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숲은 조용했다. 지나치게 조용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그게 그냥 숲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나무는 크고 굵었다. 햇빛이 잎사귀 사이로 듬성듬성 떨어지는데도 이상하게 숲 안은 서늘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잎이 가끔 저 혼자 흔들렸다. 그런 걸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사람이 못 견딘다. 그래서 안 신경 쓰기로 했다.
"독각광사가 정확히 뭡니까?"
걸으면서 물었다. 도윤이라는 남자, 정확히는 박도윤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후였다. 여자는 박서은이라고 했다. 둘은 박씨 가문 소속이라고 짧게 소개했는데, 그 가문이 뭔지는 아직 감이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마수 쪽이 더 급했다.
"뿔 하나 달린 광폭한 사슴 마수요. 개별로는 사람 한둘 정도만 상대하는 수준이라 크게 위험하지 않소."
서은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나쁘지 않은 정보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미묘한 걸림이 있었다.
"사람 한둘이면, 그 한둘이 저처럼 약한 사람인가요, 당신처럼 지팡이 휘두르는 사람인가요?"
"그런 걸 왜 구분해서 묻소."
"세상에 다 다르잖아요. 저는 검도 없고 마법도 못 씁니다."
"...당신한텐 그 안에 든 게 있잖소."
서은이 내 배 쪽에 슬쩍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그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근데 이번 의뢰서엔 세 마리라고 적혀 있었는데."
"세 마리가 뭉쳐 있어도 각개로 상대하면 어렵지 않소. 마수들은 잘 협동하지 않으니."
도윤이 검을 어깨에 걸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자신감이 자꾸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어차피 천빙정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협동을 안 한다는 게 확실합니까?"
"독각광사는 원래 단독 생활 개체요. 세 마리가 같이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거지, 그렇다고 서로 도와가며 싸우진 않소."
"그럼 왜 세 마리가 같이 있는 겁니까?"
"그건... 모르겠소. 영역 다툼 중이거나, 먹이가 몰려있거나."
말투에 확신이 없었다. 확신 없는 전문가의 설명이란 게 딱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값은 비싼데 보증은 안 되는 물건 같은.
'긴장 좀 해라.'
뱃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 때문에?"
'냄새가 안 좋다.'
냄새라니. 이놈이 이런 말투를 쓸 때는 대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놈이 냄새가 안 좋다고 말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결과는 예외 없이 나빴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뭐가 안 좋은데."
'말로 못한다. 그냥... 뭔가 썩은 게 아니라 뭔가 잘못 자란 냄새다.'
그게 무슨 설명이야, 라고 쏘아붙이려는데 서은이 걸음을 멈췄다. 나무 사이로 이상한 흔적이 보였다.
나무껍질이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사람 키 높이보다 한참 위쪽까지, 마치 누가 손톱으로 긁어낸 것처럼 나뭇결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바닥에는 뭔가에 짓눌린 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는데, 발자국이라기엔 너무 크고 깊었다. 웅덩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깊이였다.
서은이 그 자국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무릎을 굽혀 자국 안쪽을 손으로 짚어보고는 표정이 딱딱해졌다.
"...이건 독각광사 발자국이 아니오."
"그럼 뭡니까?"
"모르겠소. 이렇게 깊은 자국을 낼 수 있는 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순간 숲 저편에서 낮게 울리는 포효가 들려왔다. 땅이 살짝 흔들렸다. 발밑으로 진동이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는데, 그 감각이 묘하게 익숙했다. 예전에 큰 트럭이 옆을 지나갈 때 느끼던 그 진동과 비슷했다. 다만 트럭은 저렇게 살아있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저, 저게 뭐야..."
도윤이 검을 고쳐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무 사이에서 나타난 건 사슴 형태의 마수였는데, 크기가 문제였다. 내가 상상한 게 개 정도 크기였다면 실물은 코끼리만 했다. 뿔은 창처럼 날카로웠고, 눈에서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에서 흰 김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김에서 이상하게 쇠 냄새가 났다.
그런 게 세 마리, 나란히 서 있었다.
"위험도 낮음이라고 했잖아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이런 크기의 독각광사는 원래 개체가 아니오. 뭔가 잘못됐소."
"잘못됐다니, 지금 알아서 뭐 해요!"
도윤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순간 저 남자가 검을 쥔 손이 떨리고 있는 걸 봤다. 그 손 떠는 걸 보고 나서야 이게 진짜 위기라는 게 실감이 났다. 검을 잡은 사람이 떨면 그건 진짜다.
세 마리 중 하나가 그대로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땅이 발굽에 짓눌릴 때마다 쿵, 쿵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뱃속이 울렸다.
서은이 지팡이를 들어 냉기 마법을 펼쳤다. 얼음 창이 여러 개 생겨 짐승의 다리를 노렸지만, 짐승은 그걸 그냥 뚫고 들어왔다. 얼음이 살갗에 박히는 게 아니라 그냥 부서져 흩어졌다. 마치 유리창에 눈덩이를 던진 것 같았다.
서은이 급히 몸을 피했지만 옷자락이 뿔에 걸려 찢어졌다. 찢어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으윽...!"
도윤이 누나를 감싸며 검을 휘둘렀지만, 짐승의 앞발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몸이 나무에 부딪치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나무껍질이 부서져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도윤이 바닥에 쓰러졌다.
"도윤아!"
서은이 남동생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남은 두 마리가 그녀를 둘러쌌다. 도망칠 틈이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세 마리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서은이 어느 방향으로 도망갈 수 있는지, 그리고 도윤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를 재빠르게 셈했다.
지금 뛰어들면 나도 위험할 수 있다. 저 뿔에 한 번만 제대로 받히면 나도 도윤처럼 나무에 처박힐 거다. 하지만 저 둘이 여기서 죽으면 내가 오만 금화를 받을 명분도 사라진다. 아니, 그것보다.
그것보다 그냥, 저 여자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나중에 따로 붙이기로 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제야 좀 재밌어지는구나.'
천빙정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는데, 그게 짐승 때문인지 뱃속 놈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둘 다였을 거다.
그 순간 손끝에서 냉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려서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나는 그대로 짐승 하나의 뿔을 손으로 붙잡았다. 뿔은 차갑고 단단했는데, 잡은 순간 손바닥이 얼어붙는 것 같은 통증이 지나갔다.
쩌엉, 소리가 났다. 얼음이 짐승의 몸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짐승의 가죽 위로 서리가 낀 것처럼 하얗게 덮이더니, 그 서리가 순식간에 몸 전체를 감쌌다. 짐승이 발버둥 쳤다.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얼어붙은 관절은 꺾이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완전히 굳어버렸다.
거대한 얼음 조각상 같은 게 서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손이 얼얼했다. 이게 성공했다는 게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서은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당신, 지금..."
말을 끝맺을 틈이 없었다. 남은 짐승이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뿔 끝이 정확히 내 가슴을 향해 있었고, 그 속도는 방금 얼려버린 놈보다 훨씬 빨랐다.
피할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