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며칠이 지나자 이강의 몸은 조금씩 기운을 되찾았다.
처음 이 오두막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던 몸이었다. 갈비뼈 아래가 늘 뻐근하게 저려왔고, 숨을 크게 들이켜면 옆구리가 뜨끔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마당까지 걸어 나가 볕을 쬐는 것도 가능해졌다.
박도철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매일 아침 감자와 삶은 고기를 챙겨주었고, 저녁이면 화로 옆에 앉아 별말 없이 시간을 보냈다.
찐 감자 냄새가 오두막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아침이면, 박도철은 뜨거운 감자 껍질을 손끝으로 슥슥 벗겨 이강 앞에 놓아주었다.
"먹어라."
늘 그 한마디뿐이었다.
이강은 그것을 받아 조그맣게 베어 물며, '이 사내, 은근히 다정한 종자로군.'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겉으로는 그저 밥을 얻어먹는 어린아이처럼 굴었지만, 속으로는 박도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
걸음걸이, 손짓, 물건을 다루는 방식. 하나같이 절제되어 있었다.
장작을 팰 때도, 도끼를 내려찍는 각도가 늘 일정했다. 손목을 비틀거나 힘을 헛되이 쓰는 법이 없었다. 물을 길어 올 때도 항아리를 든 어깨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오래도록 몸에 새겨진 습관처럼, 모든 동작이 낭비 없이 이어졌다.
'저 걸음걸이, 저 손놀림... 예사 촌부가 아니야.'
이강은 확신했다. 박도철은 한때 상당한 실력을 지녔던 자였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왜 이런 산골 오두막에 처박혀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구나.'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강은 그저 아이처럼 감자를 오물거리며 눈만 굴렸다.
어느 오후, 이강은 마당 한켠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놀이 삼아 휘둘러 보았다.
전생의 기억 속, 검을 잡은 적은 없었으나 죽는 순간 검 '잔'과 함께 흘러들어온 무언가가 있었다. 《잔검결》이라 부르는, 구결과 초식이 담긴 기이한 지식이었다.
'몸은 어린아이의 것이나, 그 안에 새겨진 궤적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이강은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가만히 무게를 가늠했다. 어린 손목에 비해 나뭇가지는 제법 굵었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궤적이었다.
휭—
나뭇가지가 허공을 갈랐다.
엉성했지만, 궤적만큼은 이상하게 정교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강은 잔검결의 기초 초식을 하나씩 되짚으며 나뭇가지를 놀렸다. 몸은 삐걱거렸지만, 그 삐걱거림 속에서도 검로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마당 구석에서 지켜보던 박도철의 눈빛이 순간 굳었다.
'...저 동작.'
박도철은 아무 말 없이 다가가지 않았다. 다만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장작을 패던 손을 멈춘 채, 그는 도끼를 든 손을 슬며시 내렸다. 눈은 이강의 나뭇가지 끝을 좇고 있었다.
'저 나이에, 저런 궤적을 그리다니.'
박도철의 뒷목이 뻐근해졌다. 그는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잘못 본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는 듯.
이강은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그저 아이처럼 나뭇가지를 흔들며 웃었다.
"아저씨! 저 검사예요! 짱 세죠?"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순진한 척, 자랑하듯이. 목소리도 한 톤 높여 아이 특유의 앙증맞은 억양을 섞었다.
박도철은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 세다."
그 말투는 무심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나뭇가지의 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저 사내, 벌써 눈치챈 것인가. 아니, 아직은 반신반의겠지.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
이강은 나뭇가지를 어깨에 척 걸치고는, 태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날 밤, 이강은 다시 잠든 척 누워 있었다.
박도철이 오두막 밖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나무 다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도끼도 아니고 낫도 아닌, 작은 칼로 정교하게 깎아내는 소리였다.
'저 소리, 목검을 다듬는 소리로군.'
이강은 눈을 감은 채 귀만 열어두고 그 소리를 새겼다. 소리의 간격, 힘의 세기, 손목의 회전까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이 사내, 손에 익은 물건인 게로다.'
다음 날 아침, 박도철은 나무를 다듬어 만든 목검 두 자루를 마당에 세워두고 있었다.
"일어나라."
이강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깬 척, 눈두덩이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
"아저씨, 이게 뭐예요?"
"놀이다."
박도철이 목검 하나를 던졌다. 이강이 얼떨결에 받았다.
