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내내,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들이 물리적인 무게처럼 느껴졌다. 존경인지 의심인지 구분이 안 되는 눈빛들이 복도 양옆에서 쏟아졌는데, 나는 그 시선의 절반쯤은 '저놈이 진짜 S등급이라고?' 하는 의문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나조차도 실감이 안 났으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정 구슬에 손을 얹고 오라를 방출했을 뿐이었는데, 그 결과로 학원 개원 이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는 게, 솔직히 남 얘기처럼 들렸다.
[등급 판정 결과: S등급]
[청명학원 개원 이래 최초의 S등급 판정입니다.]
[해당 정보는 학원 본부 및 각성자 관리국에 자동 통보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그 몇 초 사이, 나는 '자동 통보'라는 문구를 곱씹었다. 자동으로 통보가 된다는 건, 결국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소식이 이미 어딘가로 퍼지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지금 이 복도의 시선들은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계산이 섰다. 별로 반갑지 않은 계산이었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조용히 돈 벌고 조용히 밥 먹고 조용히 자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꼭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만두지 않았다.
복도를 걷는 다른 수험생들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폈다. 어떤 애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어떤 애는 옆 사람과 귀에 대고 뭔가를 속닥거리다가 내가 고개를 돌리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중 몇몇의 표정에서는 순수한 동경도 읽혔지만, 다른 몇몇의 표정에서는 '쟤 뭔가 이상한데'라는 경계심이 더 짙게 묻어났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힘이 어디서 왔는지, 왜 나한테만 이런 식으로 발동하는지 스스로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강도현."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복도 끝 창가에 서은하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긴 파란 머리가 창밖의 역광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고, 검은 눈동자는 여느 때처럼 무표정했지만 그 안에 뭔가 계산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서은하는 이 학원 안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능이었고, 그녀가 나를 이렇게 대놓고 기다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평소라면 시험 끝나고 자기 반으로 곧장 돌아갔을 사람이, 지금은 창가에 기대서서 마치 내가 이 길로 지나갈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서 있었으니까.
"소식 빠르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학원 전체가 아는데 내가 모를 이유가 없지." 그녀는 짧게 대답하더니, 벽에서 등을 떼고 천천히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유난히 느렸는데, 그게 오히려 압박감을 더했다. "S등급. 그것도 최초."
"그렇게 됐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는데, 그 반응이 지나치게 태연했는지 그녀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놀랍지도 않아?" 서은하가 물었다. "보통은 이럴 때 얼떨떨해하거나, 아니면 대놓고 좋아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하는데."
"놀랍긴 한데," 나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덧붙였다. "그거보다 지금 저녁밥 걱정이 더 커서."
그 말에 서은하는 진짜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이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라 나도 조금 신선했다. 평소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얼굴이 살짝 무너지는 걸 보니, 이 여자도 사람이긴 하구나 싶었다.
"흑암숲에서 흑린곰 상대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서은하가 표정을 되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 검, 다시 물을게. 어디서 배운 거야."
같은 질문이었다. 흑린곰을 처치한 직후에도 그녀가 물었던 그 질문이, 형태를 바꾸지 않고 다시 돌아온 거였다.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는 척했는데, 사실 정말로 고를 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그 답을 모르니까. 각성 매개체가 활성화된 순간부터 몸이 저절로 검을 다루는 법을 아는 것처럼 움직였고, 그것에 대해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건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본능적으로 나온 거야." 나는 결국 그렇게 얼버무렸다. "각성하면서 같이 생긴 것 같은데, 정확히는 나도 몰라."
"본능이라니." 그녀는 그 말을 되뇌더니,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시선이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정밀 검사 같아서, 나는 괜히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마치 CT 촬영기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놈이네, 강도현."
"칭찬으로 들을게."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보통 각성자는," 서은하가 팔짱을 더 세게 끼며 말을 이었다. "각성 매개체가 활성화되면 자기 속성에 맞는 스킬 트리가 뜨고, 그걸 따라서 훈련을 받아. 검술이든 마법이든, 다 배우는 거야. 본능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 있다 해도 그건 극소수 상급 각성자들 얘기고."
