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가문 소집 행사가 열리는 날, 본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나는 계속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손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는 게, 반년 전과 가장 달라진 부분이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길이 스쳐 지나갔다.
반년 전, 이 길을 지나 청류성으로 쫓겨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긴장돼?" 옆자리에 앉은 윤채린이 물었다.
"...조금." 나는 짧게 대답했다.
"티 나. 손가락 그렇게 만지지 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박덕수가 마부석에서 고개만 돌려 나를 살폈다.
"도련님, 그냥 얌전히 계시다가 돌아오시면 됩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괜히 나서지도 마시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시 그 대전의 공기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얹혀 있었다.
'괜찮아. 그냥 서 있다가 오면 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말 걸어도 짧게 대답하고, 눈 마주치지 말고.'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심장도 같이 덜컹거렸다.
본가에 도착하자, 마당에는 이미 수십 명의 방계 자제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저마다의 수련 성과를 자랑하듯 서 있었다.
누군가는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끝에 옅은 빛을 맴돌게 하며 주변의 감탄을 유도하고 있었다.
반년 전에는 나도 저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지금은 그 무리의 가장 바깥쪽,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윤성민이 서 있었다.
짙은 남색 도포에 금실로 가문 문양을 수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옥으로 장식된 검이 걸려 있었다.
옷 한 벌 값이 청류성 반년 치 식량 값과 맞먹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다들 주목." 원로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성민 공자의 검술 시범이 있겠다."
마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윤성민이 검을 뽑아 들자, 검신에서 옅은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3급 현원소를 완전히 다스리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원로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주변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윤성민이 몇 개의 초식을 펼치자, 검에서 뿜어진 빛이 마당의 돌바닥을 갈랐다.
쾅!
돌바닥이 갈라지는 소리에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몇몇은 뒷걸음질을 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검신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함께,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선들이 얽혀 있는 걸 발견했다.
검을 감싼 부호의 흐름이었다.
가늘고 촘촘하게 겹쳐진 선들이, 검신을 따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저건, 3급 정도의 흐름이 아니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훨씬 더 복잡해. 최소한 5급 이상은 되는 구조야.'
부호의 결이 겹치는 방식만 봐도, 저건 단순히 재능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 손을 대서 다듬어 놓은 흐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범이 끝난 뒤, 윤성민이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주변에 있던 방계 자제들이 슬쩍 몸을 비켜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도현이 왔구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청류성 생활은 어때?"
"...괜찮아." 나는 짧게 대답했다.
"다행이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손바닥이 어깨에 닿는 감촉이 묘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3년 뒤 성인식 대전, 기대하고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쳤다.
마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것 같았다.
"거기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들었어. 몸 상태는 좀 어때?"
"...버틸 만해." 나는 대답했다.
"버틸 만하다니, 다행이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미소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미소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때, 상단 자리에서 아버지, 윤천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당의 소란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오늘 모임의 목적은." 아버지가 좌중을 향해 말했다.
"가문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시선이 잠시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시선에는 아무런 온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낯선 손님을 보듯, 아버지는 나를 지나쳐 윤성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성민아."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오늘 시범,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윤성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그렇게나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낯설고도 서글펐다.
나도 한때는 저 자리에서 저 호칭을 쓸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시선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괜찮아.'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익숙해질 거야.'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관리인 한 명이 윤채린에게 다가갔다.
"윤채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주님 명이다. 오늘 이후로 청류성에서 남녀 유배자의 접촉을 제한한다."
윤채린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명 그대로다." 관리인이 짧게 대답했다.
"방을 따로 배정하고, 훈련 시간도 겹치지 않게 조정할 거다."
"식사 시간도 나뉜다. 훈련장 이용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윤채린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다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왜 갑자기 그런 명이 내려온 겁니까." 나는 나서서 물었다.
관리인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성가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패가자 둘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걸, 위에서 좋게 보지 않으신다." 그가 대답했다.
"더 물을 게 있느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온 지시인지, 나는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윤성민이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옅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마치 이 모든 걸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마, 이것도 성민이 손을 댄 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윤채린과 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이유가 결코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만이, 가슴 한쪽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