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눈동자는 정확히 삼 초쯤 나를 관찰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사람이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중고나라에서 사기꾼인지 아닌지 판별하려고 프로필 사진부터 거래 후기까지 스캔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문자가 아니라 소리로 말을 걸었다.
"ZzzT... KI-JUN... SI-GAK... HWAK-IN..."
의사언어 같은 게 나왔다.
로마자 표기의 이상한 발음, 마치 고장 난 자판기가 사람 말을 흉내 내려다 실패한 소리 같았다.
그럴 리가.
또 다른 신이 강림한 거라 믿었는데, 발음을 못 해서 헤매는 신이라니, 격이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닌가.
방금까지 고성하라는 놈한테 통수 맞고 절벽에서 떨어진 내 앞에, 이번엔 발음도 어눌한 놈이 나타나서 말을 건다는 게 뭔가 코미디의 정석 같았다.
신이라는 것들은 다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걸까.
거창하게 강림하긴 하는데, 첫 마디는 항상 어딘가 부실하다.
[대마천시스템, 계승 대상 확인 절차를 개시합니다.]
알림창이 다시 떴다.
이번엔 좀 더 상세했다.
[대상: 고준 (전생 기억 보유 개체)]
[상태: 경맥 완전 붕괴, 생명력 위독]
[제안: 무한 허공의 최고 법칙, '대마천시스템'과의 계약]
무한 허공의 최고 법칙이라니.
이름부터 스케일이 뭔가 부담스러웠다.
마치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는데 '우주 최강 프랜차이즈 그룹 정직원 채용'이라고 광고 붙여놓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시급은 안 나와 있고 복지 얘기만 잔뜩 써놓은, 딱 봐도 뭔가 냄새나는 공고문 같은 느낌.
경맥 완전 붕괴, 생명력 위독.
저 문장을 보고 있자니 실감이 새삼 확 들었다.
방금까지는 그냥 "아 죽나보다" 하고 넘겼는데, 시스템이 저렇게 딱 정리해서 보여주니까 오히려 더 무서웠다.
사람이 자기 건강검진 결과지 받아보고 "종합소견: 매우 심각" 이라는 문구 보면 그제야 진짜 겁먹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뭘 원해."
일단 물었다.
존댓말 쓸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신이라는 것들은 한 번 겪어보니 존댓말 써준다고 착해지지 않았다.
고성하도 처음엔 자상한 척 다 해주더니 결국 절벽으로 밀었다.
이번엔 처음부터 선을 그어야 했다.
"ZzzT... NAE... GA... WON-HA-NEUN... GEOT-EUN..."
눈동자가 깜빡였다.
느릿하게, 마치 랙 걸린 화면이 프레임 하나씩 넘어가듯이.
그러더니 갑자기 발음이 또렷해졌다.
"당신의 부정적 감정입니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부정적 감정?"
"분노, 절망, 억울함, 열등감, 배신감. 이런 것들을 나에게 넘겨주시면, 나는 그것을 에너지로 변환해 당신에게 힘으로 돌려줍니다."
이게 무슨 대환장 콜라보인가 싶었다.
주신 고성하는 나의 신뢰와 충성을 갈취해가며 힘을 줬다.
그리고 이 눈동자는 내 분노와 배신감을 갈취하겠다는 거다.
결국 신이란 존재들은 다 내 감정을 뜯어먹고 사는 벌레 같은 놈들이구나.
차라리 서로 경쟁 붙여서 누가 더 싸게 감정을 사가는지 비교 견적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정 수거업체 두 군데 불러서 견적 받는 느낌.
한 군데는 충성 페이로, 한 군데는 분노 페이로 계산하는데, 둘 다 결국 내 알맹이를 빼가는 건 똑같았다.
"조건은?"
"1000점의 감정 수치를 채우면 첫 각성이 이루어집니다. 당신은 현재 210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10점이라니.
방금 절벽에서 떨어져서 형에게 배신당했는데 겨우 210점이면 나 감정 표현이 너무 무던했던 건가.
혹시 이거 절벽에서 떨어질 때 반사적으로 떠오른 '아 저 새끼 진짜' 정도밖에 안 쳐준 건가.
그럼 진심으로 열받았을 때는 몇 점을 주는 거지.
욕을 시원하게 백 번 하면 백 점씩 쳐주는 시스템인가.
그럼 나는 지금부터 욕 배틀 유튜버처럼 살아야 하는 건가.
"어떻게 채우는데."
"당신이 느끼는 모든 부정적 경험이 곧 재화입니다. 억울해도, 화가 나도, 무시당해도, 다 재화입니다."
[전도서식으로 말하자면, 마음의 근심을 없이 하며]
마음의 근심을 없이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심을 쌓으라는 거잖아.
이거 완전 부동산 사기 같은 구조 아닌가.
분양은 억울함으로 받고, 준공은 각성으로 해준다는.
계약서 맨 아래 작은 글씨로 "감정 수치 미달 시 환불 불가" 라고 써 있을 것 같은 불길함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선택지가 없었다.
경맥이 붕괴된 몸으로 정상적인 수행은 불가능했다.
숨 한 번 쉴 때마다 몸속 어딘가가 갈리는 느낌이 났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전신에 통증을 몰고 왔다.
