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성검의 기사가 된 지 십 년째였다.
나, 한도윤은 이 나라에서 몇 안 되는 성검 계승자였다. 어릴 적 신전에서 발견된 검이 나를 주인으로 택했다는 게 사람들이 하는 소리였고,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들고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게 내 일이었다.
성검의 기사라니, 이름만 들으면 꽤 그럴싸하다. 명예도 있고, 녹봉도 나쁘지 않고, 왕실 행사에 불려 다니면 대접도 융숭하다. 근데 실상은 그냥 왕태자 전용 집행관에 가까웠다. 판결이 나면 검을 뽑고, 검을 뽑으면 벤다. 그 사이에 내 의견 같은 건 낄 자리가 없었다.
오늘은 그 명령이, 사람을 베는 일이었다.
이서윤이라는 이름의 영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몇 번 왕궁 연회에서 먼발치로 본 게 전부였고, 그때마다 그녀는 늘 조용히 구석에 있었다. 화려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달까.
화려한 드레스, 값비싼 장신구, 그런 것들 사이에서도 이서윤은 마치 배경처럼 서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짧게 답하고, 시선을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잔혹한 죄를 지었다는 게,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기사였다. 왕태자의 명령이 떨어지면 검을 뽑는 것이 내 역할이었고, 판결의 정당성을 따지는 건 내 몫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나를 세뇌해 왔다.
처형장으로 걸어가던 그 짧은 거리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 수군거리는 소리, 그 모든 게 뒤섞여서 하나의 웅웅거림처럼 들렸다. 나는 그 소음 속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두려움도, 원망도 없는 눈이었다.
검을 내리치던 순간, 검신에서 이상한 빛이 새어 나왔다.
금빛.
성검이 원래 가진 빛과는 미묘하게 다른, 더 옅고, 더 부드러운 빛이었다.
나는 그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지만, 이미 검은 궤적을 그린 후였다.
판결은 완료되었다. 이서윤은 죽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손이…… 따뜻합니다."
시신을 옮기던 병사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지만, 상관들은 그저 "방금 처형됐으니 그럴 수 있다"며 넘겼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방금 죽은 사람의 몸이 따뜻한 거야 당연하다. 근데 그 병사의 목소리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떨림이 있었다. 단순히 온기가 남아 있다는 말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만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파고들 명분도, 자격도 없었다.
왕태자 이헌은 처형이 끝난 그날 저녁, 궁정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강나영을 위한 자리였다. 마치 오늘 있었던 일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모두가 웃고 마시고 있었다.
악단의 연주 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창밖으로 보이는 연회장은 불빛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쳤다. 몇 시간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이 안에 몇이나 될까.
나는 그 자리에 초대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대신 성전 뒤편으로 향했다.
이서윤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었다.
왜 그곳으로 발이 향했는지, 나조차도 명확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그저 뭔가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성전 뒤편은 낮에도 인적이 드문 곳인데, 밤이 되니 더 조용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촛불 하나 없는 복도를 걷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누가 보면 도둑이라 생각할 법한 걸음걸이였다.
관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그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관 주변에 옅은 금빛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검을 다루는 사람 특유의 감각으로는 분명히 느껴졌다. 마치 관 전체가 옅은 막에 둘러싸여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나는 관에 손을 대 보려다가, 이상한 저항감을 느끼고 멈췄다.
마치 보호막 같은 것이 관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심판의 형으로 죽은 죄인의 시신에 보호막이 쳐질 이유가 없었다. 죄인의 시신은 보통 사흘 안에 화장되어 재조차 남기지 않는 법인데, 누가 이런 걸 걸어 놨을까.
혹시 나 말고 이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성검 계승자가 나 하나뿐인 이 나라에서, 이 미묘한 기운을 눈치챌 사람이 또 있을 거라 생각하니 좀 우스웠다.
나는 그 밤, 결국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하고 신전을 떠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후로 며칠 동안, 그날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검이 내려오기 직전,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두려움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조용한 관찰자의 눈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그게 나를 자꾸 불편하게 만들었다.
밤마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면, 그 눈빛이 떠올랐다. 마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검을 든 내 손, 그녀의 시선, 그리고 그 옅은 금빛. 몇 번을 되짚어봐도 설명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경,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동료 기사 하나가 물었다.
식당에서 마주친 그는, 내가 며칠째 넋 놓고 앉아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대충 웃어넘겼을 텐데, 그날은 웃음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 밤부터, 나는 시간이 나면 성전 뒤편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습관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남들은 술집으로 향했고 나는 성전 뒤편으로 향했다. 매번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그 옅은 금빛 기운이 관을 감싸고 있었고, 여전히 손을 대면 저항감이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그 관 주변에서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가, 열흘이,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도록 나는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신전의 오래된 문헌을 뒤져 볼까 생각도 했지만, 죄인의 관에 관심을 보이는 성검 기사라니, 그것만으로도 이상한 소문이 돌 게 뻔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혼자서만 그 관을 찾아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신전을 관리하는 사제 하나가 다급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경, 잠시 시간이 되십니까. 아무래도…… 경께서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창백했다.
숨을 몰아쉬며 말을 잇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신전에서 오래 일한 사제답게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가."
"그…… 이서윤 영애의 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