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세수단을 미끼로 쓰자는 겁니까."
서다연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회의실엔 우리 둘뿐이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이 그녀의 미간에 그늘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세수단이 여기 있다는 소문만 내는 겁니다."
"진짜 있는 것도 아닌데."
"있는 척만 하면 됩니다. 물건이 진짜인지는 저쪽이 여기 와서 확인해야 알 테니까요."
서다연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러다 감당 못할 상대가 오면."
"그때 감당하면 됩니다."
"..."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지도 위 산문 위치를 짓누르듯 눌렀다가 뗐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문파의 곳간이 텅 빈 지금, 어차피 숨어서 버틸 여유도 없었다. 화로에 넣을 장작 한 단조차 아쉬운 형편이었다.
소문은 사흘 만에 산 아래까지 퍼졌다. 저잣거리 술청에서 흘린 말 한마디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날부터 산문 앞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첫째 날은 낭인 다섯이 왔다. 세수단 냄새를 맡고 온 하급 사냥꾼들이었다. 옷깃마다 흙먼지가 앉아 있었고, 눈빛에는 굶주림이 섞여 있었다.
"안에 있다는 게 사실이냐."
앞장선 자가 칼자루에 손을 얹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화로 속 불씨를 가볍게 끌어올렸다. 위에서 아래로.
퍽! 퍽! 퍽!
다섯이 나란히 뻗었다.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한동안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둘째 날은 여덟이 왔다. 그중 하나는 채찍을 쓰는 자였는데, 채찍 끝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제법 매서웠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위에서 아래로 한 번씩, 그것으로 끝이었다.
셋째 날은 열둘이었다. 산문 앞이 사람으로 북적였다. 서다연은 그 광경을 보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러다 산문이 저잣거리가 되겠어."
"손님이 많다는 건 장사가 잘된다는 뜻이지요."
"..."
그녀는 대답 대신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밥값은 확실히 벌고 있습니다."
나는 마당에 늘어진 자들을 보며 서다연에게 말했다.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은자 몇 냥이 이미 곳간 항아리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말이 나올 상황인가."
"곡식 창고 걱정은 좀 줄지 않았습니까."
"..."
그녀는 또 말을 잃었다. 이마를 짚은 손이 이번엔 관자놀이까지 미끄러졌다.
나흘째 되는 밤, 산문 앞에 다른 기운이 나타났다.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달랐다. 공기부터 무거웠다. 걸어오는 걸음마다 땅이 옅게 울렸다. 등롱 불빛이 그 걸음에 맞춰 흔들리듯 일렁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였다. 허리에 찬 검은 붉게 물든 칼집에 싸여 있었고, 눈빛은 도날보다 차가웠다. 걸음마다 어깨에 짊어진 살기가 옷자락처럼 흩날렸다.
"세수단을 가진 놈이 너인가."
목소리부터 무게가 달랐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하급 낭인들과는 격이 다른 자였다. 말 한마디가 쇳덩이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서다연의 손이 검자루를 움켜쥐는 게 느껴졌다. 옆에 선 그녀의 숨소리가 짧게 끊겼다.
"저 사람..."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혈영검왕이야. 사대살수 중 하나."
나는 가슴속 불씨를 조용히 끌어올렸다. 처음으로, 그 불씨가 미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화로 밑바닥에서 올라오던 열기가, 지금은 냉기와 부딪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대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
사내의 칼집이 스르릉, 아주 낮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