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얼음 인형, 되갚아주마

4화

설원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바람은 살을 벨 듯 날카로웠고, 발밑의 눈은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나는 얇은 죄수복 차림 그대로 그 위를 걸어야 했다. 발가락 끝의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였다. 살을 파고드는 눈보라 속에서, 나는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셀 수도 없었다. 이상한 것은, 이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도 나는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손끝이 저리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동사했을 것 같은 환경 속에서 나는 여전히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이것도 이 마력 때문일까.' 나는 걸으면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옅은 서리 같은 것이 피부 위에서 명멸했다. '다른 죄수들이었다면 하루도 못 버텼을 텐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 힘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아직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걷는 동안 배는 텅 비었고, 목은 갈라질 듯 말랐다. 눈을 뭉쳐 입에 넣었지만, 오히려 뱃속이 더 뒤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정확히는 걸은 지 사흘째 되던 밤이었다. 나는 폐허가 된 옛 요새의 잔해 속에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무너진 돌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피해, 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돌 틈에 등을 기대고 앉으니, 그제야 다리에서 진동처럼 통증이 올라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조각난 기억을 마주했다. 어릴 적, 유모가 나를 재우며 불러주던 자장가가 있었다. 그 노래의 가사 중 일부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차가운 강 너머, 얼어붙은 별의 아이야...' 멜로디까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낮고 느린 곡조였다. 마치 누군가 내 귓가에 직접 불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유모가 아니라, 실은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그 순간 어렴풋이 떠올렸다. '유모가 아니었어. 그 목소리는... 더 부드러웠는데.'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병으로 죽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장례식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는 거의 없었다. 관도, 무덤도, 조문객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디서 온 사람이었지.' 공작저의 누구도 어머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존재가 지워진 것처럼. 하녀들도, 집사도, 심지어 아버지조차 어머니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이 순간에 그 노래가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노래 속의 '얼어붙은 별의 아이'가 나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는 것이었다. 손끝의 서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얼어붙은 별의 아이.' 그 말이 자꾸만 이 마력과 겹쳐졌다. 그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나는 어둠 속에서 낮은 그르륵거림을 들었다. 몸이 그대로 굳었다. 요새 잔해 사이, 무너진 벽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심장이 귓가에서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났다. 사람이 아니었다. 늑대처럼 생긴 몸체였지만, 크기는 훨씬 컸다. 피부는 회색빛으로 딱딱해 보였고, 등줄기를 따라 얼음 결정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다. 눈은 붉게 빛났다.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 김에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설원 마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물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르르릉. 낮은 울음소리가 폐허 전체에 울렸다. 벽에 쌓여 있던 눈이 진동에 흩어져 내렸다. 나는 뒷걸음질쳤다. 등이 무너진 벽에 닿았다. '무기도 없어.' '힘을 쓸 줄도 몰라.' 지금까지 내 안의 냉기는 오직 감정이 폭발했을 때만 제멋대로 발현되었다. 스스로 그것을 다스리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화가 나거나, 무섭거나, 그럴 때만 튀어나왔잖아.' '그럼 지금은... 그냥 무서워하면 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물이 몸을 낮추고 도약할 준비를 했다. 근육이 팽창하며 등줄기의 얼음 결정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구나.' 그 순간, 마물이 내 앞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차가운 것이 내 손끝에서부터 폭발하듯 뻗어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온몸의 피가 손끝으로 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을 떴을 때, 마물은 허공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온몸이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채, 마물은 나를 향해 도약하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붉게 빛나던 눈동자마저 얼음 속에서 흐릿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한 거야?' 손끝에서 냉기가 여전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감정이 폭발한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본능이 힘을 끌어낸 것이었다. '무섭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이런 게 나온다고?'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낯선 물건을 처음 만져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쿠구구. 얼어붙은 마물의 몸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굴려 그 파편을 피했다.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차가운 파편이 뺨을 스쳤다. 등 뒤에서 또 다른 그르륵거림이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숨을 삼켰다. 방금 전의 그 마물 하나를 상대하는 데도 정신을 놓을 뻔했는데, 지금 내 앞에 늘어선 눈동자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설마... 무리였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너진 벽 너머로, 회색빛 몸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르릉, 그르릉. 낮은 울음소리가 여러 겹으로 겹쳐지며 폐허를 가득 채웠다. 나는 등을 벽에 바짝 붙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손끝의 냉기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방금 그 한 번의 발현으로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 다리가 떨렸다. '한 번은 어떻게 됐지만.' '이 숫자를 전부... 감당할 수 있을까.' 붉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몸체가 서서히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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