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몰락 적자의 설욕전

2화

3년 전, 초여름. 대전 앞마당에 하얀 천막이 세워졌다. 나는 다른 열두 명의 방계 아이들과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릎 아래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옆에 앉은 아이는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열세 살이 된 윤씨 세가의 자제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현원소 친화력 측정. 대전 중앙에는 은은한 빛을 뿜는 측정석이 놓여 있었고, 검은 도포를 입은 측정관이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손을 얹게 했다. 측정관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서안 위의 목간에 뭔가를 짧게 적었다. 내 앞의 아이가 손을 얹자 측정석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3급." 측정관이 짧게 외쳤다. 주변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3급이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뒤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속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3급이 저 정도면, 나는 몇 급이나 나올까.' '아버지도 저렇게 웃어주실까.' "윤도현." 측정관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측정석으로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손바닥을 돌 위에 얹었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색도, 빛도, 온기도 없었다. 나는 손을 좀 더 세게 눌러보았다. 여전히 돌은 그저 차가운 돌덩이일 뿐이었다. 측정관이 미간을 좁히며 돌을 다시 확인했다. "이상하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측정석을 두 번 더 확인하더니, 손끝으로 돌 표면을 몇 번이나 문질러보았다. 결국 고개를 들어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0급." 대전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0급이라는 말은 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측정관조차 당황한 얼굴로 옆에 있던 원로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원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측정석을 손수 짚어보고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상단 자리에 앉아 있던 아버지, 윤천호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린 걸 보고서야, 뭔가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짐작했다. '저게 나쁜 숫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들 나를 저렇게 쳐다보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천막 밖으로 나가는 길, 아이들 몇몇이 나를 힐끔거리며 지나쳤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며칠 후.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인 사랑채에서, 나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사랑채 안에는 숙부들과 원로 몇 명이 좌우로 늘어앉아 있었다. 아무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서안 앞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았다. 서안 위에는 내 이름이 적힌 목간이 놓여 있었다. "현원소 친화력 0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수치다." 아버지가 낮게 말했다. "수련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이 말라 침을 삼켰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런 자를 가주가 될 자리에 둘 수는 없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옆에 서 있던 소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윤성민이었다. 그는 숙부의 아들이었고,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평소에도 나보다 어른들 앞에서 예를 갖추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아이였다. "성민을 의형으로 입적한다."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성민이 가문의 후계자다." 좌중에서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기분이었다. '후계자.' '그 말이 원래는 내 자리였는데.' "그리고 너는." 아버지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청류성으로 간다." 청류성이라는 이름을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패가자들이 가는 곳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3년이다. 그곳에서 지내라." 3년. 그 숫자가 귓속에서 오래도록 맴돌았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서안 위의 목간을 손끝으로 밀어놓으며 다음 안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이 자리에서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임을 깨달았다. 사랑채를 나오는 길, 윤성민이 뒤따라 나오며 내 곁에 붙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평소보다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형, 아니, 도현아." 그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괜찮아." 나는 짧게 대답했다. "3년 뒤에 다시 보자." 윤성민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때는 나도 성인식을 치를 테니까, 정정당당하게 겨뤄볼 기회가 있겠지."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이미 승부가 끝난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그날 처음 보았고,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린 손을 거두며 먼저 앞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 방으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 집을 나서는 마차 앞에 낡은 마부복을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박덕수였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우리 집안을 섬긴 종자였다. 그의 마부복은 소매 끝이 해져 실밥이 드러나 있었다. "도련님." 그가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먼 길이니 마차에 오르시지요." 나는 짐이라 부를 것도 없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마차에 올랐다. 보따리 안에는 옷가지 몇 벌과, 어머니가 남긴 수정 구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수정 구슬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 손에 직접 쥐여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잠시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가, 다시 보따리 깊숙이 넣었다. 마차가 출발하고, 나는 창밖으로 멀어지는 본가의 지붕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기와의 색이 점점 흐려지다가 이내 나무들 사이로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돌아온다면, 어떻게 돌아와야 할까.' '3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박덕수는 마부석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고삐를 고쳐 잡을 때마다 마차가 작게 흔들렸다. 청류성은 사흘을 달려서야 도착했다. 첫날과 둘째 날은 관도를 따라 달렸지만, 셋째 날부터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험해졌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몇 번이나 덜컹거렸다. 성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곳은 낡은 목책과 허물어진 담장으로 둘러싸인 훈련장에 불과했다. 마당 한쪽에는 녹슨 병장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고, 건물 지붕에는 깨진 기와 사이로 잡초가 자라 있었다. 담장 한 귀퉁이는 아예 무너져 나무판자로 대충 막아놓은 상태였다. 마차에서 내리자, 백발의 노인 하나가 다가왔다. 청류성의 관리인이었다. "윤도현이구나." 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패가자가 오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명문가 적자가 오는 건 드물지." 그의 목소리에는 동정도 반가움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확인하는 말투였다. "이쪽으로 와라." 관리인이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박덕수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박덕수는 내 보따리를 대신 들어주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직접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당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새로 왔어요?" 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낡은 무명 저고리를 입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마당에 서 있었다. 소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경계도 관심도 아닌,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무심함이 섞여 있었다. 그 소녀가 바로 윤채린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낯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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