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너무 다정한 사육사

2화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아궁이 앞에서 콧노래라도 흥얼거렸을 텐데, 그날은 조용히 불씨만 뒤적였다. 식사를 준비하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된장국을 뜨는 국자가 자꾸 그릇 언저리에서 멈췄다. 창밖을 힐끔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오늘도 산에 가?" 어머니는 바구니를 챙기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끝이 바구니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밥은 챙겨 먹고, 문은 꼭 잠가." 그 말투가 평소와 달랐다. 조금 더 단호했고, 조금 더 급했다. 평소의 어머니는 산에 갈 때마다 나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뱀 조심해라, 개울 건널 때 미끄러지지 마라, 해 지기 전에 저녁 먹어라. 그런데 오늘은 딱 한 마디, 문을 잠그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엄마, 뭔가 있는 거지.) 하지만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걸었다. 치마 끝이 문지방을 스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탁. 문이 닫혔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그날 하루는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해가 중천에 뜨고, 다시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텃밭 일을 마치고 개울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호미로 잡초를 뽑는 손이 자꾸 멈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산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늘 듣던 소리들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크게 들렸다. 마치 그 소리들 사이로 무언가가 숨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개울물에 손을 담갔다. 차가운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 서늘함이 마음속 불안을 씻어내지는 못했다. 나는 물속에 비친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표정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저녁이 되어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나는 문 앞에 앉아 숲길 쪽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하늘이 붉게 물들다가 이내 검붉은 색으로 저물었다. 노을이 오두막 지붕 위로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그 그림자가 마치 산길을 따라 뻗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늦는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바구니를 하나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끝으로 테를 매만졌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 촉감이 익숙해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그 위로가 점점 옅어졌다. 어둠이 산길을 완전히 지워버렸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길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홀로 오두막 문을 걸어 잠그고 밤을 보냈다. 빗장을 걸 때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철컹, 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램프 심지를 낮추고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귀가 자꾸 바깥 소리에 반응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멀리서 우는 부엉이 소리. 평범한 밤의 소리들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신경이 곤두섰다. 한 번은 무언가 오두막 벽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 나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였다.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오두막 안을 몇 번이고 서성이다가, 결국 마음을 굳혔다. 오두막 밖으로 나가 산길을 살펴보기로 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발을 내밀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낯선 발자국이었다. 오두막 뒤편 진흙 바닥에, 어머니의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발자국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발자국의 폭이 내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넓었다. 깊이도 상당했다. 진흙이 눌린 자국을 보면 꽤 무거운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이었다. (사람 발자국… 근데 이렇게 깊게 찍힌 건 처음 봐.) 손끝이 떨렸다. 이 산에는 어머니와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온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랬다. 지난 몇 년간 이 오두막 근처에서 다른 사람의 흔적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진흙 바닥 위에 선명하게 찍힌 이 발자국들. 나는 손끝으로 발자국의 테두리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진흙이었다. 그리 오래된 흔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발자국은 오두막을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숲속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흔적을 따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나뭇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평소라면 그저 자연의 소리였을 텐데, 그날은 그 바스락거림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발자국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오두막 주변을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살피듯 걸어 다닌 흔적이었다. 나는 그 걸음의 폭을 눈으로 재보았다. 성인 남자의 것보다도 컸다. (대체 뭐가 지나간 거야.) 숲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나무 사이로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림자였다. 키가 크고, 검은 옷을 걸친 사람의 형체가 나무 그늘 사이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들이 흔들렸지만, 그 형체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뿌리를 박은 것처럼. 그 형체는 움직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야? 아니면…) 나는 숨을 죽이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딱. 작은 소리였지만 그 정적 속에서는 유독 크게 울렸다. 그 순간, 그림자가 스윽 움직였다. 방향을 틀어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움직임이 사람 같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하고, 너무나 빨랐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겨우 몸을 돌려 오두막으로 뛰어 돌아왔다. 숲길을 달리는 동안 발밑의 나뭇잎과 잔가지들이 어지럽게 부서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문을 걸어 잠그고 등을 문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여전히 세차게 뛰고 있었다. (저건 뭐였을까. 엄마는 저런 걸 본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급하게 나갔는지, 왜 그렇게 문을 잠그라고 당부했는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해는 오히려 두려움을 더 키웠다. 그날 밤에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오두막의 식량은 하루하루 줄어갔다. 쌀독을 열어볼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드러났다. 나는 더 이상 산속에서 어머니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밤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에 잠을 설쳤고, 매일 아침 발자국이 남아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행히 그 이후로 발자국은 더 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마치 무언가 나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로 내려가야 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어머니가 늘 위험하다고 말했던 그 바깥세상. 어머니는 종종 마을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를 낮추곤 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위험하다고, 낯선 이는 함부로 믿지 말라고. 그 말들이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작은 보따리에 남은 식량을 챙기고, 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보따리를 매는 손이 떨렸다. 몇 번이나 매듭을 다시 묶었다. 숲의 끝에서 마을로 향하는 길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그 길 앞에 서서 잠시 멈춰 섰다. 발끝이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자꾸 머뭇거렸다. 뒤를 돌아보자 오두막이 저 멀리 작게 보였다. 오랫동안 나의 세계였던 곳이었다. 저 작은 지붕 아래에서 태어나 자라며,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곳. 그 안에는 어머니의 목소리, 어머니의 냄새, 어머니가 만들어준 모든 것들이 남아 있었다. (엄마, 어디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물으며 마을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숲의 그림자가 등 뒤로 점점 멀어지고, 낯선 길의 흙이 발밑에서 서걱거렸다. 그 서걱거림이 마치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예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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