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청류성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관리인은 나를 마당 한쪽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두 평 남짓했고, 벽에는 곰팡이가 얼룩덜룩 피어 있었다.
바닥은 흙을 다져 굳힌 것이라 발을 디딜 때마다 서늘한 냉기가 올라왔다.
짚으로 짠 이불 하나와 나무 상자 하나가 유일한 세간이었다.
창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하나 뚫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방 안을 다 채우지도 못했다.
"여기서 지내라." 관리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내 얼굴을 오래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가 나가고 나서, 나는 나무 상자 위에 어머니의 수정 구슬을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구슬은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그 구슬을 손끝으로 몇 번 쓸어보다가, 짚 이불 위에 몸을 눕혔다.
이불은 얇아서 등에 닿는 흙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여기가 이제 내 집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서 물을 긷다가, 나는 다시 그 소녀와 마주쳤다.
물동이는 내 팔뚝만 한 크기였는데, 물을 가득 채우니 두 손으로 겨우 들어 올릴 정도의 무게였다.
"너, 이름이 뭐야?" 그녀가 먼저 물었다.
"...윤도현." 나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윤채린이야."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온 지 2년 됐어."
그녀는 나보다 한 뼘쯘 작았고, 옷은 여러 번 기운 자국이 있는 무명천이었다.
"...너도, 패가자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화력이 낮게 나왔어."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1급 밑으로 떨어지면 여기로 보내거든. 방계라서 더 쉽게 버려졌지."
그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나는 그 안에 오래 삭인 억울함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밥은 먹었어?" 그녀가 물었다.
"아직." 내가 대답했다.
"따라와." 그녀가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물동이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익숙한 듯 빨랐고, 나는 몇 번이나 물을 흘리며 따라가야 했다.
그날부터 나는 윤채린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청류성의 식사는 하루 두 끼, 잡곡밥과 소금국이 전부였다.
밥그릇은 이가 빠진 자기 그릇이었고, 국그릇은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그마저도 관리인의 눈치를 보며 순서대로 배급받아야 했다.
배급 줄은 늘 길었고, 늦게 서면 국 위에 뜬 기름기 없는 멀건 국물만 남았다.
윤채린은 그 안에서도 요령을 알고 있었다.
"국이 식으면 관리인이 안 봐. 그때 몫을 좀 더 받을 수 있어." 그녀가 귀엣말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밥은 항상 바닥 쪽이 더 꽉 눌려 있어서 양이 많아." 그녀가 덧붙였다.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며, 청류성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열두 명 몫을 나눠 먹는데, 국자 한 번에 반 그릇이 채 안 되는구나.'
나는 배급 줄에 서서 그렇게 속으로 계산하곤 했다.
한 달 후.
밤이 깊은 시각, 나는 마당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낮은 신음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가니, 헛간 뒤편에서 윤채린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청류성 감독을 맡은 무사 하나가 서 있었다.
무사는 허리에 목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 검집이 달빛에 번쩍였다.
"어디서 훔쳐 먹었냐고!" 무사가 소리쳤다.
짝!
손바닥이 윤채린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저는... 안 훔쳤어요." 윤채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창고에서 잡곡이 사라졌는데, 여기 계집 말고 누가 있어!" 무사가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윤채린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움츠렸다.
나는 그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만하세요." 나는 무사의 팔을 붙잡았다.
무사가 나를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뭐야, 이 패가자 놈이." 그가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의 손목은 굵고 단단해서, 내가 붙잡은 힘은 아무런 저항도 되지 못했다.
"제가 훔쳤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윤채린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가 배가 고파서, 창고에서 잡곡을 조금 가져갔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녀보다는 내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무사가 나를 한참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의심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정말이야?" 그가 다시 물었다.
"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무사가 결국 헛간 벽으로 나를 밀쳤다.
쾅!
등이 벽에 부딪히며 통증이 퍼졌다.
숨이 잠깐 막혔다가, 다시 터져 나왔다.
"내일부터 새벽 청소 두 배로 해." 무사가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그의 발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사라질 때까지,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무사가 사라진 뒤, 윤채린이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그녀의 뺨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손끝으로 그 자리를 살짝 누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화가 아니라 걱정이 담겨 있었다.
"...네가 맞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윤채린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물기가 살짝 어리는 것을, 나는 모른 척했다.
"고마워." 그녀가 짧게 말했다.
"...내일 청소, 나도 도와줄게." 그녀가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 나는 대답했다.
"그래도."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또 다른 밤.
나는 훈련장 마당에 홀로 앉아 있다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허공에 희미한 빛의 선이 어른거리는 느낌이었다.
그 빛은 마치 실이 풀리듯 이어져 있다가, 눈을 깜빡이면 사라지곤 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빛을 만져보려 했지만, 손끝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눈을 감고 떠봐도, 빛은 같은 자리에서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뒤에서 윤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손을 거두며 당황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얼버무렸다.
"방금 뭔가 보였잖아." 그녀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네 눈이 이상하게 빛났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가끔 이상한 게 보여."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빛나는 선 같은 게,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윤채린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부호 같은 거야?" 그녀가 물었다.
"...부호?" 나는 처음 듣는 말에 되물었다.
"할머니가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어. 세상에는 원래 부호로 이루어진 힘이 있는데, 아주 드문 사람만 그걸 볼 수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게... 진짜 있는 거야?" 나는 되물었다.
"몰라, 나도 옛날이야기로만 들었어." 그녀가 대답했다.
"근데 네가 지금 그런 걸 보고 있다면, 어쩌면 진짜일지도 몰라."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
0급이라는 판정을 받은 이후로, 처음으로 내 안에 뭔가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비밀로 해줄 수 있어?" 나는 물었다.
"당연하지." 윤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둘만 아는 거야."
그녀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웃었다.
나는 그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작고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이, 그 순간만큼은 이 청류성 안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밤, 처음으로 누군가와 진짜 비밀을 나눴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