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종이 세 번 울렸다. 나는 이불도 없이 자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바닥은 흙바닥이나 마찬가지였고, 등허리가 배긴 자리마다 멍이 앉은 것처럼 뻐근했다. 익숙한 일이다.
몸을 일으키니 뼈마디가 하나씩 따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어깨를 돌리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요즘 들어 부쩍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열여덟인데 벌써 이러면 서른쯤엔 어떻게 되나 싶다가, 서른까지 살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라는 생각이 뒤따라왔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낫다. 아침부터 재수 없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한성은 이제 성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꼴이었다. 십 년 전 전쟁이 훑고 간 자리에 기근이 다시 덮쳤고, 남은 건 무너진 성벽과 굶주린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특별할 것 없는, 그냥 하나.
성벽은 반쯤 무너져 그 틈으로 개들이 드나들었다. 개들도 먹을 게 없어 뼈만 남은 몸으로 어슬렁거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정이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은 그래도 체면을 차리느라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이름은 이도현이다. 나이는 열여덟. 부모님은 삼 년 전 역병으로 돌아가셨다. 그 뒤로 나는 부모님이 남긴 반쯤 무너진 집에서 혼자 지냈다. 지붕의 반은 하늘이 보였고, 벽 한쪽은 나무판자로 덧대어 겨우 바람을 막았다. 그래도 잠은 잘 수 있었다. 그거면 됐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이 집도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이었다. 마당에 작은 텃밭이 있었고, 아버지는 저녁마다 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계셨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바느질을 하며 이웃집 옷을 손봐 주고 곡식 몇 줌을 받아오곤 했다.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게 지금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없어지면 집도 같이 죽는구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다시 해도 딱히 틀린 것 같지 않다.
"오늘도 사람 구하는 데 없수?"
인력시장 어귀에서 나는 나이 든 잡부에게 물었다. 그는 담뱃대를 물고 고개를 저었다.
"쌀가마 나르는 일이 있긴 한데, 벌써 열 명이나 몰렸어. 자네 순번은 한참 뒤일세."
됐다. 오늘도 허탕이다. 나는 뒤돌아섰다. 배 속에서 뭔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익숙해진다는 게 무서운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인력시장에는 나 같은 놈들이 줄을 서 있었다. 팔뚝이 굵은 놈들이 먼저 뽑혀 나갔고, 나처럼 마른 체구는 뒷줄로 밀렸다. 힘이 없으면 밥도 없다. 그게 이 바닥 법칙이었다. 옆에 서 있던 사내 하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러다 다 굶어 죽겠구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자리를 떴다. 대꾸할 기운도 아까웠다.
하루 종일 성 안을 돌아다녔다. 땔감을 주워 팔 곳이 있는지, 남은 물건을 받아줄 전당포가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전당포 주인은 내 얼굴만 보고도 손을 저었다. "또 왔나. 팔 게 있으면 가져오고, 없으면 그냥 가시게." 나는 팔 게 없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문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땔감 장수는 요즘 나무 값이 똥값이라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성 안 어디를 돌아도 사정은 비슷했다. 다들 자기 살기가 급해서, 남의 사정 봐줄 여유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처지가 바뀌었다면.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집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그 폐가로.
돌아오는 길에 저잣거리를 지났다. 문 닫은 가게들 사이로 국밥집 하나가 아직 불을 켜고 있었다. 김이 올라오는 냄비에서 나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배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냄새를 오래 맡아봐야 좋을 게 없다. 배는 더 고파질 뿐이고, 주머니는 그대로다.
집 앞에 도착하니 마당에 잡초가 무성했다. 언제 뽑았는지 기억도 안 났다. 뽑아봐야 또 자랄 것들이었다. 그런 데 쓸 힘이 있으면 다른 데 쓰는 게 나았다.
마루 밑에는 아버지가 쓰던 궤짝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열어봐야 뭐가 나오겠나 싶었다. 팔 만한 게 있었다면 진작에 팔았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손이 그쪽으로 갔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오늘따라 발이 마루 밑으로 향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더니, 그 궤짝 안에 뭐라도 있을 것 같은 헛된 기대가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심심했던 걸지도. 배가 고프면 이상한 짓도 하게 된다.
궤짝은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니 뽀얀 먼지가 뭉텅 떨어졌다. 콜록. 기침이 절로 나왔다. 3년이면 먼지도 제법 쌓이는 모양이다.
끼익. 끼이익.
