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공기는 늘 그렇듯 차갑고 맑았다.
나는 이불 밖으로 손끝만 내밀어 온도를 가늠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마룻바닥에 가늘게 줄무늬를 그렸다.
귀 끝이 먼저 그 빛을 느꼈다.
쫑긋, 소리 없이 움직이는 감각이 아침을 알렸다.
오두막 안은 조용했다.
어머니는 벌써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냄비 소리와 장작 타는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발끝으로 마룻바닥을 짚었다.
찬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꼬리를 흔들며 문턱을 넘어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 오늘도 약초 캐러 가?"
어머니, 채린은 등을 돌린 채로 짧게 답했다.
"그래. 넌 집 안에 있어."
늘 듣던 말이었다.
나는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식탁 앞에 앉았다.
나무 그릇에 담긴 죽에서 김이 올라왔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나는 어머니의 등을 잠깐 바라봤다.
좁은 어깨가 냄비 위로 구부러져 있었다.
그 모습이 오늘은 조금 더 작아 보였다.
그저 그런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죽을 떠먹었다.
이 산골 오두막에서 태어난 이후로 나는 이 울타리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바깥은 위험해"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숲과 개울, 텃밭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 안에서 나는 충분히 자유로웠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떠나기 전, 어머니는 항상 문 앞에서 한 번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문 잘 잠그고 있어."
그 말도 매일 듣던 말 중 하나였다.
나는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나는 텃밭에서 상추를 뽑거나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흙을 만지는 손끝의 감촉, 물살에 옷감이 쓸리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 울음.
평화로운 소리들이 귓속을 가득 채웠다.
빨래를 짜서 널 때면 물방울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 차가움마저 익숙했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정오쯤, 나는 텃밭 옆 그늘에 앉아 잠깐 눈을 감았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려와 눈꺼풀 위에서 어른거렸다.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없었다.
이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저녁, 뭔가가 조금 달랐다.
어머니가 산에서 돌아온 시간이 평소보다 한 시간 넘게 늦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몇 번이나 숲길 쪽을 내다봤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속도가 그날은 유난히 빠르게 느껴졌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반갑게 뛰어나갔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이 거칠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바구니 안의 약초는 반쯤이나 흐트러져 있었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걸어 잠갔다.
"엄마?"
내가 부르자 어머니는 흠칫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확인하는 거야."
말투가 평소보다 낮고 빨랐다.
손끝이 문고리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지만,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창밖을 자꾸 힐끔거렸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램프 심지를 낮추고 일찍 잠자리에 들자고 했다.
평소라면 화롯가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시간인데, 그날은 그마저 없었다.
화롯불의 잔불이 붉게 일렁이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정적이 흘렀다.
오두막 안의 침묵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문득 바깥에서 낯선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스윽.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발걸음 같기도 한 소리였다.
귀가 절로 그 방향으로 곤두섰다.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린 채 숨을 죽였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그 소리의 잔상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나를 깨웠다.
밤사이의 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평소와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어젯밤의 일이 정말 꿈이었나 싶었다.
나는 다시 텃밭으로 나가 일을 했고, 어머니는 다시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일상은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마다 어머니는 여전히 문을 두 번씩 확인했다.
그 작은 습관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문고리를 당기고, 다시 밀어보고, 그리고 한 번 더 당겨보는 순서까지 똑같았다.
"엄마, 요즘 왜 그렇게 문을 자꾸 확인해?"
어느 저녁,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심하는 거야."
대답은 짧았고, 더는 묻지 못하게 하는 무게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다시 화롯불 쪽으로 돌렸다.
나는 그 옆얼굴에서 뭔가를 더 읽어내려 했지만,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상추를 씹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익숙한 숲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벌레 소리가 낮게 깔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익숙함 속에서, 무언가 삐걱거리는 듯한 낯선 파문이 느껴졌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 파문의 정체를 짐작해보려 했다.
어머니가 가져오는 약초의 종류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도 그때 알아차렸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짙은 자줏빛 잎사귀들이 바구니 한 켠에 늘 쌓여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유난히 조심스럽게 다뤘다.
나는 궁금했지만, 묻는 순간 저번처럼 눈빛이 흔들릴 것을 알았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그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훨씬 가까웠다.
탁.
나무 문 바로 바깥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숨을 멈추고 이불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이불깃을 파고들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의 방에서도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무 바닥이 눌리는 소리,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옷깃 스치는 소리.
촛불이 흔들리는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다.
그 그림자는 마치 누군가의 형체처럼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그 밤 내내 눈을 감지 못했다.
천장의 나뭇결을 눈으로 몇 번이나 따라 그렸는지 모른다.
(엄마는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답은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귀만 계속 그 소리의 방향을 향해 곤두서 있었다.
멀리서 부엉이 울음이 한 번 들렸다가 끊겼다.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귓속을 눌러왔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어머니의 방문 틈으로 희미한 촛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은 꺼지지 않고 밤새 그 자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잠들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어머니를 그렇게 밤새도록 깨어있게 만드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알 수 없음이, 처음으로 이 오두막의 평화를 낯설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