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강도현은 요즘 아침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예전 같으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을 것이다. 손끝 하나 움직이는 데도 진땀이 났고, 이불을 걷어내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릴 적부터 그의 몸을 짓누르던 정체불명의 병약함, 의원들도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그 저주 같은 증상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도련님, 오늘은 안색이 훨씬 좋아 보이십니다." 시종이 커튼을 젖히며 말했다. 도현은 그 말에 대답 대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예전 같으면 상체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어지럼증이 몰려왔을 텐데, 지금은 그런 기색조차 없었다.
"검술 수업에도 나가보시겠습니까?" 시종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도현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검을 쥐는 것조차 손목이 후들거려 포기했던 그였다. 훈련장 구석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목검을 휘두르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검을 쥔다는 상상만으로도 팔이 저려왔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자 예전보다 두꺼워진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야.' 그는 손바닥을 펼쳐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 마디마디가 단단해진 손. 병들었던 육체가 어느 순간부터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의원을 불러 물어봐도 다들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쩌면 몸이 스스로 나을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도현은 대충 결론을 내렸다.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해지는 것에 이유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훈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목검을 처음 쥐었을 때 느꼈던 그 팽팽한 긴장감이 이제는 오히려 즐거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무관심이야말로,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
이서윤은 요즘 아침마다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손끝이 저리고 시야가 가끔 흐릿해졌다.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밤에는 이유 없이 열이 올랐다가 새벽이면 식은땀에 젖어 잠에서 깼다. 시녀는 그런 그녀를 보고 "아가씨는 원래 몸이 약하셔서요" 하고 넘겼다. 아무도 진짜 원인을 알지 못했다.
서윤은 알고 있었다.
'또 시작이구나.' 손목 안쪽에 새겨진 희미한 문양이 검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확인하며 그녀는 소매를 서둘러 내렸다. 어둠의 마법.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세상에 몇 남지 않은 희귀한 힘이었다. 그 힘으로 그녀는 11년 전 다섯 살의 나이에 도현을 짓누르던 저주를 걷어냈다.
그때 도현의 나이 일곱, 서윤의 나이 다섯. 병상에 누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어린 도현의 손을 잡고, 서윤은 자신도 모르는 힘을 처음으로 끌어내었다. 그날 밤 서윤의 손목에 처음으로 검은 문양이 생겼다. 어머니는 그 문양을 보고 눈물을 흘렸지만,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대가는 해마다 조금씩 그녀의 몸을 갉아먹었다.
처음 몇 년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어지럼증, 두통, 가끔의 열. 시녀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달랐다. 숨이 가빠졌고, 손끝의 감각이 둔해졌다. 마치 몸속의 무언가가 조금씩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학원 복도에서 마주친 도현은 그녀를 향해 짧게 목례만 하고 지나쳤다. 예전처럼 웃어주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손을 흔들며 다가오던 그였다.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대하듯 예의만 차렸다.
서윤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도현이 강해지면 그만큼 자신이 소진된다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알려줄 생각도 없었다. 그녀가 강해지는 그를 지켜보는 대가로 스스로를 소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직 그녀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
강백작가의 저녁 식사 자리는 늘 예정된 소음으로 가득했다. 식기 부딪는 소리, 하인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은근한 말들.
계모 한미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윤 양은 요즘 안색이 창백하구나. 몸을 아끼는 게 좋을 텐데." 말투는 걱정처럼 들렸지만 눈빛에는 서늘한 경멸이 얹혀 있었다. 그녀는 서윤을 볼 때마다 '분에 넘치는 것을 데리고 있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부인." 서윤은 짧게 답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한미령은 포크를 내려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몸이 약한 아이가 혼약까지 앞두고 있으니,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거란다." 걱정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입가에 걸려 있었다.
그때 강소은이 끼어들었다. "언니,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요? 도현 오라버니가 놀라시잖아."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배어 있었다. 소은은 도현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즐겼다. 혼약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은아." 한미령이 낮게 말했지만, 딸을 말리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흡족한 눈빛이었다.
도현은 그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식기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짧은 인사였다. 서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강백작이 헛기침을 하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도현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식탁에는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서윤은 그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아무렇지 않아.' 그러나 식탁 아래로 내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포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소은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다가 작게 웃었다. 서윤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았지만, 굳이 대응하지 않았다. 대응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날 밤, 서윤은 방 안에서 혼자 팔을 걷어 올렸다. 촛불 하나만 켜둔 방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검은 문양이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뻗어 올라와 있었다. 대가는 매년 조금씩 커졌다. 처음엔 어지럼증이었고, 다음엔 두통이었고, 이제는 온몸의 감각이 둔해지는 지경까지 왔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남긴 마법서를 꺼내 다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를 문장들. 대가에 대한 경고는 자세히 적혀 있었지만, 되돌리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되돌릴 수 없는 힘이라는 듯이.
서윤은 책을 덮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팔에 새겨진 문양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차가웠다. 마치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순간 시야가 뒤틀렸다. 방 안의 촛불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였다. 서윤은 벽을 짚으려 손을 뻗었지만 손끝이 허공을 갈랐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
무릎이 꺾였다. 바닥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몸을 지탱할 만한 것을 찾아 손을 휘저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 너머로 걸어가는 도현의 그림자였다. 훈련장에서 돌아오는 길인 듯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아무것도 모른 채 멀어지는 뒷모습.
'오늘도, 아무것도 모르겠지.' 그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서윤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촛불이 흔들리다 꺼졌다. 방 안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고, 쓰러진 그녀를 발견해 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