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몰락 명가의 환생 신동

5화

5화. 붙은 이름, 드리운 그늘 합격자 명단은 열흘 뒤 관아 앞에 붙는다고 했다. 그 열흘을 어떻게 보냈는지, 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낮에는 동수와 함께 밭일을 도와 쌀을 얻었다. 논두렁을 오가며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곡식을 나르고, 해가 지면 삯으로 받은 쌀을 자루에 담아 돌아왔다. 동수는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지만, 나는 밤마다 등잔불 하나를 켜두고 옥패를 들여다보았다. *춘추서를 찾아라. 윤회필이 있는 곳에서 나를 찾아라.* 스승의 목소리는 잊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 외에는 어떤 실마리도 없었다. 춘추서가 무엇인지, 윤회필이 어디에 있는지, 도일서원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다만 도일서원이라는 이름 하나만이 유일한 방향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손끝이 시렸다. 옥패의 표면을 문지르면 반쪽뿐인 문양이 손바닥의 온기를 삼키듯 차가워졌다. 전생에서는 이런 막막함을 느낄 일이 없었다.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를 때는 사람을 시켜 찾게 하면 되었다. 이번에는 내 두 발과 두 눈으로 찾아야 했다. 그 차이가 낯설었다. 열흘째 되던 날 새벽, 나는 잠에서 일찍 깨어났다. 방 안이 서늘했다. 창호지 틈으로 새어드는 빛이 희끄무레했다. 오늘이었다. --- 명단이 붙는 날, 관아 앞은 새벽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동수와 나는 인파를 헤치고 방 앞에 섰다. 사람들의 어깨와 등이 겹겹이 쌓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발을 밟았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업은 아낙이 발끝으로 서서 명단을 올려다보았고, 늙은 선비 하나는 이미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붙은 자와 붙지 못한 자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뒤섞여 있었다. 이름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동수의 손가락이 명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손가락 끝이 종이 위를 짚었다가, 다시 다음 줄로 미끄러졌다. 한 줄, 두 줄, 세 줄. 그의 눈이 글자를 놓칠까 두려운 듯 좁아졌다. "형님, 여기…" 동수가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박동수. 명단 중간쯤에 적혀 있었다. "형님, 저 붙었습니다! 붙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가, 다시 손을 떼고 명단을 확인하고, 또 다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반복이 몇 번이나 이어졌다. 시종의 신분으로 시작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관의 명단에 오른 것이었다. 전생에서는 이름을 얻는 것이 태어남과 함께 오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이 아이에게 이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나는 그 눈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눈에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빛이 있었다. 두려움과 기쁨이 같은 자리에서 뒤엉킨 빛이었다. 나는 계속 명단을 훑었다. 조이현. 뒤쪽에서 이름을 발견했다. 합격이었다. 동생(童生)의 신분을 얻었다. 숨이 잠시 멈췄다. 전생에서는 이런 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번에는 이 두 글자가 얼마나 큰 문턱이었는지,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가, 곧 가라앉았다. 나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형님, 저희 둘 다 붙었습니다!" 동수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 손이 뜨거웠다. 주변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통곡했고, 누군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란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열흘 밤을 지새운 피로가 그제서야 몸을 짓눌렀다. --- 명단 앞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게 무슨…" 진태욱이었다. 그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네 번째 낙방이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곧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럴 수가 없다! 답안을 다시 확인해!" 관리가 다가와 무언가를 설명했으나, 진태욱은 듣지 않았다. 그는 명단을 손톱으로 긁어대듯 훑었다. 종이가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의 시선이 명단을 훑다가, 조이현이라는 세 글자에서 멈췄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완전히 뒤틀렸다. "조이현." 낮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하인들이 주위를 둘러싸듯 다가섰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물러나며 공간을 내주었다. "몰락한 가문의 씨앗이 붙고, 진가의 공자가 떨어졌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그가 이를 갈았다. "각오해라. 이번 굴욕은 반드시 갚겠다." "굴욕을 준 것은 시험관이었지 제가 아닙니다." "입 다물어라!" 그가 소리쳤다. 주변의 시선이 다시 몰렸다. 동수가 내 옆에서 몸을 굳혔다. 그의 손이 내 소매 끝을 슬며시 잡았다. 진태욱은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하인들에게 이끌려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낯선 그림자를 보았다. 하인들 사이, 검은 옷을 걸친 사내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키는 크지 않았고,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얼굴은 두건에 가려 반쯤만 보였다. 