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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명치 아래 진동이 완전히 꺼지면서 채팅창은 흩어지듯 사라졌고, 나는 곰팡이 낀 천장을 향해 헐떡이며 누워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반쯤 나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였고, 그 불빛이 천장 얼룩 위에서 일렁일 때마다 나는 방금 본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신분 표기를 등록하라니. 등록하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 뒤에 무슨 문장이 이어졌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연결이 끊겨버린 것이었다. 씨발, 이럴 거면 끝까지 보여주고 끊어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배를 부여잡았다. 명치 아래에서 시작된 진동은 사라졌지만, 그 여파는 몸속 어딘가에 아직 남아 웅웅거리고 있었다. 마치 방금 전기가 흐르다 갑자기 끊긴 전선처럼, 몸 전체가 얼얼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이불 위에서 눈을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배꼽 아래로 숨을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확신을 가지고, 반드시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제와 똑같은 자세, 똑같은 호흡, 똑같은 집중이었지만 몸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명치가 떨리기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처음보다 눈에 띄게 짧아졌다. 이거 봐라. 몸이 학습을 하는 건가. 손끝이 저릿해지고, 등줄기를 타고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겪었을 땐 낯설고 두려웠던 그 감각이 이제는 반갑게까지 느껴졌다. 창이 다시 떴다. [관리자] 신분 표기를 등록하십시오. 미등록 상태로는 상위 발언권이 제한됩니다. 상위 발언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등록을 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대화조차 못 할 수 있다는 위협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져보았다. [화류] 표기는 어떻게 하는 거지 [관리자] 본인 경지를 입력하십시오. 허위 표기 시 시스템 규정에 따라 제재될 수 있습니다. 허위 표기 시 제재라는 문구를 읽는 순간,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 시스템은 나 같은 존재의 거짓을 걸러내는 감시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문구는 이상한 안도감도 주었다. 규정으로 제재하겠다는 말은, 즉각적인 처벌이 아니라 절차를 밟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즉결처분이 아니라 재판이라는 거지. 그럼 최소한 항변할 시간은 있다는 소리 아닌가. 나는 곧바로 백우와 운룡의 대화 로그를 다시 훑어보았다.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삼계 초식 세 번째 관문, 이계, 입미경. 이 세계에는 확실한 경지 체계가 있었고, 그 체계 안에서 가장 낮은 위치가 입미경이라는 것도 눈치챌 수 있었다. 입미경, 이계, 삼계. 순서로 보아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구조인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 걸까. 나는 뭘 써야 하나 오랫동안 고민했다. 손가락을 키패드 위에 올려놓았다가 다시 내렸다가,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입미경이라 적으면 최소한 눈에 띄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장 낮은 단계라니, 시선을 끌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실제로 나는 입미경조차 아니었다. 기를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폐물이었다. 어제 겨우 명치까지 진동을 끌어올린 게 전부인 놈이, 무슨 자격으로 그 이름을 빌려 쓴단 말인가.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화류] 입미경 1층 손이 떨리는 채로 입력했다. 허위였다. 완전한 허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관리자] 등록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화류. 등록이 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재도, 경고도 없었다. 씨발, 진짜로 넘어갔어.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이상한 생각이 하나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 시스템이 진짜 사용자의 실제 경지를 검증하는 능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검증을 하고도 지금 당장은 넘어가주는 건가. 어느 쪽이든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이 시스템은 지금 이 순간 나를 지켜보며 웃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언제든 카드를 뒤집을 준비를 하고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에 다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숨어 지내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배꼽 아래로 숨을 밀어 넣었다. 새벽 세 시, 네 시, 어느 날은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명치의 진동을 불러올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나아지고 있었다. 첫날에는 십 분이 걸리던 것이 사흘째에는 오 분으로, 일주일째에는 채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채팅창이 열릴 때마다 백우, 운룡, 적혈랑의 대화를 조용히 관찰했다. 그들은 서로를 삼계, 이계라고 부르며 진로를 논했고, 어느 문파의 어떤 무공이 자신들의 경지에 적합한지, 어느 스승 밑에서 몇 년을 수련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정보를 흡수했다. 마치 도서관에 몰래 숨어든 문맹처럼, 글자는 읽되 뜻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백우] 삼계 진입하려면 최소 이계 삼층은 찍어야 한다던데 [운룡] 그건 옛말이고 요즘은 이계 오층까지 요구함 [적혈랑] ㅋㅋ 우리 문파는 아직도 옛말 쓰는데 어쩌지 나는 그들이 나누는 숫자와 단계, 층이라는 표현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이 세계의 위계는 생각보다 촘촘했고, 그 촘촘함 속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밤. [???] 여기 새로 온 사람 있나요 낯선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백우도 운룡도 적혈랑도 아니었다. 이름 대신 물음표 세 개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 아래로 짧은 문장이 이어졌다. [???] 저 몽몽이라고 해요 어제 초대받았는데 여기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말투는, 백우나 운룡의 신경질적인 반말과는 결이 달랐다. 어딘가 조심스럽고, 어딘가 외로움이 묻어 있는 문장이었다. 물음표 세 개짜리 이름 뒤에 붙은 문장 하나가 이렇게 눈에 밟힐 줄은 몰랐다. [백우] 진로 상담하는 곳 [운룡] 뭐 잘못 들어왔나 [몽몽이] 아 그런 거예요? 저는 그냥 여기서 사람 얘기 하는 게 신기해서요 나는 손끝으로 명치의 진동을 유지하며 그 대화를 계속 지켜보았다. 이상하게도 눈이 그 이름에서 떠나지 않았다. 몽몽이.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 뒤에 붙은 문장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다른 사람들의 문장은 짧고 날카롭고 확신에 차 있었는데, 몽몽이의 문장은 어딘가 물음표가 하나 더 붙은 것처럼 흔들렸다. [운룡] 뭐하는 거 신기하다니 그게 뭔 소리야 [몽몽이] 그냥요 다들 저마다 목표가 있고 그거 얘기하는 게... 저는 그런 게 없어서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조여드는 걸 느꼈다. 목표가 없다는 말. 나 역시 이 세계에서 목표라는 걸 세워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는 것, 걸리지 않는 것, 하루하루 넘기는 것이 전부였다. [몽몽이] 화류님은 어떤 경지세요? 갑자기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그 짧은 질문 하나에 손가락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입미경 1층이라고 등록해놓았으니 그렇게 답해야 하나, 아니면 아예 대답을 피해야 하나. 화면 위 커서가 깜빡이는 그 짧은 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화류] 별로 대단하지 않다 무난하게 넘기려 쓴 문장이었다. 최대한 뭉뚱그려서, 최대한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몽몽이의 답이 예상 밖이었다. [몽몽이] 저도 그래요 그래서 반가워요 그 짧은 문장이 화면에 떠오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명치의 진동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안정되는 걸 느꼈다.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나를 경계하지 않는 존재를 만난 것이었다. 백우도 운룡도 적혈랑도 나를 특별히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그건 관심이 없어서였다. 몽몽이의 문장에는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도 경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사람 하나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하지만 안도할 수는 없었다. 몽몽이의 다음 문장이 화면에 뜨는 순간, 나는 다시 손끝이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몽몽이] 그런데 화류님 목소리가 좀 이상해요. 원래 이런 말투 쓰시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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