 굳었다.
좋은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답은 없었다.
나는 정자 옆에 세워둔 삽을 집어 들었다.
날이 무뎌진 작업용 삽이었다.
무기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거리 조절에는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몬스터 진입 차단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버텨야 했다.
여성 탐험가가 내 손에 들린 삽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각성자 아니세요?"
"그게 왜 궁금하죠?"
"스킬로 만든 공간이라면 본인도 각성자일 거 아니에요."
나는 삽자루를 고쳐 잡았다.
"각성자는 전부 싸움을 잘합니까?"
그녀가 대답하지 못했다.
전투계 각성자가 아니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세 사람도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내게 공격 수단이 있었다면 멧돼지형 몬스터가 물러날 때까지 정자 안에서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휴식 공간을 만드는 스킬."
박준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몬스터 진입을 막고, 이용자를 구분한다."
그가 정자 입구와 바닥을 다시 살폈다.
"이런 스킬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각성자와 스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인터넷에 공개된 스킬 중에 이런 종류는 없었다.
방어 결계를 펼치는 스킬은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보호막을 만드는 스킬도 있었다.
하지만 건축물을 휴식지로 지정하고, 그 안으로 몬스터가 들어오는 것을 상시 차단하는 스킬은 본 적이 없었다.
지속 시간조차 표시되지 않았다.
해제 조건도 몰랐다.
내가 정자를 떠나면 사라지는지.
정자가 부서지면 효과도 끝나는지.
이용자에게 별도의 회복 효과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편안한 휴식]
스킬창에 적힌 또 하나의 문구가 떠올랐다.
이것 역시 정확한 효과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은 아직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피로가 줄어들고 있는지.
상처 회복이 빨라졌는지.
아니면 단순히 심리적인 안정만 주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통신은 여전히 안 됩니까?"
내가 물었다.
김재혁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안 됩니다."
여성 탐험가도 단말기를 꺼냈다.
화면을 두드리고 방향을 바꿔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신호가 아예 없어요."
"비상 발신기는요?"
박준서가 허리춤에 달린 장치를 들어 보였다.
붉은 표시등이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작동은 하는데 전송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청계던전의 통신 음영 구역은 드물지 않았다.
특히 호숫가 주변은 안개와 마력 간섭이 심해 위치 신호가 자주 끊겼다.
구조 요청이 정상적으로 전달됐다고 해도 구조대가 이곳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전까지는 휴식지 안에서 버텨야 했다.
스르륵.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정면이었다.
안개 너머의 나무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인 것 같았다.
검은 그림자가 낮게 흔들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형태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사람처럼 서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부러진 나무가 흔들린 것 같기도 했다.
다음 순간 그림자는 사라졌다.
"보셨어요?"
여성 탐험가가 물었다.
"예."
"뭐였죠?"
"모릅니다."
짧은 대답이 정자 안에 떨어졌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김재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박준서는 정자 바닥에 놓여 있던 자신의 장비 가방을 끌어당겼다.
지퍼를 열자 손전등과 로프, 신호탄이 보였다.
"신호탄을 쏘는 건 마지막까지 미루죠."
그가 말했다.
"여기까지 몰려온 몬스터가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준서는 가방에서 작은 손전등 하나를 꺼내 여성 탐험가에게 건넸다.
나머지 하나는 김재혁 앞에 내려놓았다.
"저쪽과 뒤쪽을 맡아."
"형은요?"
"나는 이쪽을 본다."
세 사람의 움직임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불안에 떨고만 있던 처음과는 달랐다.
박준서가 지시하고, 김재혁과 여성이 각자의 방향을 맡았다.
정자 안에서 사방을 살피는 형태였다.
나 역시 삽을 든 채 정면을 지켰다.
누구도 경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휴식지의 힘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58분.
발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한 걸음.
긴 정적.
또 한 걸음.
처음보다 규칙적이었다.
대신 무언가를 끄는 소리는 더 무거워졌다.
질척한 마찰음 사이로 단단한 것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섞였다.
딱.
스르륵.
딱.
김재혁이 손전등을 든 손에 힘을 줬다.
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가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더 이상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가 들릴 거리까지 접근하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발소리는 계속 정자 주변을 돌았다.
왼쪽에서 시작해 뒤쪽으로.
뒤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경계를 확인하는 것처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처럼.
나는 정자 입구 앞의 흙바닥을 바라봤다.
멧돼지형 몬스터가 남긴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그보다 바깥쪽.
안개가 짙게 깔린 곳에서 낙엽이 천천히 밀려났다.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 방향은 보였다.
정면에서 오른쪽.
그리고 다시 숲 안쪽.
정자와 거리를 벌리는 것 같았다.
여성 탐험가가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멀어지는 것 같은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리는 실제로 작아지고 있었다.
한 걸음.
무언가 끌리는 소리.
다시 한 걸음.
그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숲 저편에서 방향을 바꾼 소리가 안개를 타고 희미하게 이어졌다.
우리를 지나쳐 가는 것인지.
다시 돌아오기 위해 거리를 벌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삽을 내려놓지 않았다.
세 탐험가도 각자 맡은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스르륵.
무언가가 끌렸다.
한동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먼 곳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느리고 불규칙한 발소리가 숲 저편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