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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재가 다 날린 자리에 강윤은 한참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재는 조금씩 더 흩어졌다. 검은 가루가 발밑에서 소용돌이치다가 사라졌다. 죽은 사내의 흔적은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강윤은 손을 들어 코끝을 눌렀다. 아직도 탄 종이 냄새가 남아 있었다. 부적이 타는 냄새는 향냄새와는 달랐다. 매캐하고, 어딘가 쇠 냄새가 섞인 냄새였다. 산 아래쪽 기척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규칙적이지 않았다. 마치 여러 명이 흩어져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경고: 다수의 대상이 접근 중입니다.] 시스템이 붉은 글씨로 경고했다. 강윤은 눈을 감았다. 숲의 소리를 하나씩 걸러냈다. 새소리.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섞여 드는, 사람의 발소리. 멀었다. 하지만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윤은 죽은 사내의 곡도를 주워 등에 멨다. 무게가 낯설었다. 손에 익은 검과는 균형이 달랐다. 그래도 무기가 하나 더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오두막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곳은 이미 알려진 곳이었다. 죽은 사내가 부적을 태운 순간, 이 위치는 이미 노출되었다고 봐야 했다. 강윤은 능선을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소리를 죄었다. 발끝으로 딛고, 무릎을 낮췄다. 몸이 배운 적 없는데도 그런 걸음을 알고 있었다. 원래 이 몸의 기억이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몸이 스스로 균형을 찾았다. 체중을 앞발에 싣고, 뒷발은 가볍게 뗀다. 상체는 흔들리지 않게. 그런 감각이 손끝, 발끝에서부터 저절로 흘러나왔다. 강윤은 그것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이 몸의 주인이 살아온 세월이 몸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대상 5명 확인. 입령기 3~4단계.] [진형: 반원. 좁혀오는 중.] 다섯이었다. 죽은 사내를 포함해 여섯이 한 패였을 것이다. 강윤은 나무 뒤에 몸을 붙였다. 나무껍질이 등에 닿았다. 거칠고 축축했다.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숲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조 형님이 여기서 신호 보냈다는데." "흔적 있나." "피 냄새 나는데." 강윤은 숨을 죽였다. 숨을 내뱉는 소리조차 죄었다. 코로 얕게, 배로 천천히. 다섯 명의 발소리가 흩어졌다. 포위망을 좁히는 형태였다. 한 명은 왼쪽으로, 두 명은 정면으로, 나머지 둘은 오른쪽 사면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강윤은 그 움직임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발소리의 간격,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의 위치, 숨소리의 높낮이. 모든 것이 정보였다. 정면 대결은 무리였다.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지금 몸으로는 위험했다. 입령기 3~4단계라면, 강윤이 지금까지 겪어본 상대들 중에서도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강윤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하나씩 끌어내야 한다. [무상검법 - 파해(破解)] [스킬 습득 조건 충족. 새로운 초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뜻밖의 알림이었다. 강윤은 잠시 그 창을 들여다보다가 닫았다. 지금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살아남으면. 그때 확인해도 늦지 않았다. 그는 등에 멘 곡도를 뽑아 나무에 걸었다. 옷자락 한 조각을 찢어 그 위에 걸쳐 두었다. 미끼였다. 바람이 불면 옷자락이 흔들릴 것이다. 사람이 숨어 있는 것처럼. 강윤은 그 흔들림의 높이와 방향을 몇 번이나 눈으로 확인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잠깐의 시선만 끌면 됐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돌아 낮게 움직였다. "저기다!" 한 명이 옷자락을 발견했다. 나머지 넷이 그쪽으로 몰렸다. 급하게 방향을 트는 발소리들이 서로 부딪히듯 겹쳤다. 강윤은 그 틈을 타 뒤로 돌았다. 등을 낮추고, 소리 없이 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한 명이 대열에서 떨어져 옷자락 쪽으로 다가갔다. 나머지는 아직 반원의 형태를 유지한 채 조금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강윤은 그 사내의 등 뒤로 접근했다. 발끝으로 하나, 둘. 거리를 좁혔다. 숨소리. 젖은 흙냄새. 비린내 섞인 땀 냄새. 사내는 검을 반쯤 든 채 나무 쪽을 향해 있었다. 옷자락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목덜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강윤은 검을 뽑았다. 소리 없이, 단 한 번. 사내가 쓰러졌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강윤은 쓰러지는 몸을 손으로 받아 눕혔다. 검이 몸을 관통한 순간의 무게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손끝이 저렸다. 강윤은 시신을 덤불 속으로 끌어 숨겼다. 낙엽으로 대충 덮었다.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어이, 왜 대답이 없어." 다른 목소리가 불렀다. 강윤은 다시 몸을 낮췄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두 번째였다. 이 몸으로, 이 세계에서, 사람을 벤 것이. 죄책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아니, 느껴서도 안 됐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 건 강윤 쪽이었다. [대상 4명. 경계 강화됨.] 