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청람학원 정문 앞은 아침부터 인산인해였다.
동이 트기도 전부터 문지기들이 마당을 쓸고 또 쓸었고, 내문제자들은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문 계단의 이끼까지 긁어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원장 육명봉이 직접 대문 밖까지 나와 서 있는 모습은, 학원이 세워진 이래 몇 번 있지도 않은 일이었다.
내문제자들도, 지도교관들도 모두 정문으로 몰려나와 웅성거렸다.
그 웅성거림 속에는 흥분과 두려움이 반쯤 섞여 있었다.
"천무경 강자가 온다는 게 사실입니까?"
한 교관이 원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사실이오."
육명봉이 짧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여유가 없었다.
평생 지무경의 정점에서 학원을 이끌어온 그였으나, 지금 그의 손끝은 옷자락을 움켜쥔 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천무경.
지무경을 넘어선 자, 대륙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경지.
전설로만 전해지던 경지, 몇몇 노고수들조차 평생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죽는 그 벽 너머의 존재.
그런 존재가 이 작은 학원에 발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곳에 왜 오시는 겁니까?"
한 내문제자가 옆 동료에게 낮게 물었다.
"몰라. 소문으로는 원골 각성자를 찾는다던데."
"원골 각성자? 그게 여기 있어?"
동료는 어깨를 으쓱였다.
누구도 확실한 답을 알지 못했다.
그때 저 멀리, 관도 끝에서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느긋한 걸음, 흐트러짐 없는 자세.
곱게 지은 비단옷을 걸친 소년이었다.
옷자락에는 은실로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이 걸음마다 옅게 빛을 반사했다.
나이는 열여섯이나 열일곱쯤, 얼굴은 아직 소년의 것이었으나 눈빛만큼은 그 나이의 것이 아니었다.
정문 앞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저, 저분이십니까?"
교관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이번엔 완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렇소."
육명봉이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굽혔다.
그 허리가, 평소보다 훨씬 더 깊이 꺾였다.
"멀리서 걸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은 대답 없이 학원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누군가는 침을 삼켰고, 누군가는 고개를 완전히 숙여 그 시선을 피했다.
"소문대로군요."
소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작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작습니다."
말투는 정중했다.
하지만 그 안에 스며 있는 것은 경멸이었다.
마치 발밑의 벌레 집을 살펴보는 듯한, 그런 시선.
"...부끄럽습니다."
육명봉이 고개를 숙였다.
대륙 굴지의 지무경 강자가, 이 소년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학원 관리자일 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학원생들 사이에서 낮은 침음이 흘렀다.
"저, 정말 천무경이구나..."
남궁유리가 옆에 선 이청운에게 작게 속삭였다.
남궁유리는 청람학원 내에서 제일미녀로 불리는 내문제자였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흔들림 없는 눈매를 가진 그녀는 평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옆에 선 이청운의 소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그런 것 같군."
이청운이 낮게 답했다.
그는 청람학원 내문제자 중에서도 이미 지무경에 오른 실력자였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룬 성취였으나, 지금 정문 앞에 선 소년 앞에서는 그 성취조차 초라해 보였다.
그의 시선은 소년의 발걸음, 소년의 호흡, 소년의 아주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 무엇에서도 틈을 찾을 수 없었다.
"저런 존재가 정말 존재하는구나."
이청운이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강자들은 모두 인간의 한계 안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저 소년은, 그 한계 밖에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저희 학원을 살펴보고 싶다 하셨는데."
육명봉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어느 쪽부터 안내해드릴까요."
"안내는 필요 없습니다."
소년이 학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걷다가 눈에 띄는 게 있으면 보는 것으로 하지요."
그 걸음에는 여유가 넘쳤다.
마치 자신의 뒷마당을 산책하듯, 소년은 청람학원의 정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 소자가! 소자가 안내를 맡겠습니다!"
박대환이었다.
방금까지 유겸을 괴롭히다 정문의 소란에 뛰어온 그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넙죽 허리를 숙였다.
숨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채,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자는 청람학원 외문제자 박대환이라 합니다. 이 학원의 구석구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부디 소자에게 안내를 맡겨주시면..."
주변의 내문제자들 몇몇이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박대환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 자들이었다.
소년이 걸음을 멈췄다.
그 시선이 처음으로 박대환에게 닿았다.
"당신이."
"예, 예! 소자가!"
박대환의 얼굴에 기대에 찬 웃음이 번졌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욱 허리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방금까지 누군가를 괴롭히던 그 손으로, 지금은 저에게 잘 보이려 하시는군요."
순간 정적이 일었다.
박대환의 웃음이 굳었다.
"그, 그것이 아니라..."
"손에서 흙냄새와 함께 다른 냄새가 나는군요. 겁먹은 자의 냄새."
소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런 손으로 나를 안내하겠다니, 우습군요."
주변에서 몇몇이 낮게 숨을 삼켰다.
누구도 감히 웃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소, 송구합니다!"
박대환이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이마가 땅에 닿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소년은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벌레 한 마리를 지나친 것처럼,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엎드린 박대환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굴욕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흙냄새가 나는 방향이 있군요."
소년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그 시선이, 정문 앞 소란을 뚫고 저 멀리 뒷산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유겸이 흩어진 약초를 마지막으로 바구니에 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땀에 젖은 옷자락, 흙 묻은 손, 그리고 무거운 바구니.
그는 정문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방금 전 박대환을 향했던 경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저곳부터 가보지요."
육명봉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저, 저곳은 그저 천역을 하는 아이가..."
"천역을 하는 아이라."
소년이 흥미롭다는 듯 되뇌었다.
"흥미롭군요. 원골 각성자가 천역을 한다는 것이."
그 한마디에, 육명봉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어떻게 알았는가.
누가 말해줬는가.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천무경의 강자에게는, 그런 정보조차 굳이 캐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육명봉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걸음은 이미 뒷산을 향해 있었고, 그 발소리에는 조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흥미가 실려 있었다.
이청운과 남궁유리도, 학원생들도 그 뒤를 따랐다.
누구도 감히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저 아이가 원골 각성자라고?"
한 학원생이 옆 사람에게 소곤거렸다.
"그런 것 같다. 천역을 하던 그 애 말이지?"
"말도 안 돼. 그런 천역이나 하는 애가...?"
수군거림은 뒷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따라 점점 커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소년의 걸음보다 앞서지는 못했다.
뒷산의 흙길 위, 유겸은 발소리가 여러 겹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학원생 몇몇이 산책이라도 나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발소리는 점점 많아졌고, 그 안에는 유독 낯선 것이 섞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서늘한, 조금 전에 느꼈던 그 발소리가 가장 앞서 있었다.
마치 얼음 위를 걷는 듯한, 소리조차 나지 않을 것 같은 걸음.
유겸의 등줄기에 옅은 오한이 스쳤다.
그는 바구니를 든 손에 힘을 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유겸이 바구니를 감싸안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대답 대신,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흙을 밟는 소리, 나뭇가지를 스치는 옷자락 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리 위로 얹힌,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
유겸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이미 산비탈이 가로막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