이 시스템이 사기든 아니든, 지금 나에게 남은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동아줄이 삼끈인지 거미줄인지 확인할 여유조차 없었다.
"좋아. 계약할게."
"ZzzT... GYE-YAK... WAN-RYO..."
[대마천시스템과의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감정 수치: 210 / 1000]
[계약자: 고준]
그 순간, 온몸에서 뭔가가 훅 빨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까지 있던 좌절감, 분노, 배신감 같은 것들이 살짝 옅어진 것 같기도 했다.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것을 힘으로 치환하는 파이프라인이 열린 느낌이었다.
마치 스마트폰 배터리 최적화 모드가 켜진 것 같기도 했다.
백그라운드 앱 강제 종료, 감정 앱도 강제 종료, 대신 시스템 프로세스 하나가 조용히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기 시작하는 느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공포로 떨리는 게 아니라, 뭔가 낯선 전류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었다.
경맥이 붕괴됐다는 게 사실이라면 저 전류가 흐를 통로도 없어야 할 텐데, 그럼에도 뭔가가 흘렀다.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안 아프면 된 거 아닌가 싶었다.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ZzzT?"
"왜 나야."
"당신의 그릇이 특이합니다. 전생의 기억과 수행 흔적이 남아있는데, 현재 몸의 경맥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육체와, 회복을 갈망하는 강력한 영혼의 조합. 나는 이런 조합을 좋아합니다."
좋아한다니.
마치 재개발 예정지에 헐값으로 들어와서 나중에 시세차익 노리는 투자자 같은 말투였다.
망해가는 건물 하나 사놓고 "여기 입지가 참 좋습니다" 라고 말하는 부동산 중개인이 떠올랐다.
경맥 완전 붕괴, 생명력 위독한 몸뚱이 하나를 두고 저렇게 만족스러워하는 걸 보니, 이 시스템도 나름의 취향이 확고한 모양이었다.
"그럼 이런 몸뚱이가 흔치는 않은 거고?"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개체는 경맥이 손상되기 전에 죽습니다. 당신처럼 경맥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도 영혼이 온전히 유지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드문 경우라니, 그거 칭찬인지 저주인지 헷갈리는 표현이었다.
남들은 다 죽었는데 나만 안 죽어서 이 눈알한테 픽업당한 거라면, 이건 행운인지 불행인지도 판단이 안 섰다.
로또 당첨됐는데 당첨금이 폐지 한 트럭인 느낌이랄까.
"참고로, 당신을 버린 그 주신 말입니다."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고성하 말이야?"
"그의 시스템과 나는 뿌리가 다릅니다. 그의 시스템은 헌신과 충성을 자원으로 삼습니다. 나는 부정적 감정을 자원으로 삼습니다. 서로 상극이죠. 당신이 나와 계약한 순간, 그의 잔향이 이걸 감지했을 겁니다."
잔향이라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죽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손 뗀 것도 아니고, 잔향이라는 형태로 어딘가 남아있다는 뜻인가.
마치 헤어진 애인이 SNS 계정은 안 지우고 가끔 스토리만 보는 것 같은, 딱 그 정도의 애매한 관계처럼 들렸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면, 문제가 됩니다."
관심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들린 적이 없었다.
보통 관심은 좋은 거 아닌가.
근데 저 눈알이 말하는 관심은, 마치 채권자가 연락 끊긴 채무자 소식을 우연히 들었을 때의 그 관심 같았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데."
"모릅니다. 나는 그의 사고 체계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모른다는 대답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알면서 숨기는 것보다, 진짜로 모르는 게 더 무서운 경우가 있다.
지금이 딱 그 경우였다.
그 말을 남기고 눈동자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다 할 말은 했으니 이제 알아서 살아보라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흩어지는 안개처럼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혼자 남겨진 나는 협곡 바닥에 앉아 210이라는 숫자를 한동안 노려봤다.
숫자 세 자리가 이렇게 압박감을 주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학창 시절 성적표를 받았을 때보다도 더 심장이 뛰었다.
1000점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쌓아야 하는지, 벌써부터 감이 안 잡혔다.
바닥에 깔린 습기 찬 돌 위로 몸을 지탱하고 앉아 있으려니 옆구리에서 다시 통증이 올라왔다.
경맥이 붕괴됐다는 게 이렇게 온몸 구석구석에서 신호를 보내는구나 싶었다.
숨을 얕게 쉬어도 갈비뼈 안쪽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 위 절벽 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아! 준아 살아있냐!"
익숙한 걸음소리와 함께, 저 위에서 누군가가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표정을 보니 걱정하는 척 축하하러 온 얼굴이었다.
저 억양, 저 톤, 저 특유의 걱정하는 시늉.
멀리서 들어도 단박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고흥.
방금 나를 밀어버린 그 새끼가, 벌써 다시 찾아왔다.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속도가 묘하게 빨랐다.
마치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고 서두르는 사람처럼, 아니면 정말로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서두르는 사람처럼.
저놈의 표정에서 미안함 같은 건 한 조각도 안 보였다.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는, 시험 결과를 확인하려는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210점.
방금 막 생긴 숫자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저 새끼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숫자가 벌써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