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매일 독약 먹는 삼남입니다

2화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몰려왔다. 위장 안쪽에서 뭔가 타는 듯한 열기가 퍼졌다. 목구멍부터 명치까지, 마치 누가 불붙은 숯을 삼키게 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식도를 따라 내려가던 열기는 위장에 도착하자 폭발적으로 번졌다. 땀이 순식간에 등을 적셨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견딜 만했다. 【해독 진행: 42%】 또 그 목소리였다. 이번엔 숫자까지 보여줬다. ···이게 뭔데 퍼센트까지 알려주는 거야. 게임도 아니고, 사람 몸에 로딩바가 뜨는 게 정상이냐. 속으로 트집을 잡으면서도 나는 그 정보에 매달렸다. 42퍼센트라는 숫자가 지금 내 목숨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감초와 물로 흡수를 늦춘 게 통한 모양이었다. 어제 형벌 자리, 다과 접시에 놓여 있던 감초 조각을 몰래 집어 삼킨 게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그게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나조차 몰랐다. 3시간이 지나도 나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손끝이 저릿저릿했지만, 최소한 눈앞이 흐려지진 않았다. 이강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살아 있군."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실망인지 만족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투였다. 마치 화분에 물을 줬는데 죽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의 무게감. "내일도 같은 시각. 이건우, 계속해라." 그리고 홀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절도 있었다. 발소리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건우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의 손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잡는 힘도 조심스러웠다. "운이 좋으셨습니다." "···네." 실은 운이 아니라 감초였는데,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형님, 사실은 어제 다과 접시에서 감초 좀 몰래 씹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뭔가 알고 있다는 게 드러날 게 뻔했다. 그러니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해두는 수밖에. 이건우의 눈이 잠시 나를 훑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마치 몸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듯.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3년 전에도 부자를 처음 받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못 일어났습니다."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았지만,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가요." 일부러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겁먹은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지금 걸어서 나가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의 손에 몸을 맡긴 채 홀을 나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그날 밤, 낯선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천장 나무 무늬가 마치 지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 무늬를 눈으로 따라가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 몸, 이 상황, 이 목소리. 뭐 하나 이해가 안 됐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죽지 않으려면 이 능력을 숨겨야 한다는 것.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아직도 위장 안쪽이 뜨끈뜨끈했다. 해독은 됐다지만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창밖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 세계에도 여름벌레가 있나 보다,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 다음 날부터 조사가 시작됐다. 아침 식사 자리에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회색 관복, 목에 걸린 은색 문양. 가문 감찰관이라고 했다. 식탁에 오른 것은 멀건 죽이었는데, 감찰관 앞에는 김이 나는 흰 밥과 고깃국이 놓여 있었다. 이 집 서열이 딱 그거였다. 삼남인 나보다 감찰관 밥그릇이 더 컸다. "이서준 공자님. 어제의 반응이 이례적이라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시선은 해부하듯 나를 훑었다. 마치 수술대 위에 놓인 개구리를 보는 눈빛이었다. [감찰관의 심박이 평소보다 빠릅니다.] ···이건 또 뭔데. 갑자기 튀어나온 문장에 나도 놀랐다. 심박까지 읽힌다고? 어제는 독성분이었는데 오늘은 사람 상태까지 뜨네. 이 목소리, 스킬 트리가 은근히 넓은 모양이다. "뭘 여쭤보시려는지···" 최대한 순진한 목소리를 냈다. 열다섯 살짜리 삼남 행세는 처음이지만, 어차피 연기라면 자신 있었다. 전생에 하도 눈치 보고 산 인생이라 이 정도 표정 관리는 기본 옵션이었다. "부자 4등급 독을 섭취하고 3시간 내에 정신을 유지한 사례는 이 가문 기록에 없습니다." 감찰관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신경을 긁었다. "공자님이 어떤 특별한 처치를 받으셨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처치라니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최대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세상 순진한 얼굴을 유지했다. "저는 그냥 물을 좀 마시게 해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물이요." 감찰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죽 그릇을 슬쩍 밀어놓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물에 뭘 타셨습니까." "아무것도 안 탔습니다. 목이 말라서요." [감찰관이 당신의 대답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시겠지, 나도 내가 못 믿기니까. 이 상황이 웃겼다. 시스템 목소리가 상대방 심리까지 알려주는데, 그 정보를 알아도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게. 마치 시험지 답을 보면서도 손이 굳어서 못 쓰는 느낌. 감찰관은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서류를 덮었다. "이해합니다. 다만 오늘부터 공자님의 상태를 매일 기록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협조라는 말이 부드러웠지만 사실상 통보였다. 마치 회사에서 "협조 부탁드립니다"라고 써놓고 사실은 강제로 시키는 그런 종류의 협조. 감찰관이 나가고 나서야 숨이 트였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죽 그릇에 담긴 멀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맛도 안 느껴졌다. 이건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랐다. "들었습니까." "···네." "저 사람은 아버지께 직속으로 보고합니다. 매일 당신을 지켜볼 겁니다." [이건우가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목소리, 이제 사람 감정까지 읊어주는 건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편리하긴 한데 소름도 돋았다. 이렇게 되면 내가 누구한테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까지 다 티가 날 것 같았다. 사생활 침해도 이 정도면 헌법소원 각인데. "형님은 왜 그렇게 잘 아세요?" 무심코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던진 말이었는데, 이건우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그 짧은 정지 속에서 이건우의 눈빛이 뭔가 먼 곳을 보는 듯했다. "···저도 한때 저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방을 나갔다. 뒷모습이 유난히 곧았다. 등을 펴고 걷는 게, 마치 누군가에게 절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시 생각했다. 감찰관은 매일 나를 기록할 거고, 이 목소리는 매일 더 많은 걸 알려줄 거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면, 정체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쪽은 나를 감시하는 시스템이고, 다른 한쪽은 나를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근데 둘 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작동하는 게 문제였다. 감찰관은 눈에 보이는 감시고, 이 목소리는 눈에 안 보이는 감시. 어느 쪽이 더 위험한 건지 판단이 안 섰다. [내일 형벌 시각은 오후 세 시입니다.]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캘린더 알림처럼 띄워줄 필요는 없잖아. 창밖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저 멀리 왕도로 이어지는 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길게 뻗은 흙길이 마치 핏줄처럼 붉은빛을 머금고 구불구불 이어졌다. 그 길을 매일 왕복 여덟 시간씩 오간다는 형이 있다는 얘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하녀가 지나가며 흘린 말이었다. 이건우가 아니라 다른 형, 차남이라던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벌써부터 이 집안이 사람을 어떻게 쓰는지 감이 왔다. 이건우가 아까 남긴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한때 저 자리에 있었다는 게, 무슨 뜻일까. 설마 그도 나처럼, 저 부자 4등급 독을 매일 삼키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서 벗어난 거지. 아니면, 벗어난 게 아니라 그저 자리만 바뀐 걸까.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 쪽을 바라봤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가, 방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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