궤짝 뚜껑이 낡은 경첩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는 곰팡이 냄새가 밴 헌 옷가지 몇 벌과, 녹슨 호미 하나,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낡은 책 한 권이 있었다.
옷가지는 손을 대자마자 부스러질 것처럼 삭아 있었다. 어머니가 입으셨던 저고리인 것 같았는데, 색이 다 바래서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도 짐작이 안 갔다. 호미는 녹이 심해서 날이 제 구실을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팔면 몇 푼이라도 받을 수 있으려나. 나는 호미를 옆에 빼두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 가죽으로 된 표지는 물에 젖었다 마른 흔적으로 우글쭈글했다. 아버지 유품인가 싶었는데, 아버지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기억은 없다. 표지를 넘겨보니 첫 장에 낯선 필체로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記日
일기라는 뜻일 텐데,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흔한 오기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머지 장을 넘겨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한 글자도 없었다.
필체도 아버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 글씨는 투박하고 힘이 없었는데, 이 두 글자는 마치 붓끝에 날이 서 있는 것처럼 예리했다. 그렇다고 어머니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글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럼 누구 것인가. 궤짝은 원래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들었으니, 그 위 조상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물건이라면 종이가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이걸 팔면 얼마나 받을까. 종이 값이나 나올까 싶었지만, 낡은 가죽 표지가 그럭저럭 값이 나갈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일단 봇짐 속에 챙겨 넣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옷가지는 다시 궤짝에 넣어두고, 호미와 책만 챙겼다. 궤짝 뚜껑을 닫으려는데 손이 미끄러져 손가락을 찧었다. 욱. 소리도 못 내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별거 아닌 통증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요즘 몸이 약해진 게 체감이 됐다. 예전엔 이런 걸로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그날 밤, 나는 호롱불도 없이 어둠 속에서 그 책을 다시 꺼내 만졌다. 종이는 얇고 거칠었다. 표지 안쪽에 무언가 더 있는지 손끝으로 더듬었다.
기름 살 돈도 없어서 호롱불은 며칠 전부터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손끝으로 더듬는 게 요즘 내 유일한 감각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손으로 만지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적어도 손끝은 배가 고프다고 헛것을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표지 안쪽은 매끈했다. 다른 데 숨긴 종이나 접힌 자국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가죽일 뿐이었다. 나는 헛수고를 했다고 생각하며 책을 다시 덮으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아까는 텅 비어 있던 페이지 한 귀퉁이에,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흐릿한 무언가가 보였다. 글자인지 얼룩인지 구분이 안 됐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다시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나는 책을 눈앞 바짝 가까이 대고 다시 들여다봤다. 종이는 그저 종이였다. 얼룩도 없고, 글자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본 게 뭐였을까. 나는 손으로 종이를 쓸어봤다. 매끈했다. 아무 요철도 없었다.
헛것을 봤나 보다. 요즘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가 싶었다. 굶으면 눈에 헛것이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나는 책을 봇짐 깊숙이 밀어넣고 자리에 누웠다.
옆집 담벼락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다가 그쳤다. 어디선가 바람이 들어와 벽에 덧댄 나무판자를 흔들었다. 덜그럭. 덜그럭. 익숙한 소리였다. 매일 밤 듣는 소리인데도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그 흐릿한 자국이 눈앞에 계속 어른거렸다.
몇 번이나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배 속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등은 여전히 흙바닥에 배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고픔보다 그 흐릿한 자국이 더 신경 쓰였다. 사람이 굶으면 헛것을 본다는 건 나도 몇 번 겪어본 일이었다. 지난겨울, 사흘을 굶었을 때는 죽은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계신 것처럼 보인 적도 있었다. 그건 그냥 지쳐서 눈이 만들어낸 그림자였다. 이번에도 그런 걸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손끝이 자꾸 봇짐 쪽으로 향했다.
결국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봇짐을 열었다. 책을 꺼내 어둠 속에서 표지를 만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 페이지를 넘겨봤다. 텅 비어 있었다. 흐릿한 자국도, 얼룩도, 아무것도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진짜 헛것을 본 모양이다. 나는 책을 다시 넣고 자리에 누웠다. 이번엔 눈을 뜨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이상한 걸 봤어도, 잠은 자야 내일 또 인력시장에 나갈 수 있었다. 오늘 못 구한 일을 내일은 구해야 했다. 그래야 밥을 먹는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눈을 감았는데, 어둠 속에서 뭔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사각. 사각.
종이 넘기는 소리였다. 봇짐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