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냄새였다.
말린 약초와 탄 기름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거기에 희미하게 섞인 흙냄새와 눅눅한 나무 냄새까지, 이곳이 부유한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려주었다.
낡은 나무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금이 간 서까래 사이로 흐린 빛이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었다.
빛의 색으로 보아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살아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온몸이 불에 데인 것처럼 아팠고, 특히 옆구리는 누군가 뜨거운 쇠꼬챙이를 박아 넣은 듯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사이가 뜨겁게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옆구리를 만져보았다.
손끝이 무겁게 움직였다. 마치 오랫동안 쓰지 않은 기계처럼.
거친 천으로 감긴 붕대가 손끝에 걸렸다.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쓴 약초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누군가 상처를 씻고 새로 감아준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꽤 여러 번 손을 댄 흔적이었다.
붕대의 매듭이 지나치게 단정했다. 아무렇게나 감은 게 아니었다.
기억이 파편처럼 조각나서 밀려들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감각.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던 그 서늘함.
강태윤의 등.
내게서 등을 돌리던 그 순간의 무게감.
서인의 웃음소리.
가느다랗고 즐거운, 그러나 소름 끼치던 그 소리.
칼을 겨눈 기사들의 눈빛.
그 눈빛에 담긴 건 살의가 아니라 오히려 지루함이었다.
그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이상하게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다.
감정이 일어야 할 자리에 텅 빈 구멍만 남아 있었다.
분노도, 슬픔도, 심지어 억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사실들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머릿속에 나열될 뿐이었다.
'이게 진짜 살아 있다는 감각이던가.'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허리 아래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는 붙어 있는데도 마치 남의 것인 양 낯설었다.
"움직이지 마."
낮은 목소리가 방 한쪽에서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억양이 거의 없었다. 명령이라기보다는 관찰의 결과를 통보하는 투였다.
고개를 돌리자 창가에 기대선 남자가 보였다.
검은 외투, 흑발,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도드라지는 보라색 눈동자.
외투는 낡았지만 손질이 되어 있었다. 단추 하나 풀린 곳이 없었다.
국경의 절벽 아래에서 나를 안아 올린 그 얼굴이었다.
그 순간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떨어지는 몸을 누군가 받아 안았던 감각, 팔뚝에 닿았던 단단한 근육의 결.
"당신이……"
"질문은 나중에."
그는 내 말을 자르며 다가와 붕대 사이로 손을 넣어 상처를 확인했다.
손길이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신중해서, 이상하게 낯설었다.
손가락이 상처 주변을 짧게 누르며 붓기와 열을 확인하는 동작이었다. 마치 의사처럼.
'적어도 나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굳이 상처를 씻고 붕대를 감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매듭의 정교함, 상처 부위를 정확히 짚는 손놀림,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었다.
이 남자는 사람의 몸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이름을 물어봐도 됩니까."
"알 필요 없어."
그는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
무례하다고 느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반감이 들지 않았다.
경멸이 섞인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태도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어서, 마치 다친 짐승을 다루는 사냥꾼 같았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만큼,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당신이 나를 구했다는 건 알겠습니다."
"의문형으로 말할 필요 없어. 사실이니까."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며 마른 천을 나에게 던졌다.
천은 깨끗했다. 방금 삶아서 말린 듯 옅은 비누 냄새가 났다.
입을 닦으라는 뜻인 듯했다.
나는 손끝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왜 떨리지.'
두려움 때문인지, 안도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실감 나면서, 온몸의 감각이 뒤늦게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손을 들어 눈앞에 펼쳐 보았다.
손바닥 안쪽에 희미한 빛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작고 옅었지만, 분명 빛이었다.
신성 마력의 잔재였다.
마왕을 토벌하던 그날, 온 왕국이 나를 향해 환호했던 그 힘이었다.
그 함성과 눈부신 축포, 나를 향해 쏟아지던 시선들이 아득한 옛일처럼 떠올랐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죽은 것으로 취급될 힘이었다.
"그 손, 감춰."
남자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오므렸다.
손가락 사이로 빛이 스며 나오지 않게,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었다.
"왜 감춰야 합니까."
"살고 싶으면."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무 문틀이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이 방의 정적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나는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살고 싶으면, 이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담긴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확신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말투였다.
국경까지 나를 끌고 온 자들이라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죄가 될 수도 있었다.
애초에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이유가, 죽었다는 확인을 위한 것이었을 테니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 죽음을 조작한 자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골칫거리를 없애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왔지만, 그보다 먼저 밀려오는 것은 낯선 확신이었다.
'이 남자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저 우연히 떨어진 여자를 구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었다.
절벽 아래는 국경 근처의 외진 곳이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우연히 발견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내 손바닥의 빛을 보자마자 그 의미를 알아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살려서 얻는 이득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이득이 나를 이용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답을 알기 전까지는, 나 역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손바닥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희미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