"그럼 나는 그 극소수에 낀 거네." 나는 최대한 가볍게 받아쳤지만, 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적하는 부분이 정확히 내가 스스로도 의아해하던 지점이었으니까. 나는 스킬 트리를 확인한 적도 없었고, 그런 창이 뜬 적도 없었다. 그냥 검을 쥐면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그게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나로서는 비교 대상이 없어서 판단이 안 됐을 뿐이었다.
"다음번엔 나도 관문 시험 볼 거야." 서은하가 불쑥 화제를 돌렸다. "그때 봐. 네 진짜 실력."
"지금도 충분히 본 것 같은데." 내가 대꾸했다.
"아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건 수정 구슬에 오라 방출한 거잖아. 그건 그냥 수치일 뿐이고. 나는 네가 실제로 검을 쓰는 걸 보고 싶어."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갔는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진짜 실력이라니, 지금도 충분히 놀랐을 텐데 뭘 더 보겠다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을 확인하고 있는 거였다. 정확히 뭘 확인하려는 건지는, 그 순간의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그녀의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는 것, 그리고 복도 끝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번 더 쳐다봤다는 것만은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그 시각, 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각성자 관리국 중앙 청사 3층에서는 조금 다른 종류의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금 이거, 확인하셨습니까." 신입 요원 하나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상급자에게 물었다. 목소리에 이미 당혹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청명학원 등급 관문 기록 말인가." 상급자가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S등급이라니. 그것도 학생 신분으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신입 요원이 다급하게 다른 창을 띄웠다. "신상 조회를 돌렸는데, '강도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각성자 프로필이... 아예 없습니다."
"없다니. 등급 관문을 통과했으면 자동으로 신상이 매핑됐어야지." 상급자가 미간을 더 좁히며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게 안 됩니다." 신입 요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화면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했다. "오라 시그니처 자체가 기존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매칭이 안 되고 있습니다." 신입 요원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재조회 돌려봤나."
"세 번 돌렸습니다. 매번 같은 결과입니다. '일치하는 항목 없음'."
상급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통상적으로 각성자 관리국의 시스템은 오라 시그니처를 통해 개인을 식별했고, 그 정밀도는 지문 인식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지금 화면에 뜬 결과는 그 원칙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오라를 마주하고 오류를 뱉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상급자는 손으로 턱을 짚으며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는데, 볼수록 이상한 점만 늘어났다. 오라 시그니처의 파형 자체가 기존에 관리국이 분류해둔 어떤 계통에도 속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 파형의 진폭이 S등급 판정 기준치를 훌쩍 넘어선 채로 측정 범위 밖까지 튀어나가 있었다.
"이 파형, 이거 측정 오류 아닌가." 상급자가 물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신입 요원이 다른 자료를 띄웠다. "청명학원 쪽에서 보내온 원본 데이터도 똑같습니다. 오류가 아니라... 그냥 이런 값이 나온 겁니다."
"일단 상부에 보고해." 상급자가 낮게 말했다. "이건 우리 선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보고 내용은 뭐라고 적을까요."
"정체불명의 S등급 각성자 출현." 상급자는 화면 속 이름을 다시 한번 응시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강도현이라는 이름 하나.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다. 신상 정보 없음, 오라 계통 분류 불가, 등급 관문 최초 통과. 있는 그대로 적어."
신입 요원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사이, 상급자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관리국에 몸담은 지 벌써 십수 년이었지만, 신상 정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각성자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스템 자체의 결함이거나,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분류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각성이 나타난 경우. 전자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상급자는 그 이후를 굳이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상상해봐야 골치만 아플 게 뻔했으니까.
그 순간의 관리국 내부에서는, 이 짧은 보고서 한 장이 앞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작 그 이름의 주인은, 학원 복도를 걸으며 오늘 저녁 라면 하나를 사 먹을 돈이 남았는지를 계산하고 있었으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 몇 개를 굴려보며, S등급이니 최초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보다는 편의점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이 훨씬 더 실감 나는 문제였다는 게, 지금 내가 느끼는 가장 솔직한 감정이었다. 강도현이라는 이름이 관리국 전산망 어딘가에서 물음표로 떠 있는 줄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오늘의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학원 정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