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세 번째 시도였다.
방바닥에 등을 붙인 채 숨을 배꼽 아래로 밀어 넣었다. 눅눅한 흙벽에서 스며 나오는 한기가 등뼈를 타고 올라왔지만, 그것조차 지금은 사치스러운 감각이었다. 명치 아래가 옅게 떨리는 감각, 그 진동을 놓치지 않으려 나는 숨을 참았다가 아주 천천히 내뱉었다. 손목의 통증도, 무릎의 상처도, 사흘째 비어 있는 위장의 허기도 그 순간만큼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멀어졌다.
씨발, 이거 진짜 뭔가 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나는 이게 헛짓거리라고, 굶어 죽어가는 몸이 만들어낸 환각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더랬다. 그런데도 관자놀이에 땀이 배도록 세 번째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절반은 확신이었고 절반은 도박이었다.
명치 아래 진동이 조금씩 강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눈앞의 허공을 노려보았다.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확신, 그 확신이 근거 없는 미신이 아니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열다섯 해를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뼈마디를 타고 도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실체가 없는 흐름.
─연결 확인 중.
창이 떠올랐다.
지난 두 번의 시도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반투명한 사각형이 명멸하다 사라졌을 뿐인데, 이번에는 글자가 선명하게 맺히며 그 안쪽으로 무언가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채팅창이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운룡] 삼계 초식 세 번째 관문 넘었다니까 왜 안 믿냐
[백우] 증명해봐
[운룡] 어떻게 증명하냐 여기서
[적혈랑] 둘 다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
숨이 멎었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이 화면을 세 번 보았고, 매번 그것은 정지된 사진처럼 굳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반응이 없었고, 글자를 눌러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초대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저 눈앞에 걸린 액자였을 뿐이었다. 나는 그 액자를 보며 몇 번이나 손끝을 대었다가 뗐는지 모른다. 매번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아무 감각도 돌아오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게 죽어가는 폐물의 마지막 발버둥이 만들어낸 신기루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지금, 백우라는 이름 뒤로 새 문장이 하나 더 떠오르고 있었다.
[백우] 야 근데 방금 뭐 지나갔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뭐 지나갔냐고? 설마.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라면, 저들이 정말로 무언가의 변화를 감지했다는 뜻이다. 나는, 화류라는 이름으로 이 화면 속에 발을 들인 것이다. 나는 손끝으로 화면을 건드려보았다. 아무 감촉도 없었다. 손가락은 그저 허공을 긁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화면 안쪽에서 커서 같은 것이 깜박이고 있었다. 입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진짜야? 진짜로 내가 여기에 뭘 쓸 수 있는 거야?
나는 조심스레, 정말 시험해보는 마음으로 짧은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머릿속으로 글자를 그리듯이, 배꼽 아래의 진동을 유지한 채로. 한 획이라도 놓치면 이 연결이 끊길 것 같은 조바심에 손끝까지 저려왔다.
[화류] 아무것도 아니다
입력이 되는지도 몰랐던 화면에, 내 문장이 그대로 박혀 올라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손목의 통증이 다시 살아나는 게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게 뭐야. 이게 진짜로 되는 거야?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가 다시 소용돌이치듯 채워졌다. 삼계, 초식, 관문. 이 단어들이 낯설지 않았다. 초막에 쓰러져 죽어가는 나 같은 폐물의 세상에서는 결코 들어볼 일 없는 말들이었지만, 어딘가 본능적으로 이해가 되는 단어들이기도 했다. 이 채팅군에 모인 자들은 진짜였다. 무공을 익히고, 경지를 논하고, 서로의 실력을 두고 다투는 진짜 존재들이었다.
[운룡] 화류? 새로 들어온 놈이냐
[백우] 처음 보는데
[적혈랑] 조용히 좀
그들이 나를, 정확히는 화류라는 이름을 알아채고 있었다. 지난 보름 동안 초대장 화면에서만 보았던 그 이름이 이제는 실제로 다른 존재들에게 인지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소름이 목덜미에서 팔뚝까지 번져 나갔다.
나는 그대로 숨을 멈춘 채 화면을 응시했다. 이게 놀이가 아니라는 것, 이게 진짜 대화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몇 초가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던 땀 한 줄기가 턱 끝에서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백우] 뭐하는 놈인데 갑자기 나타나서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서 내가 폐가 초막에 쓰러져 있는 열다섯 살 폐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자살행위였다. 이 채팅군 안의 존재들이 진짜 무공을 쓰는 자들이라면, 삼계니 초식이니 하는 경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 같은 몸으로 여기 끼어드는 건 벌집을 건드리는 짓이었다. 개미 한 마리가 용들의 술자리에 잘못 굴러들어간 격이었다.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그냥 정체를 숨기고 침묵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대충 아무 말이나 지어내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 두 가지 모두 지금 당장 답을 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사치라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다시 한번 떨렸다. 뭐라고 써야 하지. 뭐라고 써야 저들이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까. 너무 강한 척하면 시험받을 것이고, 너무 약한 척하면 무시당하거나 먹잇감이 될 것이다. 균형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균형을 잡을 시간이 지금 나에게는 없었다.
명치 아래 진동이 서서히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호흡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이 흐려지려 하고 있었다. 지금 답을 쓰지 못하면 이 연결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사흘 굶은 위장이 뒤늦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뒤틀렸고, 손목의 상처가 지끈거리며 다시 존재를 알려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진동을 다잡으며 손끝에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았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보름을 기다려 겨우 세 번째로 얻은 문이었다. 이대로 닫히게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 한쪽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백우가 아니었다. 운룡도 적혈랑도 아니었다.
[관리자] 신규 가입자 확인. 신분 표기를 등록하십시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다시 읽었다.
신분 표기라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인지, 등록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등록을 하면 되는 건지, 등록을 하지 않으면 이 연결이 강제로 끊기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초대장 화면에는 그런 설명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진동이 완전히 사그라지려는 그 순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