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점심시간, 급식실로 가는 길이었다.
복도에 밥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었다.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야, 강도윤."
현우가 내 등을 툭 쳤다.
"뭐."
"서은이 표정 봤어? 완전 살벌하던데."
"봤어."
"쟤 원래 저래?"
"몰라, 나도 처음 봐."
대답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머릿속에 아까 서은의 표정이 계속 맴돌았다.
평소랑 다른 얼굴이었다.
웃지 않는 서은은 낯설었다.
"혹시 로라 때문이야?"
현우가 슬쩍 물었다.
"몰라."
"딱 봐도 그런데."
현우가 눈치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됐고, 밥이나 먹자."
말을 끝내고 걸음을 서둘렀다.
급식실 앞에 도착했는데 서은이 보이지 않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뒤를 돌아봤다.
결국 오지 않았다.
밥을 먹는 내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숟가락을 든 손이 자꾸 멈췄다.
교실로 돌아가 보니 서은이 창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책상에 손을 얹고 손끝을 꾹 누르고 있었다.
그 손끝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밥 안 먹었어?"
"입맛 없어서."
서은이 나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햇빛이 얼굴에 닿았는데도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다.
"아까 일 때문이야?"
"뭐가."
"로라 정."
서은이 그제야 나를 쳐다봤다.
눈이 촉촉해 보였다.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너는 몰라도 돼."
"몰라도 되는 게 어딨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냥, 나 좀 두고 가."
서은이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답답했다.
뭐가 이렇게 갑자기 예민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로라랑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그것도 학교 안내 때문에 잠깐 얘기한 것뿐인데.
이게 그렇게까지 예민할 일인가.
아니, 서은이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 "난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예전에 서은이 울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서은이 내 우산 밑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때는 그 말이 사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결국 자리를 떠났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서은이 계속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방과 후, 로라를 데리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여기가 도서관이에요."
"오, 크네요."
로라가 눈을 크게 떴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표정이 신나 보였다.
"미국 학교는 이런 거 없어요?"
"있긴 한데, 분위기가 달라요."
로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밝고 시원시원했다.
말투에 거침이 없었다.
걸음걸이도 당당했다.
"한국 학교는 좀 조용한 느낌이에요. 다들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고."
로라가 복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가요."
"네, 특히 아까 그 여자애도 좀 그런 느낌이었어요."
로라가 슬쩍 웃었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애, 여자친구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조금 놀랐다.
발걸음이 멈칫했다.
"네. 서은이라고, 소꿉친구예요."
"질투가 많은 편인가 봐요."
로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대답하면서 웃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로라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 태도가 오히려 신경 쓰였다.
서은이 왜 저렇게 예민했는지, 로라를 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안내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현우가 전화를 받고 있는 게 보였다.
등을 돌리고 목소리를 낮춘 채였다.
"응, 알았어. 걔한테는 말 안 할게."
현우가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발걸음을 늦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현우가 놀란 듯 전화를 급히 끊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급하게 쑤셔 넣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누구랑 통화했어?"
"그냥, 학원 쪽 애."
현우가 시선을 피했다.
너도.
너도 학원 쪽 애 얘기를 하는구나.
서은도 학원 쪽이라고 했었다.
똑같은 단어가 겹치는 게 이상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뭔가 걸렸다.
"뭘 말 안 한다는 거야?"
"별거 아니라니까."
현우가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 웃음이 평소보다 어색했다.
"그보다 우리 이번 주말에 봄빛브루 갈래? 새 메뉴 나왔대."
화제가 급하게 바뀌었다.
나는 더 캐묻지 못했다.
현우 등을 보며 걷는 내내 방금 그 전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말 안 할게, 라는 말이 유난히 걸렸다.
***
주말, 봄빛브루로 향했다.
작은 골목 안에 있는 카페였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곳이었다.
문을 열면 늘 고소한 원두 냄새가 먼저 맞아줬다.
"어서 와, 도윤아."
이아영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줬다.
앞치마에 원두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혼자야? 서은이는?"
"바쁘다고 해서요."
사장님이 잠깐 시선을 내렸다.
손으로 원두를 정리하다가 멈췄다.
"그래? 저번에 여기 왔을 때 좀 이상해 보이더라."
"이상해요?"
심장이 살짝 빨라졌다.
"밖에서 누구랑 통화하던데, 표정이 안 좋더라고."
사장님이 커피를 내려주며 말했다.
원두 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드르륵, 드르륵.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언제였어요?"
"음, 지지난 주쯤?"
사장님이 무심히 대답하며 다른 손님을 향해 웃었다.
"저기,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사장님이 다른 테이블로 잔을 옮겼다.
그 사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커피잔을 든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은이 여기서 통화를 했다고.
나한테 말 안 한 통화를.
그 지지난 주라면, 딱 요즘 서은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우연일까.
아니, 우연이 아니야.
손끝이 차가워졌다.
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창밖으로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예쁘다는 생각보다 먼저, 불안이 스쳤다.
잔 속 커피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