목검은 생각보다 가벼웠지만, 손에 쥐는 순간 감이 왔다. 균형이 완벽했다. 무게중심이 손잡이 바로 위에 실려 있어, 웬만한 명공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다듬기 힘든 물건이었다.
'허, 이 정도 물건을 하룻밤 사이에 다듬다니. 손끝의 감각이 죽지 않았구나.'
"이걸로 나랑 싸워보자. 이긴 사람이 오늘 저녁 감자 두 배로 먹는다."
'허, 놀이로 위장했군. 이 사내, 눈치가 빨라.'
이강은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겉으로는 신난 표정을 지었다.
"진짜요? 좋아요!"
두 팔을 번쩍 들며 목검을 흔들었다. 그 몸짓이 어찌나 순진해 보였는지, 박도철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첫 대결은 어이없이 짧게 끝났다. 박도철이 가볍게 목검을 휘두르자 이강의 목검이 튕겨 나갔다.
딱—!
"아야!"
일부러 크게 소리를 냈다. 손목이 아픈 척, 손을 흔들며 주저앉기까지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정확히 계산하고 있었다.
'저 힘의 방향, 저 손목의 회전... 잔검결의 삼식 중 하나와 궤적이 겹친다.'
박도철이 그런 이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미묘한 의심과, 그보다 더 미묘한 흥미가 섞여 있었다.
"...한 번 더 해봐라."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대결은 계속되었다.
두 번째에서는 목검이 손에서 빠져나갔고, 세 번째에서는 이강이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네 번째에서는 목검 끝이 이강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이강은 매번 지는 척했지만, 매번 조금씩 반응 속도를 늘렸다. 너무 빠르게 실력이 오르면 의심을 살 테니, 아주 조금씩.
'조급하면 안 된다. 서두르면 정체가 드러난다. 하루에 반보씩만 나아가야지.'
이강은 밤마다 화로 앞에서 잔검결의 초식을 속으로 되짚었다. 몸이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전생의 기억이 아무리 정교해도, 지금의 몸은 갓 여덟 살 남짓한 아이의 것이었다. 근육이 기억을 따라가지 못하면 소용없었다.
'서두르지 말자. 이 조그마한 몸뚱이가 먼저 익숙해져야지.'
일주일이 지나자, 이강은 목검으로 박도철의 옷깃을 스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챙—
목검 끝이 박도철의 소매를 아슬아슬하게 긁고 지나갔다. 그 순간 박도철의 발이 반보 물러섰다.
박도철의 표정이 처음으로 살짝 흔들렸다.
"...너, 원래 검을 배운 적 있느냐?"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이 배어 있었다.
이강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아저씨 보고 따라한 거예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박도철은 잠시 이강을 바라보다가, 짧게 웃었다.
"...재주가 좋구나."
그 웃음은 진심이었다. 오랜만에 짓는 웃음이었는지, 입가의 주름이 낯설게 접혔다.
'재주가 좋은 게 아니라 재앙이지. 본좌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지 알면 뒤로 넘어갈지고.'
속으로 자조하며, 이강은 그저 배시시 웃었다.
그날 저녁, 화로 앞에서 박도철이 오랜만에 먼저 입을 열었다.
화로 속 장작이 타들어가며 탁, 탁 소리를 냈다. 불빛이 박도철의 얼굴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불씨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강아."
"네?"
이강은 화로 옆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돌렸다. 불빛에 비친 박도철의 눈이 유난히 깊어 보였다.
"...너 같은 아이는 처음 봤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이 무거웠다.
이강은 순간 숨을 죽였다.
'설마 여기서 들키는 것인가.'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온갖 계산이 오갔다.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하지만 박도철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화로의 불을 뒤적이며 중얼거렸다.
"...가르쳐볼 만하겠어."
불씨가 튀어 오르며 오두막 안을 잠시 밝혔다가 다시 잦아들었다.
그 한마디가, 앞으로의 오년을 결정짓는 말이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다음 날부터 박도철은 매일 아침 목검을 들고 나왔다.
'놀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진짜 훈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강은 아침마다 목검을 받아 들며 속으로 웃었다. '이 사내, 제법 신중하구나. 하나 신중한 만큼, 본좌도 신중하게 굴어야겠지.' 겉으로는 여전히 감자 두 배를 노리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지만, 속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오랜 세월의 계획을 이미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의 끝에서, 박도철이라는 사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도 마침내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