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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곰팡이와 흙, 그리고 어딘가 썩어가는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나는 그게 우리 반 교실 냄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정확히 삼 초가 걸렸다. 분명히 야간 자율학습 중에 책상에 엎드려 졸았던 것 같은데, 그다음 기억은 트럭 헤드라이트와 귀를 찢는 경적 소리, 그리고 온몸이 짓이겨지는 감각으로 뚝 끊겨 있었다. 죽었구나. 그 확신이 들자마자 눈앞이 흐릿하게 밝아지면서, 낯선 나무 서까래와 뜯긴 이엉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시야를 채웠다.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팔이 내 팔이 아니었다. 가늘고, 창백하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앙상하게 도드라진 이 팔은 열다섯 살 남자애의 것이라기엔 너무 부실했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 봤다. 관절에서 뭔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우그적, 우그적. 사람 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씨발, 뭐야 이거. 이단화(李断火). 그게 이 몸의 이름이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마치 원래 내 이름이었던 것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부모는 없고, 마을 외곽 폐가에서 홀로 사는 고아이며, 태어날 때부터 기(氣)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라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저 병든 폐물 자식이라고 수군거린다는 사실까지, 남의 인생 요약본을 강제로 주입받은 기분이었다. 환장하겠네. 이름도 알고, 사연도 알고, 심지어 어제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도 아는데 정작 이 몸에 들어온 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제일 소름 끼치는 부분이었다. 기억은 있는데 감각이 없다. 알고는 있는데 실감이 안 난다. 마치 남의 일기장을 억지로 외운 뒤 그 일기장 속으로 밀어넣어진 느낌이랄까. 일어나 앉으려는데 등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배 속에서는 사흘은 굶은 듯한 허기가 뒤틀렸다. 벽에 걸린 깨진 항아리를 열어 보니 곡물 몇 알이 바닥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손가락으로 그 몇 알을 긁어모으는데, 방금까지 서울 한복판 학원가에서 야자 째고 편의점 김밥이나 사 먹던 인생이 이 꼴이 됐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로또도 아니고, 뭐 이런 걸 당첨이라고. 창밖으로는 이미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 계절이 지나면 산 아래로 눈이 쌓이는 겨울이 온다고 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먹을 걸 구하지 못하면, 이 허약한 몸뚱이는 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생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단어는 딱 그것 하나였다. 판타지 소설이나 웹툰에서 보면 다들 각성하고 치트 능력 받고 하렘 차리던데, 나한테 주어진 건 기를 못 받아들이는 병약한 고아 몸뚱이 하나였다. 시작부터 이렇게 억까일 일인가. 마을로 내려가자 아이들 몇이 나를 보더니 대뜬 침을 뱉었다. "어, 저 병신 아직 안 죽었네?" 조롱이 뒤따랐고, 나는 애써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반박할 힘도, 반박할 이유도 없었다. 이 몸은 정말로 병약했고,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이방인이었으니까. 열다섯 먹은 애들 손에 침 세례를 받으면서도 화가 안 났다. 아니, 화를 낼 기력조차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마을 어귀 우물가에서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마신 뒤, 산나물이라도 캐 보자는 심산으로 뒷산으로 올랐다. 우물가 아주머니는 물 한 바가지 뜨는 데도 눈살을 찌푸리며 옆으로 물러섰다. 병 옮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냥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저 아주머니 표정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틸 열량이었다. 산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이 몸의 다리는 몇 걸음만 걸어도 후들거렸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는 소리가 스스로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는데, 무릎이 돌부리에 찢어지고 팔꿈치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와중에도 신기하게 정신은 또렷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또렷했다. 굴러떨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러다 두 번째로 죽는 건가. 트럭에 치여 죽고, 산비탈에서 굴러 죽고, 이 정도면 백과사전 한 권이 나올 정도의 불운 이력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때, 몸이 바닥에 처박히며 멈췄다. 그 순간이었다. 시야 한쪽 구석에 반투명한 사각형 창이 스치듯 나타났다. 마치 스마트폰 알림창이 뜨는 것처럼, 아주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알림: 새로운 연결이 감지되었습니다.] 뭐지. 놀라서 손을 뻗었지만 창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우는 새소리, 그 외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환각인가, 뇌진탕 후유증인가, 아니면 이세계 전생물에서 흔히 나온다는 그 '시스템'이라는 건가.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떨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지만, 창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머리를 다쳐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싶어 이마를 짚어봤다. 열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찢어진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옷자락으로 눌러 지혈하며 산을 내려오는 길, 나는 방금 본 그 창이 뭔지 계속 곱씹었다. 새로운 연결이 감지되었다니, 연결이라는 게 대체 무엇과의 연결이란 말인가. 이 세계 사람들이 다 쓰는 알림창인가, 아니면 나만 보이는 뭔가인가. 답을 찾을 방법이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산나물 몇 뿌리를 뜯어다 초막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 무너져가는 초막 바닥에 누워 있는데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고, 이대로 자면 다시는 눈을 못 뜰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손발 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데 정작 이마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이게 그 유명한 죽기 직전의 신호라는 건가. 두 번 죽는 건 진짜 너무하잖아.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트럭에 치여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남의 몸에 들어와서 며칠도 못 버티고 굶어 죽거나 열병으로 죽는다면 그거야말로 인과율이 억까를 부린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잡으려 했지만 눈꺼풀이 자꾸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시야 구석에 다시 그 창이 떠올랐다. [알림: 귀하는 [만유일계 채팅군]에 초대되었습니다.] [가입하시겠습니까? Y / N]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까지 죽어가던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눈이 크게 뜨였다. 채팅군이라니, 이건 또 뭔 소리야. 만유일계라는 이름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온 우주를 통틀어 하나로 연결된 세계라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거창하게 지은 이름일 뿐인가. 손가락이 떨렸다. 이게 진짜라면, 이건 절박한 나에게 던져진 마지막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이게 가짜라면, 나는 지금 죽어가는 마당에 헛것을 보고 있는 셈이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상황에서 잃을 게 뭐가 있나 싶었다.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몸, 게다가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몸이었다. Y를 누르면 뭐가 나올까. 채팅군이라는 이름에서 은근히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런 이름의 것들은 대체로 평범하지가 않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이미 그 알림창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이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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