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 존재는 회백색 피부의 하수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몸에 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팔뚝에서 시작해 어깨를 타고 목덜미까지 이어지는 문양이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붓으로 그려 넣은 것처럼 정교했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람의 것과 비슷한 붉은 눈이 박혀 있었다.
그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마주쳤던 것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초점 없이 흐릿하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 그런데 저것의 눈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감정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했지만, 적어도 '의도'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건, 단순한 하수인이 아닙니다."
취란이 검을 고쳐 쥐며 낮게 내뱉었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제법 지능을 갖춘 개체입니다. 저런 것들은 흔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흔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저것 하나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백여 개체보다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취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그것이 입을 열었다.
인간의 언어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뒤틀린 발음이었다. 마치 사람의 성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억지로 소리를 흉내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향(香)이 있다. 백환의… 향이."
그것의 시선이 정확히 내 손을 향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백환. 그 이름이 저것의 입에서 나온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저것이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취란이 나를 등 뒤로 감싸며 앞으로 나섰다.
"도련님을 데리고 물러나겠습니다. 놈이 흥미를 잃기 전에."
그녀의 검이 나와 그것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순간, 저택 뒤편에서 새로운 인기척이 다가왔다.
발소리가 여러 개였다. 급하게, 그러나 흐트러지지 않은 걸음이었다.
"이쪽입니다!"
무사 몇이 무기를 든 채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선두에 선 것은 낯익은 갑주 차림의 사내였다.
우문 할아범이었다.
그의 검에는 이미 검은 액체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소맷자락 한쪽이 찢겨 나가 있었고, 그 아래로 드러난 팔에는 얕은 상처가 여러 줄 그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걱정부터 앞섰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이 개체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평소의 온화한 노인의 어조가 아니었다.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달랐다. 저택에서 늘 나에게 붓글씨를 가르치던, 그 느긋하고 다정한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도련님과 취란은 저택 안쪽으로."
"할아범 혼자서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묻어 두었던 것을 꺼낼 때가 왔을 뿐입니다."
그는 짧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알 수 없는 여유가 담겨 있었다. 지금 마당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혹은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취란이 나를 붙잡은 채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우문 할아범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금빛 문양의 하수인이 먼저 움직였다.
속도가 방금 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바닥을 박차는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것이 있던 자리에서 사라지고, 다음 순간 우문 할아범의 코앞에 나타나 있었다.
파공음이 공기를 갈랐다.
우문 할아범이 몸을 낮추며 그 궤적을 피했다.
동시에 검을 아래에서 위로 그어 올렸다.
챙!
두 개체의 무기가 부딪혔다.
불꽃이 튀었다.
나는 그 광경을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우문 할아범의 검로는 결코 노인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간결하고, 정확하고, 무엇보다 아주 오랜 세월 갈고 닦은 흔적이 느껴졌다. 한 동작 한 동작이 낭비 없이 다음 동작으로 이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 있던 것처럼.
"…할아범이 저런 실력이…"
취란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침착함을 잃지 않던 그녀의 눈이 커져 있었다.
하수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두 바퀴 굴렀다가 곧바로 일어섰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잠시 균형을 잃었을 뿐이었다.
곧바로 재차 달려들었지만, 우문 할아범의 검이 그 팔을 잘라냈다.
잘려 나간 팔이 마당 흙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잠시 꿈틀거리다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비명 같은 것이 그것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인간의 비명과는 달랐다. 낮고 긴, 어딘가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였다.
"…황(黃)의 이름으로… 반드시 되돌아온다."
그 말을 남기고, 하수인은 검은 안개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마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방금까지 이어지던 파공음과 쇠붙이 부딫는 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오직 무거운 침묵만이 남았다.
우문 할아범이 검을 거두며 숨을 몰아쉬었다.
"…예전 같지 않군."
그가 낮게 내뱉었다. 나이가 든 몸이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는다는 뜻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범, 방금 그것이 한 말은…"
"황이라는 이름을 남긴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가 처음으로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붓글씨를 가르칠 때의 온화함도, 저택 이곳저곳을 살피며 짓던 여유로운 미소도 없었다. 그저 노회한 무인의 얼굴이 있을 뿐이었다.
"이건 단순한 재앙이 아닐 겁니다. 배후가 있습니다."
그 말이 마당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취란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배후. 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하수인들이 그저 우연히 나타난 재앙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 순간, 성벽 방향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마침내 황수를 밀어낸 모양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은 분명 승리의 소리였다. 병사들의 함성, 무기를 두드리는 소리, 안도의 외침들.
하지만 그 승리조차, 지금 나에게는 온전히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쓰러뜨린 하수인의 시체가 남긴 검은 액체.
그것이 마당 흙바닥 위에서, 이상하게 붉은 기운을 머금은 채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우문 할아범도 그것을 발견한 듯 시선을 내렸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것은."
그가 무릎을 꿇고 그 액체 가까이 손을 뻗었다. 손끝이 액체에 닿기 직전, 그가 멈췄다.
"도련님.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낮아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저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단순히 하수인 몇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