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혼하시죠, 국토 절반 걸고

1화

경화궁 대전은 건국제의 화려한 등롱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천장에서부터 늘어진 오색 비단 술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렸고, 기둥마다 걸린 붉은 휘장은 촛불에 비쳐 마치 피처럼 붉게 일렁였다. 만조백관은 술잔을 든 채로 흥겨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그 웃음소리와 풍악 소리가 겹겹이 쌓여 대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번 건국제가 유독 성대하다며 감탄했고, 누군가는 벌써 세 번째 술잔을 비운 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바로 그 흥겨움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국왕 이도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술잔을 손에 든 채도 아니었고, 취기로 뺨이 붉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냉정한 얼굴로, 낮고 단단한 목소리를 냈을 뿐인데—그 한마디에 대전 전체가 얼어붙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왕비 강서윤과의 혼인을 파하겠다." 순간 대전 안의 모든 숨소리가 멈춘 듯했다. 풍악을 연주하던 악공들의 손가락마저 허공에서 굳어버렸고, 누군가의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며 정적을 갈랐고, 몇몇 대신은 헛기침을 하며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강서윤은 붉은 예복을 입은 채로 상석에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은 놀라움이 아니었다. 아, 또 이 순간이구나—하는, 익숙한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 장면을, 그녀는 이미 한 번 겪었다. 지난 삶에서도 똑같은 자리, 똑같은 등롱 아래에서, 똑같은 남자의 입으로 같은 말을 들었으니까.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눈앞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쫓기듯 궁을 나왔고, 그 뒤로는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녀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빈민가의 썩은 골목,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해 뱃가죽이 등에 붙는 굶주림, 겨울밤의 살얼음 같은 냉기, 그리고—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지막 밤. 그 밤을 떠올리면 지금도 손끝이 저릿해졌다. 그러니까,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때와는 다르게 살아야 했다. 눈물이 흐르는 방향까지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금의 강서윤은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을 다시 살아본 사람이었다.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그 눈물을 억지로 참지 않았다. 오히려 흘려보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 전부가 무너진 여인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계산된 눈물이라 할지라도, 지켜보는 눈이 백 개도 넘는 이 자리에서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여야 했다. "폐, 폐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손을 뻗으며, 자리에서 비틀거리듯 일어섰다. "어찌, 어찌 이 자리에서……." 목소리 끝이 갈라지는 것까지도, 사실은 의도한 것이었다. 만조백관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쏟아졌다. 몇몇 대신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고, 몇몇은 이미 머릿속으로 다음 왕비 자리와 그에 딸린 이권을 계산하는 듯 눈을 빛냈다. 그 셈이 얼마나 빠른지, 강서윤은 속으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람이란 참, 이런 순간에도 이해타산을 놓지 않는구나. 그리고 국왕의 곁,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정성녀 한유리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감추고 있었다. 그 미소를 강서윤은 놓치지 않았다. 안개 낀 숲처럼 짙은 눈동자로 그 미소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저 얼굴이었지. 지난 삶에서도 딱 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자신이 쫓기듯 대전을 나서던 그 순간에도, 한유리는 소매 속에 손을 감춘 채 딱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그 미소의 의미를, 이번 삶에서는 처음부터 똑똑히 알고 있었다. "왕비는 지난 삼 년간 후사를 잇지 못했고, 국사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도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몇 번이나 되뇌어 연습한 사람처럼, 어조는 흠 하나 없이 매끈했다. "이것이 짐이 내리는 최종 결정이다." 대전이 다시 소란스러워지려는 순간—여기저기서 낮은 탄식과 수군거림이 물결처럼 번지려는 그 순간—강서윤은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끝에서부터 등줄기까지, 그녀는 천천히 힘을 실었다. 지난 삶에서는 이 순간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뜻밖으로 담담했다. 눈물은 여전히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 하나 섞이지 않았다. "하오나 폐하, 소첩을 버리시겠다면—대윤국 국토의 절반을 두고 가셔야 할 것입니다." 대전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방금까지 수군거리던 대신들도, 셈을 하던 눈빛도, 미소를 짓던 한유리마저도 그 말 앞에서 얼어붙었다. 촛불이 타들어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정적 속에서, 이도현의 표정이 처음으로, 아주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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