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현선학원 입학시험장.
하늘을 찌를 듯한 백색 전각이 시험장 정면에 우뚝 솟아 있었다.
지붕 끝마다 새겨진 신명의 문양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전각을 둘러싼 담장에는 오래된 백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데도 이끼 한 점 없었다. 영기(靈氣)가 서린 곳은 잡것이 붙지 못한다더니, 과연 그 말대로였다.
시험장 앞뜰에는 수백 명의 소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저마다의 표정이 달랐다. 어떤 이는 자신만만하게 턱을 치켜들었고, 어떤 이는 손끝을 떨며 옆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부모의 등에 업혀 온 흔적이 남은 아이도 있었고, 홀로 걸어온 듯 신발 밑창이 다 닳은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 행렬의 맨 끝자락에 섰다.
다리가 가늘게 후들거렸다. 숨소리도 힘겹게 내쉬었다.
전부 연기였다.
8년이었다. 8년 동안 이 몸짓을 반복해왔다.
숨을 얕게, 걸음을 느리게, 어깨를 움츠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병약한 아이의 걸음걸이. 병약한 아이의 숨소리. 병약한 아이의 눈빛.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였다.
"저기 봐, 또 저놈이야."
뒤쪽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았다.
조현이었다.
비단옷 위에 수놓인 금실 문양. 반듯하게 세운 어깨. 자신만만한 눈빛.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황민재가 서 있었다.
"병약이가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왔대? 걷다가 쓰러지겠는데."
황민재가 큰 소리로 비웃었다.
주변의 몇몇이 따라 웃었다.
조현이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값어치 없는 물건을 보듯 하는 눈빛이었다.
"저런 몸으로 체환진 위에 서봐야 뭐가 나오겠어. 淬體(취체) 일중이나 나오면 다행이지."
"맞아, 맞아. 괜히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물러나지."
두 사람의 말투에는 조롱과 여유가 뒤섞여 있었다. 8년 동안 익숙해진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귀에 거슬렸지만, 이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같았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른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을 뿐이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의부님의 약값. 그리고 천원단.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 관문을 넘어야 했다.
의부님의 기침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밤마다 등을 두드려 드릴 때마다 느껴지던 그 야윈 등뼈의 감촉도 함께 떠올랐다. 시간이 없었다. 천원단이 아니고서는 그 병을 멈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여기서 실패할 수는 없었다.
시험장 안으로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선 아이들의 뒷모습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몇몇은 이미 다리를 후들거리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로 겁을 먹은 얼굴들이었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감독관 한 명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눈빛만은 젊은이 못지않게 형형했다.
허리에는 낡았지만 정갈하게 손질된 장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손등에는 검흔인지 화상인지 모를 흉터가 여럿 남아 있었다. 세월을 겪은 무인 특유의 기색이 그에게서 배어 나왔다.
"오늘 시험은 간단하다."
감독관이 담담히 말했다.
"체환진(體環陣) 위에 서라. 그것으로 너희의 근골과 기맥, 그리고 체취(體聚) 단계를 가늠하겠다."
체환진은 시험장 중앙에 새겨진 거대한 원형 문양이었다.
은은한 청광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 진법 위에 서는 순간, 몸속에 숨긴 것까지 낱낱이 드러난다고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8년간 숨겨온 것이 여기서 밝혀질 수도 있었다.
가슴 한켠이 조여왔다. 만약 진법이 내 진짜 경지를 그대로 드러낸다면,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었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8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한 명씩 진 위에 올라섰다.
대부분은 淬體(취체) 오중, 육중 수준에서 빛이 잦아들었다.
그럴 때마다 감독관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선 서기가 죽간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평범한 아이들의 평범한 결과였다.
조현의 차례가 되자 진법이 밝게 타올랐다.
"淬體八重(취체팔중), 원만!"
감독관이 소리쳤다.
주변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현은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흥, 이 정도는 돼야지."
그가 나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비교해보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황민재도 뒤이어 칠중 언저리의 성취를 보였다.
둘은 나를 곁눈질하며 낮게 속삭였다.
"저 병약이 차례는 볼 것도 없겠지."
"쓰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둘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시험장 한켠을 채웠다. 몇몇 다른 아이들도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동정 반, 호기심 반이 섞인 눈빛이었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이서준."
걸음이 느렸다. 어깨를 움츠렸다.
연기의 연장선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끝에 힘을 빼고, 숨은 얕게. 8년 동안 다듬어 온 몸짓이 이 순간을 위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진 위에 올라서는 순간, 나는 짧게 숨을 골랐다.
8년 동안 냉천곡의 얼음물 속에서 다져온 것.
《진룡련체결》로 응축시킨 기운.
그것을 완전히 억눌러 왔다.
숨 한 번, 심장 박동 한 번까지 통제해온 나날이었다. 얼음물 속에서 뼈가 얼어붙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기맥을 다스렸다. 그 결과를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체환진은 인위적인 은닉을 파고드는 물건이었다.
진법의 청광이 발끝을 타고 서서히 차올랐다. 나는 억눌러 두었던 기맥을 더욱 깊이 눌러 내렸다.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순간, 억눌러 두었던 기맥이 진법의 청광에 반응했다.
파앗―
진법 전체가 새하얗게 폭발하듯 밝아졌다.
빛이 시험장 상공까지 치솟았다.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몇몇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시험장 전체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조현의 웃음소리도, 황민재의 속삭임도 뚝 끊겼다.
감독관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이럴 수가."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옆에 있던 서기의 손에서 죽간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도 그것을 줍지 않았다. 모든 시선이 진법 위, 나에게 쏠려 있었다.
"淬體八重(취체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