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똑똑똑.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천장이 이상했다. 병원 특유의 흰색 형광등이 아니라, 어두운 목재로 마감된 아치형 천장이었고, 그 위로 촘촘하게 박힌 몰딩 사이사이로 샹들리에 비슷한 조명이 은은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온몸의 통증에 다시 눌어붙듯 쓰러졌다. 갈비뼈 어딘가가 뻐근했고, 어깨뼈 근처가 욱신거렸다. 죽은 게 아니었나. 분명히 트럭 헤드라이트를 봤고, 그 빛이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키는 순간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손등도, 손목도, 목덜미도. 만져보면 만져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럴 수가 없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금발을 숏커트로 짧게 자른 여자가 들어왔는데, 검은 슈트를 입은 몸에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서늘한 눈매와 절제된 걸음걸이가 유독 인상적이었고, 발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을 만큼 걸음이 조용했다. "일어났네요." 그녀가 말했다. 감정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였다. 사무적이었고, 어딘가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라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는 듯한 어조였다. "한소율이에요. 선우해나 님의 비서고, 앞으로 당신을 관리할 사람이에요."
"선우해나?" 나는 반문했다. 목이 잠겨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관리라니, 무슨 소리예요. 저 병원 아니에요?"
그녀는 잠시 나를 재보듯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마치 상품의 하자를 점검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더니 조금 지친 얼굴로 침대 옆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다리를 꼬고,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자세가 완벽하게 대칭이었다. "강민준씨, 당신은 이틀 전에 트럭에 치여 죽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죽었어야 했죠."
그 말이 너무 태연하게 나와서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죽었어야 했는데 살았다니, 그게 무슨 개그야. 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모친분이 당신을 팔았어요." 그녀가 이어 말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오순자씨. 병원 응급실에서 오혜진이라는 중개인과 거래를 했어요. 생명보험금과는 별개로, 당신의 몸을 넘기는 조건으로."
몸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고,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귀 안쪽에서 이명이 웅웅 울렸다. 어머니가. 나를. 팔았다고. 나는 웃으려다 실패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몰딩의 문양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또렷해졌다.
"거짓말이죠." 겨우 뱉은 말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희 엄마가……"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요?" 한소율의 목소리엔 조롱기조차 없었다. 그저 사실을 확인하는 말투였다. 그게 더 잔인했다. "선택은 당신 어머니가 했어요. 저는 그 결과를 전달할 뿐이고요."
"팔렸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예요." 겨우 물었다.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한소율은 잠시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선우해나 님의 소유예요. 인간의 언어로는 정확한 번역이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데워' 정도가 맞겠네요."
"데워?" 나는 되물었다.
"그쪽 세계 언어예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때 쓰는 말." 그녀는 마치 계약서 조항을 읽어주듯 무미건조하게 덧붙였다. "설명해도 어차피 다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소유. 물건처럼. 나는 이불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세게.
"저는 사람이에요." 목소리가 떨렸다. "물건이 아니라……"
한소율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을 뿐이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대답이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성벽 같은 높은 담과 오래된 석조 건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오른 흔적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뾰족한 첨탑 같은 구조물이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 겨우 드러내고 있었다. 서울 어딘가에 이런 곳이 있었나. 지도에도 없을 것 같은,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물었더니, 한소율은 그저 "고성이에요"라고만 답했다. 더 캐물으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만 남았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손끝을 들여다봤다.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낯선 침대에 누워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열 살 무렵, 어머니가 회사 야근이라며 나를 홀로 남겨두고 나갔던 밤. 나는 냉장고에 있던 식은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들었었다. 그날 어머니는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돌아왔고, 술 냄새를 풍기며 내 이불을 걷어차더니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가 진짜로 나를 걱정한 순간이 있었나. 곱씹어봐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아플 때도, 시험을 망쳤을 때도, 회사에서 잘렸다고 말했을 때도. 어머니는 늘 나를 보면서도 나를 보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를 팔았다. 죽어가는 아들의 몸을 두고 거래를 했다. 그 사실이 실감 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납득이 갔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정작 눈은 말라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규칙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무게가 없는 소리였다. 사람의 발소리라기엔 너무 균일했고, 사람의 발소리라기엔 너무 가벼웠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벽에 등을 붙였다. 심장이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였다. 손잡이가 움직이지는 않을까. 문이 열리지는 않을까. 나는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노려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리는 다시 멀어졌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누군가 문 앞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다가 그냥 갔다는 사실이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노크도, 말소리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사라진 존재.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창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섭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이 성 안에 나 말고 또 누가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존재는, 왜 문 앞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