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날 새벽,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더 뚜렷해졌다.
가슴 한복판, 원래 단전이 있던 자리에서, 뭔가가 아주 미세하게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두근.
심장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심장은 그 위쪽에서 따로 뛰고 있었다.
이건 다른 뭔가였다.
비유하자면, 원래 있던 배전판 옆에 누가 몰래 콘센트를 하나 더 박아넣은 느낌이랄까.
집주인 허락도 없이 셀프 인테리어를 해버린 그런 느낌.
[감정 수치: 240 / 1000]
아직 각성 조건인 1000점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런데도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게 이상했다.
대마천시스템은 1000점을 채워야 각성한다고 했는데, 벌써부터 몸에서 이런 변화가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설마 이것도 무슨 얼리버드 이벤트 같은 건가.
선착순 각성 특가, 뭐 그런 거.
[대마천시스템: ZzzT... GAM-JI-DOEN... GEOT... IN-GA...]
눈동자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발음이 부분적으로 한국말로 변환되어 있었다.
번역기가 업데이트라도 됐나, 어제보다 확실히 발음이 좋아졌다.
"뭔가 감지된 겁니까?"
"내 가슴에서 뭔가 진동하는 게 느껴지는데."
"그건 정상입니다. 경맥이 붕괴된 자리에, 나의 힘의 일부가 흘러들어가 대체 회로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회로라니.
마치 원래 있던 도로가 무너진 자리에, 임시 우회로를 뚫는 공사 같은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 공사에 대해 나한테 사전 동의를 받은 적이 없다는 거였다.
민원 넣을 데도 없고, 시청도 없고, 하다못해 관할 구청도 없다.
"그거 위험한 건 아니고?"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죠. 지금 이 회로는 당신의 부정적 감정을 태워서 유지됩니다. 감정이 부족하면, 회로가 다시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으로 유지되는 몸이라니, 이거 완전 저주받은 사이보그 아닌가.
분노가 배터리 역할을 하는 몸.
앞으로 화를 안 내면 죽는 몸이 됐다는 뜻인데, 이거 오히려 나한테는 잘 맞는 조건이었다.
원래 화가 많은 성격이었으니까.
전생에 층간소음이랑 배달 오배송, 무단횡단 하는 킥보드 아저씨들 상대로 쌓아둔 분노만 해도 이 몸뚱이 하나 충전하고 남을 것 같았다.
"그럼 나 이제 화내는 게 일종의 생존 활동인 거네."
"…그렇게 표현하셔도 무방합니다."
눈동자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근데 잠이 잘 안 왔다.
가슴 속에서 뭔가 째깍째깍 시한폭탄처럼 뛰고 있는데 그냥 눈감고 자는 게 말이 되나.
*
같은 시각, 족장전에서는 고천룡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아들의 상태를 며칠째 곱씹고 있었다.
노의사의 보고에 따르면, 아들의 경맥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의학적으로는 며칠 안에 명을 다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숨쉬고, 걷고, 대화까지 나누고 있었다.
고천룡은 감령경 후기의 강자였다.
부족의 최강자로서, 그는 기운의 흐름을 남들보다 훨씬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아들의 방 근처를 지나던 도중, 아주 미약하지만 낯선 파동을 감지했다.
그것은 부족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기운이었다.
순수하지도, 사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이면서도 어딘가 위태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잘 벼려진 칼날이 아직 칼집 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고천룡은 그날 밤 이후로도 몇 번 더 그 자리를 지나쳐보았다.
확인이라기보다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매번 같은 위치, 같은 강도로 그 파동이 느껴졌다.
누가 일부러 숨긴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 존재 자체가 아무런 은폐 의지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숨기려는 기운은 흔했지만, 숨길 필요조차 없다는 듯 태연하게 존재하는 기운은 처음이었다.
고천룡은 이 사실을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확신이 없었고, 만약 이 감각이 맞다면, 아들의 몸에 뭔가 이례적인 것이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부족의 족장으로서 그는 신중해야 했다.