그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명단을, 정확히는 내 이름이 적힌 자리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종이를 뚫고 나를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진가의 하인들과는 다른 기운이었다. 하인들의 눈에는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충성이 있었지만, 저 사내의 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눈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사내였다. 그는 진태욱의 뒤를 따라 조용히 사라졌다. 발소리조차 남기지 않았다. --- 그날 오후, 동수와 나는 마을 서생 노인을 찾아갔다. 도일서원의 입문 절차를 알기 위해서였다. 노인의 집은 마을 어귀 낡은 초가였다. 마당에는 오래된 먹 냄새가 배어 있었고, 방 안에는 붓과 벼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노인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동생 신분을 얻었으면 이제 서원 입문 시험을 볼 자격이 생겼네. 다만 도일서원은 아무나 받아주는 곳이 아니야."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성현의 유산이 남은 곳이지. 서고에 고문(古文)이 가득하다고 하네. 다만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있어." 노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몇 해 전부터 서원의 큰 스승, 부자(夫子)라 불리는 분이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이 있네." 손끝이 차가워졌다. "자취를 감췄다니요." "몰라. 병이 깊어 은거했다는 말도 있고, 조정과 마찰이 있어 쫓겨났다는 말도 있고. 확실한 것은 없어." 부자. 그 호칭이 스승을 가리키는 것인지,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살폈다. "자네, 어째 그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가?" "그저… 큰 스승이 없는 서원이라면 배움도 얕지 않을까 하여 여쭈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야. 부자는 없어도 그 아래 학사들이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고 하네. 다만 서원의 기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뿐이지." 그러나 확인해야 했다. "입문 시험은 언제 있습니까." "내년 초, 도성에서 열리네. 향시보다 훨씬 어려워. 각지 동생들이 몰려드니까." "도성이라면 얼마나 걸립니까." "걸어서 보름, 마차로는 열흘 남짓." "시험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경전 해석과 문장, 그리고 예의범절을 함께 본다고 하네. 향시보다 사람의 됨됨이를 더 깊이 본다는 말도 있어. 붙는 자보다 떨어지는 자가 훨씬 많다지." 동수가 내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형님, 저도 함께 갑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자." 동수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노인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가 옅게 웃었다. "주인과 종의 사이 같지 않구먼. 형제 같아." 그 말에 동수가 먼저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 나는 다시 그 검은 옷의 사내를 떠올렸다. 진가의 뒤에 있는 저 그림자는 무엇인가. 단순한 몰락 귀족의 복수심만으로 저런 기운을 두를 수 있는가. 의문이 켜켜이 쌓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동수는 앞으로의 도성행에 대해 쉼 없이 말을 이었다. 마차를 얻을 방법, 여비를 마련할 방법, 도성의 물가에 대한 소문까지. 나는 그의 말을 절반쯤 흘려들으며, 머릿속으로는 검은 옷의 사내와 부자의 실종을 겹쳐 생각했다. 두 가지 일이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 --- 그날 밤, 나는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밝았다. 서리가 마당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발밑에서 서리가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숨을 내쉬자 하얀 김이 허공에 퍼졌다. 옥패를 꺼내 들었다. 달빛 아래서, 반쪽뿐인 문양이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빛났다. 마치 누군가 그것에 반응해오는 것처럼. 손바닥에 놓인 옥패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했다. 착각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멀지 않은 담장 너머,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숨을 죽였다.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시선만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가, 짧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오늘 낮에 보았던 검은 옷의 사내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옥패를 품속 깊이 밀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담장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서리가 흔들리며 떨어졌다. 다만 서리 위에, 발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 것이 아니었다. 발자국의 크기는 어른의 것이었다. 발끝이 담장을 향해 있었고, 뒤꿈치는 이쪽을 향해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 서서, 나를, 혹은 이 집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발자국 옆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서리는 아직 녹지 않은 채였다. 그 흔적이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방 안에서 동수가 잠결에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자국을 오래 바라보았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서리 위의 발자국이, 달빛 아래서 조용히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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