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홍련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폐허 지하에 숨겨진 작은 방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발밑에서 돌가루가 서걱서걱 부서졌다. 벽을 짚으려다 손을 뗐다. 뭔가 축축했다. 아니, 축축한 게 아니라 미끈거렸다. 만지지 말았어야 했다.
'이 손 씻을 물이 여기 있긴 할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내가, 조금 어이없었다. 방금까지 죽었다 살아난 몸으로.
방에 들어서자 벽이 통째로 검게 그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불에 탄 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표면이 울퉁불퉁하게 파여 있었다. 불이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뭔가가 그 자리를 갉아먹고 지나간 흔적 같았다.
"앉아."
명령이었다. 물음표도 없었다.
다섯 명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들 아직도 몸이 자기 것 같지 않은 표정이었다. 강도진은 앉으면서 자기 무릎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 저게 진짜 내 무릎인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조금 위로가 됐다. 아주 조금.
목소연은 팔짱을 낀 채 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백유란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임재하는 그나마 제일 침착해 보였는데, 그것도 오래 못 갔다.
홍련이 팔을 들어 벽을 가리켰다. 그러자 검게 탄 자리에서 흐릿한 형상들이 떠올랐다. 처음엔 그냥 얼룩인 줄 알았는데, 점점 선명해지면서 윤곽이 잡혔다.
지도였다. 대륙 전체를 그린 지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반 이상이 붉은 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점 하나가 아니라 수백 개, 수천 개가 겹쳐진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이게 뭐예요."
목소연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3년 동안 마혼월이 있었던 자리다."
홍련이 짧게 대답했다.
'3년 동안, 이라니.'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머리가 그 뜻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마혼월은 12년에 한 번이었다. 역사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고, 서태윤도, 아버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12년이라는 숫자는 그냥 상식이었다.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것처럼.
그런데 3년 동안 이렇게 많은 붉은 점이 찍혔다는 건.
"이제는 12년이 아니야."
홍련이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너희가 잠들어 있던 3년 사이, 마혼월은 여섯 번 더 있었다."
"여섯 번…"
강도진이 중얼거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6분의 1로 줄었다는 소리잖아요. 12년에서, 6개월에."
임재하가 뭔가를 계산하려는 듯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매번, 저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홍련의 목소리엔 억양이 없었다. 담담해서 더 무서웠다.
'담담하게 말하지 말라고, 사람 죽은 얘기를.'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입 밖으론 못 냈다.
방 안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 다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졌다.
그때, 백유란이 손을 들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붉은 점 중에서도 가장 크고 진한 점이었다. 다른 점들과 위치가 조금씩 이동하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그 붉은 점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저건 뭐예요."
홍련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몇 초였는데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방 안에 울리는 것 같았다.
"저건 저주에 완전히 잠식된 존재다."
"…누구요."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게 나왔다.
예감이 있었다. 아주 안 좋은 예감이. 배 속 어딘가가 먼저 알고 있다는 듯 뒤틀렸다.
"이름을 말해줘야 하나."
홍련이 나를 봤다. 표정 없는 눈이었다.
"이미 알고 있잖아."
'……아니겠지.'
부정하려 했다. 그런데 심장이, 아니 심장이 있던 자리가 먼저 반응했다. 저릿하게 아팠다.
머릿속으로 아니라고, 다른 사람일 거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 대륙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그 사람일 이유가 어디 있어.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많았다.
"서연이 아직도…"
말을 끝맺지 못했다.
홍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 짧게.
그 짧은 끄덕임 하나가 지도 전체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3년 동안, 저주는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그 아이는 지금도 저 안에서 살아 있고, 저주도 그 아이 안에서 살아 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다섯 명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살아 있다는 게,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서연이 살아 있다는 건 기뻐야 할 일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살아 있다는데, 보통은 울면서 끌어안고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 방식이, 3년 동안 사람을 죽이며 살아 있는 방식이라면.
'그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갇혀 있는 거잖아.'
지도 위 붉은 점이 커지는 속도만큼, 서연이라는 이름이 저 점 안에 갇혀 있는 시간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거였다. 3년. 그 3년 동안 서연은 뭘 하고 있었을까. 뭘 보고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서연이라는 사람이 아직 그 안에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등 뒤로 오싹한 게 훑고 지나갔다.
"돌려놓을 방법은 있어요?"
임재하가 물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목소리였지만 끝이 살짝 흔들렸다.
"모른다."
홍련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아무도 저주의 근원을 본 적이 없다. 저주가 그 아이를 왜 골랐는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저주가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녀가 지도를 다시 가리켰다.
붉은 점이, 아주 미세하게, 눈으로 보일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저게 지금, 실시간이라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강도진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목소연은 아예 시선을 피했다. 저 점을 보는 게 무서운 모양이었다. 나도 그랬다. 서연이 저 붉은 얼룩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우리가 도와야 하는 거예요?"
목소연이 물었다.
홍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를 하나씩 다시 눈으로 훑었다.
그 눈빛이 이번엔 조금 달랐다. 검수가 아니라, 뭔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값을 매기는 것 같기도 했다.
'뭘 재는데, 우리를.'
기분이 별로였다. 물건처럼 취급받는 느낌.
"너희가 살아난 건 우연이 아니라고 했지."
그녀가 말했다.
"저주에서 벗어난 존재가 다섯이었던 것도, 그 다섯이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뭐예요."
내가 물었다.
홍련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또 저러네. 물어보면 대답을 좀 하지.'
짜증이 슬슬 났지만 입 밖으론 낼 수 없었다. 이 사람 앞에서 짜증 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건, 지난 몇 시간 동안 몸으로 배웠으니까.
대신 벽의 지도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형상이 떠올랐다.
무언가의 형상. 사람 같기도, 빛 같기도 한. 윤곽이 자꾸 흐려지다가 다시 잡히기를 반복했다.
"그건 이 사람이 설명할 거다."
그녀가 말했다.
형상이 서서히 사람의 모습으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빛이 뭉치면서 어깨가, 그다음 팔이, 그다음 얼굴 윤곽이 만들어졌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아직 텅 비어 있었다.
'저건 또 뭔데.'
다섯 명 모두 숨을 멈추고 그 형상을 지켜봤다.
방 안의 공기가 다시 한번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