남은 넷은 이제 경계했다. 서로 등을 맞대며 진형을 좁혔다. 아까와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흩어지지 않고, 서로의 사각을 지켜주는 형태로. 강윤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며 거리를 벌렸다. 미끼 전략은 한 번으로 끝이었다. 두 번째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도 이제 눈치챘을 터였다. 동료 하나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는 잠시 자리를 잡고 숨을 골랐다. 등이 나무에 닿았다. 나무의 결이 옷 사이로 느껴졌다. 손끝의 냄새를 맡았다. 피 냄새. 흙냄새. 그리고 낯선 냄새. 향 냄새였다. 은은하지만 분명했다. 산적들에게서 날 냄새가 아니었다. 나무를 태운 냄새도 아니고, 죽은 사내가 남긴 부적의 매캐함도 아니었다. 맑고, 서늘한, 마치 이른 새벽 안개에 섞인 향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근처에 있었다. 강윤은 그 냄새의 방향을 가늠했다. 산등성이 저편이었다. 냄새는 옅었지만 일정한 방향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는 사람에게서 나는 것처럼. 지금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강윤은 그 생각을 밀어두고 다시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넷의 발소리가 재정비되고 있었다. 조금씩 넓게 퍼지며 숲을 훑는 형태였다. 강윤이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좁혀오는 움직임. 강윤은 자리를 옮기려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발밑에서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이 정적 속에서는 충분히 컸다. "저기 있다!" 순간 외침이 터졌다.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강윤 쪽으로 쏠렸다. 발각됐다. 강윤은 뛰었다. 산세는 가팔랐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었다. 뺨에 얇은 상처가 그어지는 느낌이 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넷의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거리는 좁혀지지도 벌어지지도 않았다. 정확히 일정한 간격으로 뒤를 밟았다. "이쪽이다, 몰아!" 포위망이 형태를 바꿨다. 강윤을 좁은 협곡 쪽으로 몰아넣으려는 움직임이었다. 넷의 발소리가 좌우로 갈라지며 강윤이 도망칠 수 있는 방향을 하나씩 지웠다. 강윤은 협곡 지형을 본능적으로 읽었다. 좁은 곳으로 몰리면 불리했다.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싸우는 것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미 발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 [경고: 포위망이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지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경고가 눈앞에서 붉게 깜빡였다. 강윤은 발을 멈췄다. 협곡 입구였다. 뒤로는 절벽. 좌우로는 두 명씩. 정면에서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위벽에 등이 닿았다. 차갑고 단단했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등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네 명 모두 강윤을 에워쌌다. 한 사내가 낮게 웃었다. "손이 매운 애송이. 조 형님을 벤 게 너냐." 강윤은 검을 고쳐 쥐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사내들의 시선이 강윤의 자세를 훑었다. 검을 쥔 손, 발의 각도, 시선의 방향. 서로를 재는 시간이었다. "입 다물어도 상관없다. 조각내서 확인하면 되니까." 네 명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쇠 부딪는 소리가 협곡 벽을 타고 울렸다. 그 울림이 좁은 골짜기 안에서 몇 번이나 반사되어 겹쳤다. 강윤은 등을 절벽에 붙였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뛰었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강윤은 넷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했다. 왼쪽 둘은 거리를 벌리며 측면을 노렸다. 오른쪽 둘도 마찬가지였다. 정면의 한 명이 먼저 검을 겨눴다. 넷이 동시에 움직이면 버틸 수 없었다. 순서를 만들어야 했다. 누가 먼저 움직일지, 어느 틈을 노려야 할지. 머릿속이 빠르게 돌았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넷 중 하나를 벨 틈을 만들어도, 나머지 셋이 동시에 달려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정면의 사내가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끝이 흔들림 없이 강윤의 목을 향했다. 그때였다. 협곡 입구, 산등성이 위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정갈한 걸음이었다. 산적들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게가 실리지 않은, 마치 걷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것 같은 소리.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넷의 검끝도 잠시 흔들렸다.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등에 검을 메고, 옷차림이 단정했다. 나이는 강윤과 비슷해 보였다. 흐트러짐 없는 옷매, 곧게 선 어깨. 그 낯선 향 냄새가 그 사람에게서 나고 있었다. 아까 산등성이 저편에서 느꼈던 그 서늘한 향이었다. 넷 중 하나가 낮게 욕설을 뱉었다. 다른 하나는 검을 고쳐 쥐며 자세를 바꿨다. 갑작스런 개입에 대한 경계였다. 그가 협곡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섯이 하나를 몰아넣는 건, 좀 부끄럽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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