괜한 말이 새어나가면 아들의 목숨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지금 부족 안에서 준의 존재는 이미 여러 사람의 눈초리 속에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아들이 절벽에서 떨어진 그날 이후, 부족 안에서는 이상한 흐름들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었다.
고흥의 태도, 고천호의 은근한 관심, 그리고 아들 스스로의 이상한 회복.
평소라면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사소한 변화들이, 요즘은 하나하나 신경에 걸렸다.
한편, 고천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 고흥의 방에 들러, 절벽 사건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정말 미끄러진 게 확실하냐."
"예, 아버지. 제가 봤습니다."
고천호는 아들의 눈을 잠시 응시했다.
감령경 후기의 경지에 이른 자로서, 그는 미세한 동요조차 놓치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눈에서는 별다른 동요가 읽히지 않았다.
능숙하게 거짓을 감추고 있거나, 정말로 사실을 말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고천호는 손끝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습관처럼 나오는 동작이었다.
뭔가를 확신하지 못할 때, 그는 늘 이렇게 손끝으로 리듬을 만들며 생각을 정리했다.
"준이의 몸 상태는 어떠하냐."
"많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경맥이 완전히 무너졌다고요."
"그렇다면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그렇겠지요."
고천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는 미묘한 불안이 자리했다.
죽어야 할 몸이 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경험상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차라리 아들이 그냥 죽어버렸다면 이 불안도 함께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준은 죽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뭔가를 축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고천호는 그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그날 아침 방 안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서, 방 한복판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전생에 헬스장에서도 이렇게 정색하고 뭔가에 집중해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뭔가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아마 죽다 살아난 사람 특유의 오지랖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손끝에 힘을 모아보려 시도했다.
원래는 아예 반응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경맥이 무너진 폐인의 몸에, 뭔가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그런데.
촤르르르륵!
손끝에서 아주 작은 불꽃 같은 게 튀었다.
크기는 콩알만 했지만, 분명 뭔가가 반응했다는 증거였다.
숨이 턱 막혔다.
이건, 이건 진짜였다.
경맥이 아니라 다른 통로로, 뭔가가 정말로 흐르고 있었다.
마치 단전이 있던 자리에, 누가 몰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놓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허가도 없이, 심지어 사용 설명서도 없이.
[감정 수치가 증가했습니다. 240 → 251]
지금 이 순간의 놀라움과 흥분조차도 감정 수치로 환산되는구나.
좋은 감정도 되는지 궁금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건 흥분에 섞인 '불안'과 '경계심' 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 모양이었다.
결국 이 시스템은 내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행복회로는 안 돌아가고, 불안회로만 풀가동되는 구조.
어째 이거 사이비 종교 다단계보다 더 악질적인 시스템 같은데.
어쨌든 이건 명백한 진전이었다.
1000점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방향은 확실히 잡혔다.
이대로 계속 불안과 분노를 쌓아가면, 언젠가는 각성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각성이 나한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죽지 않고 살아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손끝에 힘을 모아보았다.
이번엔 조금 더 신중하게, 아까와는 다른 방식으로.
촤르르륵!
또 튀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크게.
콩알만 하던 게 이제 손톱만해졌다.
성장 속도가 나쁘지 않았다.
이거 뭐 게임 캐릭터 레벨업 하는 기분인데.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급하고 성급한 발소리였다.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쾅!
고흥이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방금 뭔가를 들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눈빛이 날카롭게 방 안을 훑고 지나갔다.
마치 도둑을 잡으러 온 형사 같은 눈초리였다.
"준아, 지금 뭐 했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방금 그 불꽃, 밖에서도 감지된 건가.
설마 이 방에 방음이 하나도 안 되는 건가, 아니면 고흥의 감각이 그냥 미친 거거나.
둘 중 뭐가 됐든 지금 이 상황은 별로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