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사제를 따라 성전 뒤편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자꾸만 마음이 급해졌다.
발이 없는데도 발걸음이 급해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정말로 그랬다. 혼백이 된 지 오십 일째인데도 이런 촐싹거림은 여전하다니. 죽어서도 성격은 못 고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자조했다.
한도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오랜만에 조금이나마 살아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죽은 몸으로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웃기지만, 사실이었다.
넓은 등,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 짙푸른 머리카락이 성전의 어스름한 조명 아래서 유독 짙어 보였다. 저 사람은 언제 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군인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게 딱 느껴질 정도로.
지난 오십 일 동안, 나는 계속 이 관 주변에 붙어 있었다. 어디를 가도 몸에서 멀어지면 뭔가 불편했고, 결국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됐다.
마치 목줄 없는 강아지가 자꾸 집 냄새 나는 곳으로 회귀하듯이. 아니, 이 비유는 좀 서글프네. 죄인 취급받아 처형당한 시신 곁을 못 떠나는 원귀 신세에 강아지라니.
그동안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가문은 물론, 이헌도 단 한 번 오지 않았다.
처음엔 서운했다. 그다음엔 화가 났다. 그러다 오십 일째 되니 그냥 무덤덤해졌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미련도 유통기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오직 이 청발의 기사만이 몇 번인가 밤에 찾아와 관 앞에 서 있다가 조용히 돌아갔다.
말을 걸어 준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됐다.
웃기게도.
그가 관 앞에 서 있을 때면 나는 늘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그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궁금했는데, 늘 무표정이었다. 저 남자는 감정이 있긴 한 걸까, 하고 궁금해했던 밤이 몇 번이었는지.
"여깁니다."
사제가 관을 가리켰다.
도윤이 다가섰다.
관의 뚜껑이 살짝 열려 있었다. 부패한 시신을 확인하려던 절차인 듯했다. 오십 일이 지났으니 이제는 완전히 백골이 되었으리라 예상했을 거다. 나조차도 내 몸이 어떤 상태일지 궁금했다. 구더기가 들끓는 흉한 모습일까, 아니면 뼈만 남은 앙상한 형체일까.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본 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도 함께 안을 들여다봤다.
내 얼굴이었다.
오십 일 전과 다를 게 없었다.
핏기 없는 낯빛이지만 부패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관 속에 누운 나는 그저 곤히 잠든 사람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나조차 어이가 없었다.
아니, 다른 게 있었다.
온몸이 옅은 금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마치 유리막에 갇힌 것처럼, 빛이 몸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반짝, 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그 모습이 마치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 유물 같았다. 사후에 이런 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살았을 때는 개복치 같은 몸뚱이 하나로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죽어서는 무슨 전시품 신세라니.
"이건……"
도윤이 손을 뻗어 관 안쪽을 만지려 했다.
순간, 손끝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경!"
사제가 놀라 외쳤다.
도윤은 손을 거둬들이며 미간을 좁혔다.
손끝이 살짝 붉게 부어오른 게 보였다. 아파 보이는데도 그는 인상 한 번 찡그리는 게 전부였다. 저 무던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막이…… 있군."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저희로선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신전 안에서 이런 일은 전례가 없습니다."
사제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전례가 없다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왜 내 몸이 부패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내 의식이 여전히 이 세상에 붙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짐작할 수 있는 건, 이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만약 게임이었다면 튜토리얼도 없이 던져진 하드모드, 아니 헬모드였다. 상태창이라도 떠서 설명을 좀 해 주면 좋겠는데, 그런 편의 기능은 나한테는 없는 모양이었다.
소문은 빨랐다.
다음 날, 성전을 관리하는 사제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퍼졌고, 그다음 날은 신전을 찾은 귀족 방문객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돌았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황성신보 기자들이 신전 앞에 진을 쳤다.
"처형된 죄인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다는데, 사실입니까?"
"태조대왕의 부활 전설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기자들의 질문이 성전 문 앞을 두드렸다.
사제들은 답을 회피했고, 신전은 문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문을 잠근다고 해서 소문이 잠기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침묵이 소문에 살을 붙였다.
태조대왕의 부활 전설.
나는 그 전설을 어릴 적 유모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해동국을 세운 태조대왕이 죽지 않고 금빛 광채에 감싸여 잠들어 있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다시 일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유모는 그 이야기를 해 주면서 늘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때는 그저 잠들기 전 자장가 같은 옛날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냥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내가 그 옛날이야기의 재료가 될 줄은 몰랐다.
이럴 거면 살아 있을 때 유모한테 더 잘해 줬어야 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까지 밀려왔다. 죽고 나서야 드는 후회라니, 참 타이밍도 늦다.
"헛소리다."
소문을 들은 이헌의 반응은 짧고 단호했다.
나는 그가 성전에 오지도 않고, 보고만 듣고 화를 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죄인의 시신에 무슨 신성한 기운이 있단 말이냐.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를 잡아들여라."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나는 그 짜증 속에 아주 희미하게 다른 것이 섞여 있는 걸 느꼈다. 두려움. 확신이 안 서는 자의 두려움.
하지만 소문은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신전 앞에 매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참배객처럼 관 앞에 꽃을 놓고 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어느 날은 아이 손을 잡고 온 어머니가 관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고 갔다. 다른 날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와서 한참을 서 있다가 조용히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로서는 그저 얼떨떨했다. 살아 있을 때는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죽고 나니 참배 대상이 되다니.
죄인으로 죽은 사람에게 꽃을 놓다니.
세상 참 아이러니했다.
결국 이헌은 이 소란을 잠재우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직접 확인하겠다. 재처형을 명한다."
재처형.
이미 죽은 사람을 또 죽인다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는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미 죽은 나를 또 죽이겠다니. 저승사자도 두 번 일 시키면 파업할 것 같은데. 사후 초과근무 수당이라도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한도윤을 불러라. 그가 다시 집행할 것이다."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 듣는 도윤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명령서를 받아 든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이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알아챈 건 아마 이 방 안에서 나 하나뿐이었을 거다. 그는 늘 그렇듯 표정을 지우고 있었으니까.
……왜 저런 얼굴을 하는 거지.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처형하라는 명령쯤이야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텐데. 그의 검이 다시 내 목을, 아니, 내 몸을 향할 텐데. 나는 그 사실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미 한 번 겪은 죽음이었으니까.
다만 궁금했다.
저 남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명령서를 쥔 손이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종이 위에 박혀 있었지만, 눈동자는 아무것도 읽고 있지 않은 듯 흐릿했다.
성전 밖에서는 참배객들의 발걸음 소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꽃을 든 사람들,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소란의 한가운데 놓인 관 하나.
나는 그 관 속에 누운 내 몸과, 명령서를 쥔 도윤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곧, 검이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