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노 집사 박씨를 따라 성 안 곳곳을 청소했다.
빗자루 하나, 걸레 하나. 마력 따위 한 톨도 없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이런 거였다.
“여기는 서쪽 별채입니다. 예전엔 손님방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 씁니다.”
박 노인이 무심하게 설명하며 앞장서 걸었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먼지 쌓인 창틀을 손끝으로 훑었다.
뽀얀 먼지가 손끝에 그대로 묻어났다.
“……이 성, 사람이 살긴 사는 거예요?”
“살긴 삽니다. 다만…….”
노인은 말을 흐렸다. 나는 그 뒷말을 캐묻지 않았다. 캐물어봤자 어차피 안 알려줄 게 뻔했으니까.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먼지를 털고, 서리를 닦고, 부서진 곳을 정리하는 정도. 성이 워낙 넓어서 하루 종일 걸어야 했지만, 몸을 쓰는 노동이라 그런지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마력 없는 몸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세계에 떨어져서 상태창 한 번 못 열어본 주제에, 청소부로 취직해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고 있다니. 어디 가서 회사 다닌다고 해도 이보다 처량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첫날은 서쪽 별채, 둘째 날은 지하 창고, 셋째 날은 회랑을 따라 늘어선 조각상들 먼지 털이. 박 노인은 매일 다른 구역을 정해줬고, 나는 시키는 대로 묵묵히 몸을 움직였다.
성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 노인 외에 부엌일을 하는 아주머니 한 명, 마당을 관리하는 청년 한 명. 그게 전부였다. 이 큰 성에 사람이 이렇게 적다니,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저 말고 다른 시녀나 하인은 없어요?”
“예전엔 많았습니다.”
“지금은?”
“……다들 떠났지요.”
박 노인은 그렇게만 답하고 다시 걸레질을 시작했다. 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이 성의 비밀이란 것들은, 물어본다고 순순히 나오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박 노인은 여전히 ‘주인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성 안쪽, 얼음으로 뒤덮인 대형 홀만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뿐이었다.
“그 홀만큼은 절대, 절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왜요?”
“그냥, 안 됩니다.”
노인의 눈빛이 그때만큼은 진지했다. 평소의 무심한 얼굴과는 다른, 뭔가 오래된 두려움이 배어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참 이상한 것이었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더 궁금해지는 법. 초등학교 때 담임이 교탁 뒤 서랍 열지 말라고 했을 때도 그랬고, 회사에서 상무님 방 절대 노크 없이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 때도 그랬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금지된 것에 끌리게 설계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흘째 되는 날, 노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홀로 그 홀 앞에 섰다.
“……잠깐만 보고 오는 거야. 관찰만. 그냥 관찰만.”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관찰자니까. 이 세계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관찰자일 뿐이니까.
거대한 나무 문 틈으로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에 손을 대자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관찰만 하는 거야.”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뇌며 문을 조금 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낮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안을 봤다.
홀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마치 거대한 얼음 조각 안에 갇힌 궁전 같았다. 벽을 따라 늘어선 기둥들도 온통 서리로 덮여 있었고, 바닥은 거울처럼 매끈하게 얼어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그 한가운데.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엔 조각상인가 싶었다. 거대한 몸체, 사람보다 크고, 등 뒤로는 짐승의 형상을 닮은 어깨선이 뻗어 있었다. 마치 박물관에서 본 신화 속 짐승의 조형물처럼.
하지만 그것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
나는 숨을 삼켰다.
형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인간의 얼굴에 가까웠지만, 눈동자는 얼음처럼 새파랗게 빛났고 턱선을 따라 짐승의 털 같은 것이 자라 있었다. 등에는 얼음으로 덮인 거대한 날개 비슷한 것이 접혀 있었다.
반인반수.
소문이 사실이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판타지 게임 몬스터 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저건 대체 무슨 종족 태그를 붙여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이 위급한 상황에도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망가진 게 분명했다.
“누구냐.”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홀 전체를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목소리 하나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런 걸 위압감이라고 하는 건가. 게임에서 보스몹 등장할 때 나오는 그 배경음악이 실제로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서은우입니다. 이번에 성에 새로 온…….”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목이 바짝 말라서 발음이 자꾸 뭉개졌다.
“나가라.”
단호했다. 감정이라곤 담기지 않은 명령이었다.
나는 그 순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걸 다시 떠올렸다. 나는 관찰자다. 이 성에서 어떤 존재와 얽히지도,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내면 된다.
“……죄송합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뒤로 물러났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지만 문은 이미 완전히 닫혀 있었다.
압도적이었다. 그 존재가 풍기는 냉기와 위압감은 소문보다 몇 배는 더 실감났다. 몸이 저 혼자 얼어붙는 것 같은 그 느낌은, 말로만 듣던 것과 실제로 마주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알려줬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 파란 눈동자에서 순간적으로 스쳤던 감정이었다.
분노도, 살기도 아니었다.
지친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앉아 방금 본 광경을 곱씹었다.
괴물이라고 불리던 존재.
성 안 사람들이 왜 그렇게 홀에 대해 입을 다무는지, 왜 그렇게 겁을 내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는 누구라도 몸이 굳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괴물의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주 오래도록 혼자였던 사람의 것 같았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되뇌었다. 나는 관찰자니까. 감정을 이입할 필요도, 다가갈 필요도 없다.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었는데도, 자꾸만 그 눈빛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쳐 보이던, 그러면서도 어딘가 서글퍼 보이던 그 눈동자가.
그렇게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눈보라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성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 짐승 같은 숨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아도, 귓가에는 그 낮은 숨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마치 그 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심장이 되어, 성 전체에 박동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밤, 몇 번이나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