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나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천장을 바라보던 눈꺼풀이 몇 번이고 감겼다 뜨였다.
잠이 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창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차가운 유리에 손끝이 닿았다.
마당 한쪽, 빨래를 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강선희였다.
어제와 달리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바구니에서 옷을 꺼내 탈탈 터는 손짓이 익숙해 보였다.
허리를 숙였다 펴는 동작 하나에도 눈이 자꾸 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흰 셔츠 자락이 그녀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는 그냥 이 집 사람이 아니에요.〉
목덜미를 스치는 그 말이 자꾸 되풀이됐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부엌에서는 이미 된장국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배가 고픈 건지 다른 감정인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일어났어?"
식탁에 앉아 있던 강다은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어. 일찍 일어났네."
"엄마가 새벽부터 부엌에서 뭐 하는지 시끄러워서."
다은은 하품을 하며 우유를 따랐다.
금발 머리가 아침 햇살에 유난히 밝게 빛났다.
컵에 우유가 채워지는 소리가 조용한 부엌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낯선 얼굴에 시선이 갔었다.
지금은 그 뒤편, 부엌에서 국자를 젓는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 웃음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어젯밤의 잔상이 다시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애써 그 기억을 밀어냈다.
식탁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근데 너희 되게 잘 어울린다."
다은이 갑자기 말했다.
"뭐가."
"이 집. 나랑 엄마랑 사는 거."
다은이 씩 웃으며 우유잔을 내려놨다.
"사실 나 서류상으로는 이 집 딸이래."
숟가락을 들던 손이 멈췄다.
"뭐?"
"몰랐어? 박정혜 여사님이 나 입양했잖아. 몇 년 전에."
다은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핸드폰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어제 날씨 얘기를 하듯 가벼운 말투였다.
"제주도에서 우리 엄마랑 알고 지낸 지 오래됐다면서, 나 예뻐해가지고 호적에 올렸대."
"…몰랐어."
"웃기지? 나는 이 집 딸인데 우리 엄마는 이 집 가사도우미고."
다은이 남 얘기하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나는 너랑 서류상 남매야, 오빠."
오빠라는 말이 낯설게 귀에 걸렸다.
나는 대답 대신 물컵을 들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물이 흔들리며 컵 안쪽 벽을 타고 올라왔다 내려갔다.
그 사이 강선희가 국그릇을 들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준서 학생, 국 좀 더 드려요?"
존댓말이었다.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묻는 말투가 딸을 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니요.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릇을 내려놓는 손등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거칠어진 손마디가 눈에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국물이 흔들리며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혔다.
작은 소리였다.
그 소리 하나에 신경이 곤두섰다.
강선희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개수대 앞에 섰다.
물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그 등이 유난히 굽어 보였다.
"어머, 다은아 너 벌써 일어났네."
현관 쪽에서 박정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외출 준비를 마친 듯 정장 차림이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우리 딸, 오늘도 예쁘다."
박정혜가 다은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었다.
그 손길에는 스스럼이 없었다.
마치 친딸을 대하듯.
손가락이 다은의 머리카락 사이를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
다은도 익숙하게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엄마도 예뻐요."
"이따 오후에 백화점 좀 같이 가자. 옷이 부족하지?"
"콜."
두 사람의 대화가 스스럼없이 이어졌다.
웃음소리가 식탁 위로 가볍게 퍼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강선희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개수대 앞에 선 채로 손이 잠시 멈췄다.
무언가 삼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국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세미를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그냥 이 집 사람이 아니에요.〉
어젯밤 그녀가 서재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벽 너머로 들었던 낮은 속삭임이었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딸은 이 집 딸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이 집 가사도우미로 남았다.
그 기묘한 균형 위에 이 가족이 서 있었다.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뜨는 손이 자꾸만 느려졌다.
입안으로 넘어가는 국물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서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강철이 안경을 고쳐 쓰며 걸어 나왔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이 문틈으로 먼저 보였다.
식탁을 훑는 시선이 잠시 강선희에게 멈췄다.
그 시선의 무게가 부엌 안 공기를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강 여사."
짧고 낮은 부름이었다.
존칭이지만 명령처럼 들렸다.
"네, 이사장님."
강선희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가 조금 전 다은에게 국을 더 드릴지 묻던 자세와는 또 달랐다.
"서재로 잠깐 와."
말투가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식탁에 앉은 누구도 그 변화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은은 여전히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박정혜는 지갑을 챙기느라 바빴다.
나만이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숨을 멈췄다.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선희가 앞치마를 벗고 서재로 향했다.
앞치마 끈을 푸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에 핏줄이 살짝 도드라졌다.
〈그냥 업무 얘기일 수도 있어.〉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박정혜가 현관으로 나가며 나를 돌아봤다.
굽 높은 구두 소리가 잠시 멈췄다.
"준서야, 다녀올게. 다은이 좀 잘 챙겨주고."
"네."
짧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이미 서재 문 쪽에 가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우유잔을 비우고 있었다.
문틈으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 목소리의 온도가, 어젯밤 들었던 그것과 닮아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손끝이 그릇에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조차 지금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식탁 위, 아직 온기가 남은 된장국 그릇을 내려다보며 나는 서재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