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황금빛 심판의 영애

5화

명령서를 받은 그날 밤, 나는 성전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사형집행인 노릇을 한 지도 어느덧 반년, 사람 목을 치는 일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자꾸만 발이 뒤로 당기는 느낌이었다. 성전 앞에 도착했을 때, 신관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조용히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향냄새와 함께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관 앞에 서서, 나는 오래도록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서윤의 얼굴은 마치 잠든 사람처럼 평온했다. 오십 일이 지났는데도 살결에 핏기가 남아 있었고, 그 위를 옅은 금빛이 감싸고 있었다. 만약 이게 그냥 시체였다면, 벌써 구더기가 들끓고 냄새가 진동했을 텐데. 썩지 않는 시체라니. 이건 뭐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설정 아닌가. 근데 그 판타지 소설 속에 내가 들어와 있으니, 웃기게도 남 일이 아니었다. 다시 검을 뽑아 이 몸을 벤다는 게, 이제는 도무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녀가 정말로 유죄였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최근 들어, 처형 당일의 증언들을 다시 떠올려 보곤 했다. 강나영이라는 여인의 증언은 지나치게 상세했지만, 정작 물증은 하나도 없었다. 하녀들의 목격담이라는 것도, 조사해 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하녀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름도, 소속도, 심지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증언이 아니라 그냥 소설이었던 셈이다. 그때는 왜 이 사실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까. 답은 뻔했다. 왕태자가 원했고, 아무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으니까. 나 역시 그 명령을 받고 검을 들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사실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내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 걸까." 나는 관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그 순간 관 주변의 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 것 같았다. 착각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다가, 나는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 성전 밖 계단에서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왜인지 그 바람이 차라리 관 속의 공기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 한편, 궁정 어딘가의 작은 방에서 나, 강나영은 매일 밤 같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악몽 속에서 이서윤은 늘 웃고 있었다. 원망하는 얼굴도 아니고, 화를 내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 그 웃음이 어떤 원망보다도 더 무서웠다. 꿈에서 깰 때마다 이불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시녀를 불러 물을 청해도 목이 마르는 갈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처음 이헌에게 접근했을 때는, 그저 신분 상승의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상인의 딸로 태어나, 아무리 노력해도 귀족들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다. 어릴 적, 아버지의 가게에 귀족 자제가 들어와 물건을 고르다가 내 손이 스치자 마치 벌레라도 만진 듯 손을 털어내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순간의 굴욕감이, 그 뒤로 오랫동안 내 안에 눌러앉아 있었다. 이헌이 나를 좋아하게 됐을 때, 나는 이게 인생 역전의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문제는 그의 약혼녀였다. 이서윤이 사라져야만,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거짓 증언을 준비했다. 하녀도, 증거도 모두 지어냈다. 이름은 아무렇게나 지어 붙이고,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살을 붙였다. 이헌은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서윤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계획은 완벽했다. 이서윤이 죽고, 내가 왕비가 되고, 모든 게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죽지 않았다. 죽었는데, 죽지 않았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 나는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만약 저 시신에 정말로 신성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면. 만약 그것이 그녀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표식이라면. 내가 만든 거짓은, 결국 언젠가 낱낱이 드러나게 될 거였다. 밤마다 창밖을 내다보며, 신전 쪽 하늘에 이상한 빛이 새어 나오는 건 아닌지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우습게도 아무 빛도 보이지 않는데도, 나는 늘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영, 무슨 일 있어? 요즘 계속 안색이 안 좋은데." 이헌이 물었을 때,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니에요, 전하. 그냥 잠을 좀 설쳤을 뿐이에요."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손길이 예전에는 그렇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 온기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거짓말이 늘어 갈수록, 처음의 거짓말도 점점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재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아주 잠깐 안도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끝내면, 이 불안도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밤이 되면 또 같은 얼굴이, 같은 웃음이 나를 찾아왔으니까. * 다시 내 시점으로 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내 관 곁에 붙어 있었고, 도윤이 관 앞에 서 있는 밤을 몇 번이나 지켜봤다. 그는 매번 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가곤 했다. 어떤 날은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손끝으로 관 뚜껑을 한 번 쓸어보고 가기도 했다. 한 번은 그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미안하다." 그 한 마디가 왜인지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죽은 나에게, 죽인 그가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니까. 그런데도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는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는데. 죽고 나서야, 검을 든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인생이란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인생이 아니라 이건 사후라고 해야 하나. 재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신전의 사제들을 통해 나도 알게 됐다. 사제들이 오가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왕태자 전하께서 직접" 이라는 말이 유독 크게 들렸다. 다시 검이 나를 향할 거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이미 죽은 몸이었으니까. 다만 궁금했다. 이번에도 그 금빛이, 나를 지켜 줄까. 그리고 마침내, 재처형이 집행되는 날이 다가왔다. 왕태자 이헌이 몸소 성전을 찾겠다는 전갈이 도착한 것도 바로 그날 아침이었다. 신전 앞마당에는 어느새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황성신보의 기자들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목을 빼고 관을 향해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는 성호를 긋고 누군가는 낮게 속삭이며 서로의 팔을 붙잡았다. 죽은 나를 두고 저렇게들 모여드는 걸 보면, 사람이란 산 자보다 죽은 자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 존재인가 보다. 도윤은 성검을 든 채로, 굳은 얼굴로 관 앞에 섰다. 그 얼굴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어떤 결심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관 뚜껑이 다시 열렸다. 금빛이, 그날보다 훨씬 더 짙게 번져 있었다. 관 주위로 몰려든 이들의 숨소리가 일순 뚝 끊겼다. 누군가의 낮은 탄성이 들렸고, 곧이어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도윤의 손이, 성검의 손잡이를 다시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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