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소문이 퍼진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마을 어귀에 낯선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관인이 새겨진 깃발을 매단, 지역 치안대의 마차였다. 바퀴가 자갈길을 밟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했는지, 하나둘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게 뭔 마차래?"
"관인이 박혀 있잖아. 치안대여."
"치안대가 여긴 왜 온다냐?"
수군거림이 삽시간에 마을 전체로 퍼졌다. 이강은 오두막 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중이었는데, 도끼를 내려놓고 슬쩍 고개를 들었다.
'허, 예상보다 빠르구나.'
마차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북천 변경 치안대에서 나왔소."
마차에서 내린 사내는 갑옷을 걸치고 검을 찬 삼십 대 무관이었다. 어깨에 걸린 견장이 볕에 반짝였다. 뒤로 병사 셋이 따라붙었는데, 하나같이 창을 세워 든 채 눈알만 굴리며 마을 풍경을 훑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여씨 할아버지도 그 무리 속에서 유독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박도철이라는 자가 이 마을에 산다고 들었다."
무관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지만, 눈빛에는 은근한 경계가 섞여 있었다.
"얼마 전 아이 하나가 불량배의 손목을 부러뜨릴 뻔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강은 오두막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끼 자루를 쥔 손에 힘이 슬며시 들어갔다.
'허, 벌써 이 정도까지 소문이 났나. 여씨 할아버지, 입이 참으로 가벼우신 분이었구나. 다음에 감자 좀 덜 드려야겠군.'
박도철이 마당으로 나섰다. 걸음걸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했다.
"내가 박도철이오."
무관의 눈이 박도철의 빈 소매를 스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시선에는 놀람과 의심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당신, 예전에 사막 탐험가였다지."
"옛날 일이오."
박도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무관이 이강을 흘겨보았다. 아이의 체구를 위아래로 훑는 눈빛이 꼭 짐승의 뼈대를 재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그 아이인가."
"그렇소."
"아이가 무술을 익혔다는 소문이 있소. 정식 검사 등록도 안 된 자가 무력을 행사하면 문제가 될 수 있소만."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병사 셋이 슬쩍 창끝을 세우는 시늉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뚝 끊겼다.
'허, 이게 관에서 나설 정도의 일이었나. 예상보다 크게 번졌군.'
이강은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여기서 박도철 아저씨의 힘을 감추려면... 오히려 정반대로 나가는 것이 낫겠다. 관이 원하는 건 결국 안심할 구실이니.'
이강은 앞으로 나서서 일부러 눈물을 글썽였다. 눈가에 물기를 모으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서른 해 넘게 쌓은 연기력이 어디 가겠는가.
"저는 그냥... 도망치려다 넘어진 애를 보고 놀랐을 뿐인데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까지 살짝 떨었다. 콧물까지 훌쩍이는 소리를 냈더니, 근처 아주머니 하나가 안타까운 얼굴로 혀를 찼다.
무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가."
'옳지. 넘어오는군.'
하지만 박도철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 마당 한쪽에 놓인 통나무 앞에 섰다.
지름이 사람 허벽만 한 통나무였다. 오래전에 베어 놓고 아직 패지 못한 물건이었는데, 결이 단단하기로는 마을에서 손꼽히는 나무였다.
박도철이 남은 한 손으로 검을 뽑았다.
스릉—
칼날이 볕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무관의 눈매가 순간 좁아졌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그대로 내리쳤다.
콰아앙!
통나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좌우로 넘어갔다. 잘린 단면이 마치 대패로 밀어놓은 듯 매끈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짧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군가는 뒷걸음질을 쳤고, 누군가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무관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병사 셋도 창을 든 손을 슬며시 아래로 내렸다.
박도철은 검을 다시 집어넣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는 그저 나를 따라 흉내를 낸 것뿐이오. 진짜 힘을 쓰는 게 뭔지는, 방금 보여준 것이 답이 될 거요."
무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젖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허장성세로 힘을 보여주며 위협도 하지 않고 넘기다니.'
이강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게 특급검사의 검이던가. 예사롭지 않구나. 준비 동작 하나 없이 저 정도 목질을 갈랐다는 건... 저 아저씨, 도대체 얼마나 감추고 있는 겐가.'
박도철의 검격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칼날의 궤적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내려친 순간의 소리조차 지나치게 조용했다. 마치 힘을 다 쓰지 않고도 통나무를 갈랐다는 뜻이었다.
무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등 뒤에서 병사 하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거...설마 특급...?"
무관이 눈짓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아이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소. 다만, 앞으로 조심하시오."
"알겠소."
박도철은 짧게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태도가 오히려 무관을 더 불편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마차가 다시 마을을 떠나고, 사람들도 흩어졌다. 몇몇은 여전히 흘긋흘긋 오두막 쪽을 돌아보며 무언가 수군거렸지만,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시선이었다. 두려움과 존경이 반쯤씩 섞인 시선.
마당에 둘만 남았을 때, 박도철이 이강을 돌아보았다. 검을 든 손이 여전히 담담하게 늘어져 있었다.
"봤느냐."
"...뭘요?"
이강은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눈가에는 조금 전 글썽였던 물기가 남아 있었다.
"진짜 힘이란 게 무엇인지."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감탄한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저도 저렇게 되고 싶어요! 통나무를 그냥... 팍! 하고 가르는 거요!"
두 손을 들어 허공에 칼질하는 흉내를 냈다. 제법 그럴싸한 몸짓이었다.
박도철이 처음으로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짧고 거칠었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는 놀이가 아니다."
"네?"
"진짜로 가르쳐주마."
그 말에 이강의 가슴 한켠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허, 이 사내... 진심이로군.'
서른 해를 넘게 산 넋도 쉬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건만,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뭉근하게 올라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마치 오래전에 잊었던 온기가 손끝부터 스며드는 것 같았다.
'...주화입마라도 오려는가. 정신 차려라, 본좌.'
속으로는 그리 자조했지만, 입가에 걸린 웃음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밤, 화로에서는 장작이 타들어가며 툭툭 소리를 냈다. 오두막 안은 따뜻했고, 창밖으로는 별빛이 유난히 맑았다.
박도철은 화로 앞에 앉아 낡은 가죽 표지의 책을 하나 꺼냈다. 표지는 오래되어 색이 바랬고, 귀퉁이는 닳아서 둥글게 말려 있었다.
"이건 내가 죽음의 사막을 걸으며 적어둔 기록이다."
표지에는 손글씨로 《위험지 기록노트》라 적혀 있었다. 글씨체는 투박했지만 힘이 있었다.
이강은 화로 곁으로 다가앉으며 책을 들여다보았다. 종이는 누렇게 삭았고, 몇 군데는 물에 젖었다 마른 흔적이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사막이요?"
이강이 물었다.
박도철의 눈빛이 아주 짧게 어두워졌다. 화로의 불빛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내 왼팔을 거기서 잃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장작 타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이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저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계산을 이어가고 있었다.
'왼팔을 잃을 정도의 곳이라면... 이 시대 기준으로도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니겠지. 헌데 저 표정, 그저 두려움만은 아니로군.'
"...그런데 어째선지, 요즘 자꾸 그곳이 생각나는구나."
박도철이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손끝이 종이 위를 훑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뜻을 담고 있는지, 그때의 이강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다.
화로의 불빛이 흔들리며, 책장에 그려진 낯선 지형도 위로 붉은 그림자를 던졌다. 지도 한쪽 귀퉁이에는 붉은 먹으로 무언가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강의 시선이 그 위에 잠시 머물렀다.
'저건...'
박도철은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표지를 다시 덮었다. 그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